8월 6일 희망제작소에서는 (주)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이사의 강연이 열렸다.
희망제작소 부설 농촌희망본부(소장 김완배)가 매달 개최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고수로부터 듣는다’의 8월 강연자로 이 대표가 초청된 것이다. 평생을 도라지 연구에 바친 아버지 이성호 회장의 뒤를 이어 장생도라지를 탄탄한 회사로 변모시키고 있는 이 대표이사의 강연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농업 CEO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었죠”
이영춘 대표이사의 어린 시절, 사람들은 아버지 이성호 회장을 ‘도라지 똘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발의 모습으로 하루종일 도라지 타령을 부르며 도라지 연구에 집중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영춘 대표도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몹시도 싫었다. 가난했던 학창시절, 이영춘 대표는 신문배달을 하며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를 마쳐야 했고 졸업 후, 삼성중공업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에는 도라지 똘아이라고 불리우는 아버지가 몹시도 싫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불효막심한 일이지요. 그러나 요즘은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아버지를 보며 도라지 박사님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오십이 넘은 지금은 아버지 덕분에 회사 사장을 하며 직장 걱정을 안하게 되었습니다.”
[##_1C|1015626085.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강연 중인 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이사_##]
움막 짓고 산으로 들어간 아버지
21년의 긴 수명을 자랑하는 장생도라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이 대표의 아버지 이성호 회장이 도라지 농사에 뛰어든 것은 어린 시절 기이한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산에 나무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같이 갔던 분이 당시로는 노인인 50대의 아저씨였다고 합니다.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오래된 도라지를 캐먹고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노인이 80세까지 장수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도라지를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낫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어떤 책에서도 자세한 내용을 얻을 수 없었다고 한다. 효능을 알기 위해 이성호 회장은 온 산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물론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 회장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반대가 하도 심하니 아버지는 움막을 짓고 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도라지는 3~5년이 지나면 썩어버리고 마는데 도저히 방법을 찾을 길이 없었지요. 그런데 방법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도라지를 옮겨 심는 방법이었죠.”
도라지는 땅의 기운을 계속 빨아먹고 사는 식물이기 때문에 옮겨 심으면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계속 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호 회장은 이에 대한 재배특허를 냈고 그 덕분으로 장생도라지는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회장의 계속된 연구로 집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고 한다. 1989년 다행히 장생도라지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 신문에 이 회장이 1등 농부로 소개된 것이다.
“한 3년간 도라지가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1,000만 원 어치를 판 적도 있었으니까요. 이제 빚갚고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지리산에 땅을 사서 도라지를 심기 시작했고 1995년에는 회사까지 설립하셨지요.”
아버지가 회사를 설립할 때, 이영춘 대표는 그 돈은 더 이상 아버지 것이 아니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고, 1997년까지 공장을 못 돌리게 되면서 부채는 28억원에 이르게 된다.
“당시 삼성에서 인사과장을 맡고 있던 저는 꽤 잘나가는 샐러리맨이었습니다. 가족회의가 열리고, 누군가 이 일을 해결해야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지요. 장남인 제가 이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는데, 빚더미에 오른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해볼만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고, 특허도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_1C|1268591410.jpg|width=”482″ height=”32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해볼만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던졌죠.” _##]
출근시간도 안 지키던 직원들
이 대표는 취임 후 먼저 28억원의 부채를 분석했다. 그 중 17억은 은행 대출이었고 11억이 사채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채 중에는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1억원을 빌린 후, 4년 후에 4억원을 갚겠다고 계약해 놓은 것도 있었다. 4년이 되면 꼼짝없이 4억원을 줘야할 판이었다.
“돈 빌려준 사람을 찾아가서 지금 원금과 이자를 받고 해결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은 투자를 한 것이지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여러 뒷이야기들이 있지만, 우여곡절 끝에 빚에 대한 부분을 어느정도 해결했습니다.”
“회계기준이 없으면 수익이 많이 날 경우 고스란히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도라지의 원가부터 자재비, 인건비 등 이윤분석을 실시하고 회계기준을 정립했습니다. 종합 원가관리에 들어간 것이지요. 직원들이 총 8명이었는데 마치 오합지졸과도 같았습니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박사 한 명은 다른 곳에 자기 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면서 전화 등은 우리 회사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많은 직원들이 출근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지요. 전날 잔업을 했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출근시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1분이라도 지각하면 회사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비록 작은 회사였지만, 대기업과 같은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가 대기업을 다니면서 익혔던 기업문화였고, 이것은 교육훈련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1년이 지나자 사람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직원들로 탈바꿈 되었다고 한다.
“목표 관리제를 만들어 옆의 동료보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표준화와 매뉴얼화를 통해 어떤 직원이 오더라도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바꾸었지요. 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입니다. 저희 직원들은 1인 2역에서 1인 5역까지 해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기업문화가 우선입니다.”
특허 36개를 보유하기까지
“저희 장생도라지는 철저하게 공정관리 기록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소송이 있습니다. 제조업자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지요. 완벽한 공정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한 원료이력부터 모든 정보를 전산관리 하도록 하였습니다.”
장생도라지가 보유한 특허는 36가지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수억원의 돈이 들었다고 하니 그 노력이 놀랍다. 아버지 이성호 회장에 이어 이영춘 대표도 신지식인에 선정되면서 전국 최초로 부자가 모두 신지식인이 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산학협력체계 구축과 수출에 대해서도 강의를 이어갔다.
“장생도라지 내에도 2명의 박사와 3명의 석사가 있지만, 연구인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학교와 연구소, 해외 네트워크까지 많은 연구진들이 장생도라지의 연구에 함께 참여하고 있지요. 그 중에는 일본의 용각산 관계자도 있습니다.
마케팅을 위해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6~7년간 열심히 노력하고 나니 일본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일본의 미쯔이 물산과 계약했고, 고양사와는 협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인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_1C|1233284433.jpg|width=”441″ height=”29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대표는 바이오산업 진출을 통해 장생도라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_##]
이영춘 대표이사는 바이오 산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장생도라지는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C형 간염에 장생 도라지가 좋다고 해 외국 회사와 제휴를 맺고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도라지가 향후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올해 1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장생도라지는 향후 바이오 업계로의 진출을 통해 더 큰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대에 걸쳐 5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성장해 온 장생도라지의 또 다른 변신, 신약 개발을 통한 바이오 사업 진출로 일궈가는 장생도라지의 앞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글 /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전우석 연구원 (jeonws7@makehope.org)
사진 / 희망제작소 임지환 인턴
기록 / 희망제작소 공다연 연구원
희망제작소 부설 농촌희망본부에서 내일 (8.20) 오후 2시 부터 개최할 예정이었던 ‘비농업인이 바라본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 강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강사로 모셨던 정강원 원장님의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결정된 사항이라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미리 공지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죄의 말씀을 드림과 더불어 참석을 계획하셨던 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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