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사용자

목민관클럽은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모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모임입니다. 지방자치 현안 및 새로운 정책 이슈를 다루는 격월 정기포럼을 개최하며, 매월 정기포럼 후기 및 지방자치 소식을 담은 웹진을 발행합니다. 월 2회 진행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인터뷰를 통해 지방자치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리 앞으로 오세요, 이리…. 거기 앉아 있으면 제가 불안하니깐 이리 오세요, 이리…..”
여전했다. 바짝 마른 몸매에 서글서글한 눈매, 검은 얼굴(그래서 굴뚝새라는 별명도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굽실거리는’ 몸에 밴 겸손함. 그는 손님들이 떨어져 앉으려 하자 자꾸 가까이 오라고 권했다. 결국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앉는 모양새가 됐다. 그의 말투는 어눌했지만 논리정연 했고, 부드럽지만 뼈가 느껴졌다. 몸짓과 말투에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는 듯했다.
”사용자

“제가 돈독이 올랐습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MBC 보도국 사회부 기자, 노조위원장을 거쳐 마흔 여덟의 나이에 최연소 사장 자리에 올라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시청률을 높이고, 흑자경영시대를 열었다. 18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지난해 4월 보궐선거로 도지사에 당선됐다.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정족2리에서 태어난 최 지사는 뚝심과 겸손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감자와 옥수수를 좋아한다는 그가 척박한 강원도의 살림을 어떻게 살찌우고, 주민들의 힘을 키워나가는지 들어보자.

– 지난해 4월 보궐선거로 도지사에 취임했는데, 9개월 동안 도정을 맡아보니 어떻습니까.

아~여긴 참 힘듭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같은 분이 제일 부럽지요. 박 시장님이 취임해서 말하기를 서울시의 복지 예산을 3조 얼마로 늘리겠다 그러더라고. 난 그 말 듣고 너무 부럽더라고요. 강원도 전체 예산이 3조야. (일동 폭소)

– 단위가 틀리죠?

딱 열 배예요. 서울시가 30조쯤 되고 우리가 3조 몇 천억 되니까. 국가 전체 예산이, 지난번 국회에서 날치기할 때 보니깐 330조쯤 된 단 말이죠. 이게 딱 우리 지방자치 수준이에요. 100분의 1.

– 보통 자조적으로 3% 지방자치라는 말을 하지요.

제가 여기 와서 누차 강조하는 게 지방이란 말을 쓰지 말라는 거예요. MBC 있을 때부터 한 말인데, 지방이란 말은 중앙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차별과 하대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지방분권이란 말을 쓰지 말라고 그럽니다. 분권이란 말은 권력을 좀 나눠달란 뜻이니까 수동적인 태도잖아요. 저는 지역 주권이라 합니다. 지역주권, 이런 철학을 딱 세우고 거기에 맞춰서 정책을 배치하자는 겁니다.

– 다른 단체장들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더 바쁜 것 같습니다.

면적이 넓고 분산돼 있다 보니까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 포스터가 청사 여기저기 붙어 있던데, 작가 이외수 선생이 강원도 홍보대사인가 보네요.

(사진을 가리키며) 저 분을 모시고 다니면서 홍보를 해야 하는데 워낙 바쁘셔서… 아바타를 만들었어요. 저게, 실제 크기보다 작게, 진흙으로 만든 아바타입니다. 제가 저 아바타를 모시고 다니면서 홍보를 합니다. 인기가 좋아요. 저랑 같이 가면 전부 다 저 분만 본다니까요.

– 도정을 운영하다보면 철학과 소신에 비추어서 부합하는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을 텐데. 그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또 어떻게 극복을 하십니까.

저는 진보가 부자다, 진보가 유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가 보수적 가치에 대항마로서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게 아니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사람들을 부자로 만드는 일에도 진보가 더 잘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MBC 사장을 하면서 매출액이나 시청률을 크게 끌어올렸는데, 진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강원도의 특수성이 있어서…. 여기는 오랜 기간 동안 중앙집권적 질서 속에 돈과 사람이 빠져 나가서 정책을 집행하기가 무척 힘들어요. 제가 여기 와서는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질 못하고 성장주의자가 돼 버렸어요. 우선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돈독이 좀 올랐다고 할까.(웃음)

”사용자인간 존엄, 평화와 번영, 지역의 가치

– 2012년 도정 방향을 경기 활성화로 정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있습니까.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목표가 3.7%인데, 강원도의 목표는 2%입니다. 수십 년 동안 나라 경제성장 목표의 반 토막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뒤쳐져 있다 보니까 소득 수준도 낮고. 형편이 어렵지요. 그걸 어느 정도 따라가야겠다는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열망이죠. 올해는 다른 때보다 상황이 좀 낫다고 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따른 인프라 투자가 되고 있고, 중국인들이 오면서 관광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도로가 좋아지면서 기업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처음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어요. 올해 국가 목표만큼은 못 따라가더라도 어느 정도는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죠.

