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6기 목민관클럽 7차 정기포럼이 ‘지속가능한 지역재생 활성화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2015년 5월 28일~29일 1박 2일 동안 전남 여수시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마을만들기 및 도시재생을 포함한 지역재생의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을 모색해보기 위해 개최되었다. 22명의 단체장과 200여 명이 넘는 관계 공무원이 참석하여 포럼의 열기를 돋웠다.
도시는 지역 여건에 따라 성장하거나 쇠퇴한다. 쇠퇴하는 도시는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거나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등 물리적?환경적?경제적?사회적인 활성화가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을 도시재생이라 한다.
한국전쟁 후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도시는 급성장했으나, 농산어촌은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며 쇠퇴해왔다. 도시 중에서도 산업별 흥망성쇠에 따라 성장과 쇠퇴의 명암이 갈린다. 도시 내에서는 대규모 주거단지 건립과 신규 산업단지 유치에 따라 신시가지가 형성되고 구시가지는 쇠퇴하면서 높은 재개발 압력을 받아 왔다. 이 과정에서 도시재개발은 국가나 지자체의 체계적 관리보다는 개발이익을 활용한 상업적 개발방식으로 진행됐고, 거주자 삶의 질을 개선하기보다는 개발세력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 결과 세입자와 임차인들의 주거권과 생활권?영업권이 개발자의 이익과 상충하며 극한의 대립을 불러왔고,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급속한 산업화로 한국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인구의 91%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등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미국, 일본 등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경제성장 동력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후 한국경제 성장률은 5%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최근에는 3%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한국경제와 도시성장의 패러다임은 고성장구조에서 저성장구조로 전환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용산참사 이후 정부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도시재생에 대해 집중 논의하기 시작했다. 2013년 도시의 활력 회복을 위해 공공의 역할과 지원을 강화하고, 도시의 자생적 성장기반 확충과 도시의 경쟁력 확보, 지역 공동체 회복 등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이바지가 목적인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덕분에 인구감소, 지역경제 침체,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도시재생특별법은 크게 주민과 지자체 중심의 계획수립, 중앙과 지방의 지원조직 구성, 도시재생사업의 지원, 선도 지역 선정 등 4가지로 요약된다. 특히 도시재생계획은, 국가가 도시재생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도시재생기본방침을 수립하고, 지자체는 주민과 함께 기본방침에 맞게 도시재생전략계획(기본구상)과 도시재생활성화계획(실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러한 국가차원의 제도정비와 함께, 현장에서는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마을만들기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개별사업으로 진행되던 마을만들기는 서울시의 본격 추진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목민관클럽 7차 정기포럼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의 방향과 흐름, 지방정부의 역할을 살펴보고, 지역에서 참고할 만한 선도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도시재생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을 발굴하여 토론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 아래 글은 목민관클럽 7차 정기포럼의 발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개발과 성장시대 이후 도시재생사업의 방향
– 변창흠 서울SH공사 사장
저성장 시대, 도시재생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서울시의 재생사업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시범사업을 하거나 해제하는 것을 넘어 다른 지역에도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 부분을 집중해서 얘기하겠다.
우리나라의 도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했고 그 중에서도 수도권의 인구집중은 특히 심했다. 1960년 245만 명이었던 서울 인구는 30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하여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이만한 인구가 모여 있는데도 주거, 일자리, 교통, 복지 등 도시의 기본적인 기능이 작동되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도시는 수평적으로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재개발, 재정비사업을 통해 수직적으로 팽창해왔다. 뉴타운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뉴타운사업은 해당구역으로 지정된 곳만 200개 구역이 넘을 정도로 남발돼왔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만 좋았다면 모두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지만 사실 가능하지도 않았고, 됐다고 해도 해당 지역 세입자 주거 부족 등으로 인한 문제가 많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꿈을 꾼 게 아닌가 싶다.
보통 재개발과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주체는 토지 소유주와 그들이 설립한 조합이고, 사업의 핵심은 개발이익이다. 정부에서 돈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지역을 재생하려 하다 보니 돈이 되는 곳만 개발되었고, 개선이 필요한 열악한 지역은 방치돼 왔다.
우리 사회는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다. 개발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개발이 아닌 관리, 개발지구 해제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새롭게 강조되고 있는 용어가 도시재생이다. 관련법도 생겼고 기금도 만들어졌다. 현재 열 세 곳이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모두 중앙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재정을 투자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방정부가 어디까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서울시 도시재생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기본 방향은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모델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2012년 뉴타운지구 683개 중 239개 구역이 해제되고 340개는 정체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도하게 구역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해제된 이후 어떻게 해야 할 지 대안이 없다. 제기동 4구역의 경우, 이미 60% 철거가 진행되고 매몰비용만 300억 원이 소요됐는데 주민의 25%가 신용불량자이고 이자는 계속 쌓여가고 있다. 이렇듯 건물이 철거되고 주민도 이주했는데 사업이 안 되는 구역이 가장 어렵다. 주민, 조합, 시공사와 SH공사가 협력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 과정에서 공공이 적극적으로 관리, 통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공공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해도 조합, 시공사 등이 간섭하지 말라며 거부할 때가 많았다.
