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8) – 청춘연구소 컬처플러스 최정원 대표·고은샘 기획실장
청춘연구소 컬처플러스(이하 청춘연구소)는 지난해 부산외대 도서관과 손잡고 ‘마을에서 먹고사는 청년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청년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도 참여의 문을 열었는데, “청년들이 마을에서 먹고살려면 마을도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청춘연구소는 부산 진구의 동네청년공간인 ‘청년마루’를 운영하면서, 마을 청년들은 편의점 대신 동네 시장을 들락거리고 주민들은 청년마루를 통해 청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 마을(지역)살이 전문가 최정원 대표와 고은샘 기획실장을 지난 8월 27일 만났다.
최정원 대표는 청년들의 온전한 마을(지역)살이를 위해 세대 간 이해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고, 지역의 청년 커뮤니티와 주민 간 접점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이러한 방식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최정원 “2013년 고려대 대학원생이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였을 때였어요. 당시 저도 대학원생이었는데, 같은 전공(평생교육) 친구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아 6인 공동대표 체제로 ‘청춘연구소’를 꾸렸어요.
당시 활동 중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드리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국밥을 한번 사드시는 게 소원인 할머님이 계셨어요.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도 가난하게 사셨고 자녀들도 형편이 어려워서 외식이라는 걸 아예 못해보셨대요. 저희가 축제 때 닭꼬치 장사를 제법 잘해서 프로젝트 진행 자금을 마련해뒀거든요. 그걸로 국밥을 사드리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대접하면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었어요. 말씀 끝에 ‘참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국밥 한 그릇, 커피 한 잔이 대체 뭐라고…. 글을 모르신대서 할머님 성함과 ‘행복’이라는 글자를 써드렸더니 매일 보며 외우시겠대요.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그 할머님을 포함해 저희가 만난 어르신들의 삶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고 어르신들과 가족들을 초대해 공연을 했어요. 연극을 처음 보는 어르신도 많았는데, 극이 진행되는 도중에 배우들에게 ‘아이구, 힘들지’ ‘속상하지’ ‘고생했다’고 말을 거시는 거예요. 갑자기 참여형 연극이 되어버렸는데 분위기는 너무 좋았지요. 평생 못 잊을 순간이라고들 하셨어요.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하나는 모두가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청년들이 그런 행복을 누리기 힘든 현실, 다시 말해서 ‘청년문제’는 청년뿐 아니라 전 세대의 문제고, 전 사회가 다 관여해야 해결이 되겠구나. 당시의 경험이, 청춘연구소를 함께 만든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고 결국 저 혼자 남아 지금까지 10여 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동력인 셈이에요.”
고은샘 실장은 언제, 어떻게 청춘연구소에 합류했나요?
고은샘 “제가 귀향해서 통영시 청년정책위원회 일을 하며 만났어요. 최 대표가 부산의 실력 있는 청년 활동가로 소문이 나서 통영시에 스카우트(웃음)되어 왔어요. 2년간 통영 봉평지구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면서 통영시 청년정책위원회 활동도 함께했거든요.
저는 서울살이에 지쳐있던 차에 통영시 청년창업지원사업에 응모하면서 고향에 돌아와 창업을 했어요. 그런데 이듬해 2기 지원자를 모집할 때까지 통영시 쪽에서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거예요. 청년을 지원했으면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점도 이야기하고, 더 효과적인 지원방안을 함께 찾아야 하잖아요? 청년정책 관련해선 청년정책위원회에서 청년정책을 심의·의결 한다기에 ‘그럼 거기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죠. 청년정책위원회에서 최 대표를 만났는데, 청년문제 해결의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고 하고자 하는 방향도 비슷했어요. 터놓고 이야기하다 꾐에 넘어가게 된 거죠.(웃음)”
청춘연구소는 통영에선 청년들의 농어촌살이를 고민했고, 지금은 부산 진구 청년들의 마을살이를 지원하고 있어요. 부산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청년들의 마을살이가 힘든가요?
최정원 “농어촌이든 대도시의 동네든, 문제의 본질과 양상은 똑같아요. 일단 청년이 지나간다, 한 명 이사 왔다, 온 동네가 다 그 청년만 보고 있어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그 청년은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인사를 통 안 해요. 어쩌다 한마디 했더니, 그 청년이 집 밖으로 안 나와요. 이게 주민들, 어르신들이 바라보는 마을의 청년이에요.