– 강원도의 경우 기본적으로 산업시설이 부족하잖아요? 재정자립도도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고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이 있는지요.

강원도 재정자립도가 24%로 전국 최하위입니다. 재정자립도를 높이려면 우선 지방세를 많이 걷어야 합니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작년부터 지방세가 좀 늘어나기 시작해서 올해는 6800억 원쯤 될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작년 대비 500억 원 늘어나는 정도인데, 관광 인프라 조성과 기업 유치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도로가 뚫리면서 기업도 좀 들어온다고 했는데, 어떤 기업들이 들어왔나요.

춘천에 레고랜드가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장난감 레고 아시지요? 그 기업이 유치됐습니다. 또 동해안에는 포철이 들어와서 마그네슘 제련단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 최고 매장량의 마그네슘을 갖고 있습니다. 그걸 제련해서 중국으로 수출하려는 거지요. 마그네슘은 철보다 가볍기 때문에 친환경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재료입니다. 큰 기업은 그 두 곳이고, 중소 규모의 기업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공장부지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근데 이게 자리 잡고 지역에 고용을 일으키려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리겠지요. 엊그제 철원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평화산업단지를 제안했습니다. 개성공단의 반대 개념인데, 북한의 근로자들이 남쪽에 와서 일하는 겁니다. 남북관계가 나아지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 크게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작게는 주민간, 도내 지역간 이해 갈등 같은 현안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도정을 운영하면서 고수하는 원칙이 있는지요.

예를 들어 삼척 원전 같은 경우, 삼척시와 중앙정부는 원전 유치를 찬성해서 결정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되는 거죠. 중앙정부와 저, 저와 삼척 시장…. 강릉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골프장은 저와 주민들이 반대합니다. 또 강원도 전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무상급식을 춘천시장은 안 합니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많습니다. 근데 뭐 이런 것을 나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좋게 보면 강원도에 처음으로 야당 출신 도지사가 오면서 생긴 현상이죠.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보고, 저의 소신과 원칙을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 그 원칙이 어떤 겁니까.

제가 세 가지 도정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첫째, 인간의 존엄. 국가건 지방정부건 존재하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을 돈벌이 수단이나 권력의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둘째, 지역의 가치. 지역이 중앙정부의 들러리가 돼선 안 된다는 겁니다. 지역 경제, 지역 문화, 지역 언론, 이런 것을 잘 보호해서 우리 스스로 무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곳 지역 정치인들이 국회에 가서 맨날 지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해요. 지역 주민들이 이제 정확하게 보고 선거를 통해 바로잡아야 지역의 가치를 살릴 수 있습니다. 셋째, 평화와 번영. 강원도는 남북관계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입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면 강원도 군인들은 휴가를 안 나오고 부모들은 면회를 안 와요. 경기가 확 죽어버리는 거지요. 경제적인 피해가 오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앵벌이 도지사”

–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돼 주목받고 있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진보적 가치에 입각한 올림픽을 치르겠다고 해서 몇 가지 정리한 게, 우선 평화 올림픽. 그 다음 흑자 올림픽, 그리고 민생 올림픽. 민생 올림픽이라는 건 엘리트 선수들끼리 하고, 건축업자들이 와서 좍 하고 가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 직접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환경 올림픽. 문화 올림픽…. 이렇게 진보적 가치로 성공하는 올림픽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현재 우리 지방자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재정자립도는 24%이고, 인구는 3%이고, 경제는 2.5%이고. 딱 그 정도겠죠.(웃음) 제가 이런 표현 쓰긴 좀 그렇지만, 완전히 앵벌이 도지사에요. 중앙정부에 맨날 앵벌이 하러 다녀요. 아까 보건복지부 국장이 왔다 갔는데, 자기네 부처 예산이 30몇 조라고 해요. 그런 말 들으면, 아이씨~ 그런 말이 나오지요.(웃음)

– 강원도 자치의 한계뿐 아니라 지방자치 전반에 대한 진단을 조금 더 한다면….

제가 도지사로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지만, 제 관할구역 안에 있는 사람은 도청 직원들밖에 없습니다. 시장 군수들은 대부분 정당이 다르고, 경찰, 검찰, 학교, 다 제 관할구역 안에 있지 않아요. 정책 수단도 아주 제한돼 있거나 중앙정부가 다 가지고 있고…, 저는 섬처럼 떠있습니다. 수직적으로도 앵벌이고, 수평적으로도 앵벌이에요.(웃음)

– 자치경찰의 경우 법에는 하게 돼 있는데 예외조항을 둬서 안 하고 있고, 교육자치는 부분적으로만 되고 있고. 그래서 반쪽짜리 지방자치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지요. 재정이나 인사권을 중앙정부가 쥐고 있어서 지역정부들의 불만이 상당히 많습니다.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역, 지방, 지역자치에 대한 철학을 분명히 세우고 그걸 공유해야 합니다. 지역주권론을 정확히 세우고, 그 철학에 따라서 정치, 경제, 문화, 언론, 체육 이런 것들이 서있고, 정책들이 딱딱 나와야 합니다. 유럽의 많은 자치구들은 90%가 그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전혀 없지요. 강원도에 와서도 서울 막걸리 찾으면 없다고 하고 강원도 막걸리를 내놔야 하는데 그걸 못합니다. 서울 막걸리만 찾는다고 거기에 끌려가는 거죠. 이곳 토종 막걸리가 훨씬 맛있습니다. 이렇게 경제, 문화, 언론, 이런 것들이 지역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정치적 선택을 이제 해야 하는 거죠.

– 마을기업이야말로 농?산촌 지역이 많은 강원도에 적합한 사업 모델이라고 하셨는데….

지역공동체, 코뮌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삶이 완결된 구조를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 안에 아까 말씀드린 지역 정치, 지역 경제, 지역 문화… 이걸 다 넣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 마을기업이 지역경제를 담당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 기업에 농촌진흥원이나 중소기업진흥원에서 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해주는 거죠. 경제적 토대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게 안 되면 나머지가 다 안 돌아가니까.

– 늘 기름을 쳐줄 수 없으니까 자기들이 스스로 굴러가게 해주는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겠죠.

그렇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44곳의 마을기업이 있습니다. 또 마을기업을 비롯해서 사회적기업이나 주민밀착형 사업이 확대되고 있는데,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주민의 노력과 도의 지원이 갖춰지면 마을기업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조직도를 물구나무 세우면

– 화제를 좀 바꿔서 주민자치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지역을 다녀보면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지역사회와 괴리돼 있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은, 인간을 대상으로 보지 말고 목적으로 보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정치, 경제, 행정, 모든 분야에서 주민을 유권자로, 소비자로, 민원인으로 봐왔지요. 거꾸로 된 겁니다. 제가 MBC 있을 때도 했고 여기서도 곧 할 건데, 조직도를 뒤집는 거. 도지사가 제일 밑에 있고, 그 위에 실?국장, 과장, 팀장, 제일 위에 도민…. 물구나무 세우는 거지요. 그 동안 많이 누렸으니….(웃음)

– 그나마 농촌 지역에는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었는데, 점점 해체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유지하거나 복원할 방법이 없을까요.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여러 요소가 있어야 하지만 제일 어려운 게 사람인 것 같습니다. 리더 역할을 해줄 분이 있어야 하는데, 충원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도 요즘 약간 희망이 보이는 게, 지역으로 오는 분들 중에 역량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이 지역에는 군 퇴직자도 많고 농고나 공고 출신들, 기술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앞장서고 도가 지원한다면 뭔가 그림이 될 것도 같습니다.

–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일을 할 수 있도록 도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는데, 복안이 있으신지요.

제가 돌아다니면서 주민자치를 좀 하자고 하면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거꾸로 당하고 와요.(웃음) 그래서 야 이게 교육이 제일 중요하겠구나, 새삼 생각하고 있습니다. 깨쳐서 하겠다면 뒷바라지 할 자세는 돼 있는데, 아직은 잘 나서질 않네요. 마을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도 없는데 예산 줘봐야 소용없어요.

– 도 차원에서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한 조례 제정이나 주민자치 지원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 면에서 주민자치위원 교육이나 정기 워크숍을 지원하고 있고, 주민자치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생활자치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마을학이나 지역학 운동을 권하고 싶습니다.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폭넓게 알아가다 보면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생기고, 마을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생깁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하지 말고, 작은 학습활동으로 자치능력을 키워나가자는 거지요.

– 긴 시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담_ 윤석인 (희망제작소 소장)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진행 정리_ 김경환 (한국자치학회 미디어본부장)
사진_ 조재무 (한국자치학회 기자)

*본 글을 월간 주민자치 2012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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