마을로 간 청년들은 섬이 돼요. 먹는 거, 노는 법, 언어와 문화까지 다 달라요. 자기 삶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못마땅해하는 걸 아니까 마주치기 싫고 불편해요. 마을에서 나가고 싶어요. 청년들이 여러 명 있어도 상황은 같아요. 그 동네 ‘외계인’에서 ‘외계인들’이 될 뿐이에요. 그런 상태에서 지자체가 마을에 청년센터를 만들면 ‘외계인 기지’가 되는 거죠.
청년이 마을에서, 공동체 안에서 잘 먹고 잘살려면, 그리고 마을이 청년을 품은 활기찬 공동체로 바뀌려면 청년과 마을이 둘 다 변해야 해요.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 심리적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해요. 서로 준비하고 연습해야 돼요. 청년마루는 그런 연습을 하는 공간인 셈이에요.”
고은샘 “청년마루의 운영방향은 크게 두 갈래예요. 하나는 마을 어르신들이 청년마루에 편하게 자주 들르시고 또 청년들이 기획하는 축제나 이벤트를 통해서 청년들을 자주 만나고 활동을 지켜보고 참여하면서 익숙해지시도록 준비시켜드리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청년들이 ‘동네친구’를 만들어서 마을살이의 재미를 찾고 고민도 나누고 미래도 함께 그리는 한편 마을의 암묵적 규칙, 오래된 생활문화 같은 것들을 직접 조사하고 경험하면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편의점 대신 마을에 있는 시장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며 인사를 나누고 청년마루에 모여서 같이 밥을 먹는 식이죠. 그렇게 먹는 밥 한 끼가 청년마루에서 진행하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인 경우가 많아요.”
올해 부산외대 도서관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청년르네상스’인데요, 청년의 행복을 ‘정치참여’에서 찾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최정원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빨리 성장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출발선도 공평하지 않은 상황에서 죽도록 경쟁하다 남은 한 줌의 승자만 행복하다면 결국 모두가 불행한 사회인 거죠. 저는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매일 따뜻한 밥을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이런 행복을 누리려면 일자리, 주거부터 시작해 많은 문제들이 해결돼야 하고, 문제가 하나씩 풀릴수록 청년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 세대가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죠.
청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모든 활동, 자신의 사회적 권리를 깨닫고 주장하는 모든 행동이 ‘정치’예요. 더 행복한 삶을 꿈꾸는 청년은 누구나 정치적이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너, 혹시 출마하려고 하느냐’는 식의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고(웃음)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청년의 행복과 정치’를 주제로 강연을 준비했어요.”
고은샘 “부모님이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하셨는데, 부모님 세대는 시대적 과제와 대의명분이 있었고 그걸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본인은 물론 남들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 그런 삶을 산다고 평가받았잖아요. 그런 부모세대에겐 단일하고 절박한 시대적 과제도 없고 개인의 삶을 헌신할 이유도 없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아무 생각이 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세대’로 비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우리 청년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방향을 정해 살아가야 해요. 그러다 보면 방황도 하고 실패도 하게 마련인데 우리사회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기회도 일부에게만 줘요. 각자 살아남기 바쁘다 보니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잡기가 점점 더 힘들죠. 저는 청춘연구소가 청년들에게 경쟁에서 밀리거나 한번 실패한다고 해서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너의 성장과 행복을 가로막는 것들은 대부분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니 함께 풀어나가자며 손을 내미는 존재가 되길 바라요. 그걸 정치참여, 정치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최정원 “저출생 문제를 청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나를 포함한 주변 친구들 중에 아이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다음 세대’에 대한 인식이나 책임감이 줄어드는 상황인 거죠. 부모세대는 ‘살기 힘들어도 자식 때문에 산다’고도 하고 ‘자식 보기 부끄러워서 나쁜 일을 안 한다’고도 하는데 청년세대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긴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청년들은 불임세대고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청년세대는 자신의 삶,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한 만큼 당장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들이 변해야 행복해질까 고민하고 움직이는 행동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청춘연구소에서 그런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려고 해요.”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