일본 롯폰기힐즈(roppongihills)는 모리빌딩이라는 회사가 개발했다. 모리빌딩은 100여 개의 빌딩을 개발하며 분양하지 않고 임대와 관리만 하고 있다. 50~100년을 내다보고 지역자산과 결합해서 개발하고, 개발된 후에도 지역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분양할 때까지만 관리하다가 분양되면 떠난다. 경기가 활성화되어 있을 땐 이런 식으로 사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업이 안 된다. 도쿄 지역에 도시재생 특별법을 적용해서 용적률을 3배 정도 높였는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부동산업자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용적률을 높이면 땅값이 오르고 거기에 건물을 지어서 분양하고 이익을 남긴 후 떠나면 그만이다. ‘힐사이드테라스’라는 서점이 있는데 민간부동산회사가 저층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점과 쇼핑센터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대학생 대상으로 임대주택 사업도 하는데 이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주고 대신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도록 한다. 일본은 금리가 낮고 이런 기획력이 있어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대형 건설회사에게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해줄까? 재생사업에서 SH 같은 지방공기업이 공공개발자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천천히 개발하면서 정비하거나 고가도로 밑을 예술촌으로 만든 일본 사례도 있다. 구청이 주도하기도 하고 주민이 주도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주거지는 소유자 조합이, 상업지는 대기업이 개발하면서 이익만 남기려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공공이 지역에 장기적으로 기획, 관리, 투자하고 개발이익을 지역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지금의 시공사와 민간회사가 그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주민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공의 신뢰를 기반으로 시민투자를 받는 모델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 중 하나로 개발 사업에서 SH가 총괄시행자 역할을 하고, 시유지를 위탁받거나 지역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한다. 부동산투자신탁인 릿츠(Real Estate Investment Trust: Reits)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일본에서 릿츠가 가능한 것은 금리가 낮고 기획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릿츠를 공기업 산하에 둔다면 준공공회사로 관리가 가능할 뿐 아니라 공공으로부터 임대받은 땅과 건물을 저렴하게 민간에 임대하고 돈도 장기 저리로 대출해주면서 재생사업 등에 적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에 시민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제 SH공사가 서울시 시유지를 관리하게 되었는데 이를 개발해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지역재생을 하는 마중물 재원으로 쓰려고 한다. 이 토지를 도시재생자원으로 활용하면서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사업들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시유지 관리를 위한 조직을 만들 것이고 필요하면 토지 은행 역할을 하고자 한다.
서울시에서도 시유지나 구유지를 지역재생자원으로 쓸 수 있다. 유형별로 어떤 정비모델이 가능할지 고민이다. 우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호한 사업은 시공사와 협약을 통해 매몰비용 등 일부를 보전해주고, 대신 릿츠가 일반분양분을 매입하여 임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정비구역 외 시유지를 단순 매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지분을 임대주택,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비 사업에서 해제된 곳은 공원, 택배, 커뮤니티 시설 등 해당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여 설치하고 주민들이 관리하도록 할 수 있다.
현재 정비가 필요한 열악한 지역은 사업성이 낮아 정비가 안 되고 있다. 이 부분은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시유지 일부 재원을 투자하면 어떨까 한다. 공공이 과다하게 개입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시장에 맡겨놨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나 재생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도시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과도한 민영화, 상업화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시공사 대표, 보수 언론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해봤는데 공공이 주도적 역할을 해주길 원하고 있다. 공공의 역할이 있다면 모든 문제 해결을 시장에 맡겨버리는 방향이 좀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는 중앙정부 획일적으로, 국가공기업 중심으로 택지개발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절대적 주택이 부족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하면 재생사업의 추동력이 사라지고 만다. 공공도 상업성을 고려해야 한다. 역사문화 콘텐츠와 연계해 지역정체성에 맞는 재생사업을 하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지방화가 필요하고 지방공기업에도 권한을 줘야한다. 국가공기업과 달리, 현재 지방공기업은 주택기금 융자만 가능한데 그런 규제를 풀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문제가 주거복지와도 연결된다. 주택을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주도의 수리사업 등과 결합하여 자체정비 등을 시행하면 수익이 발생하고,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을 이룰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주체적 리더를 육성하고 구청과 협약을 맺어 공동 방안을 마련해보려 한다. 또한 20호보다 더 작은 소규모 모델을 시도해보고 확산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참여형 릿츠도 필요하다. 분양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임대하고 지속적, 안정적 관리가 되는 재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을사람중심의 도시재생 사례와 시사점
– 이석환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창원 시범지역에서 주민 주도적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마을 문제를 찾고 어떻게 바꿔나갈지,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정말 열악한 지역은 정비 의지가 있어도 경제적, 물리적 조건이 부족해 개선 조건 자체가 안 된다. 현장에서 주민을 만나면서 느꼈던 점,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도시재생 유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 보여드리는 것은 근린형 작은 공동체 중심의 낙후된 지역의 재생이라고 보면 되겠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도시를 책임져왔지만 이제는 도시가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견인해야할 때가 왔다. 유엔 미래보고서에서도 ‘도시의 미래가 곧 국가의 미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저성장시대, 인구절벽시대라고 한다. 고령화 추세도 빠르다.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주민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스스로 주거환경을 정비할 여력이 없다.
낙후된 주거지에 들어갈 때는 주민들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도시재생 활성화 요건 지역으로 지정된 곳들은 아프지만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도저히 안 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거지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에 맡길 것인가, 공공이 어디까지 역할을 할 것인가?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자유와 개입의 중간 지점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동일한 기회를 주는 동시에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쪽방촌에 가보면 아직도 공동화장실 임대료 내기도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다.
처음 지역에서 주민을 만나면서 지속가능한 마을, 도시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뢰를 쌓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그래야 진지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다. 주민들은 행정, 전문가를 잘 안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주민을 귀찮아하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창원에서는 처음 1년 동안 계속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무엇보다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주민, 전문가, 행정이 상호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노후 지역 주민들에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거 자체가 부담이다. 천 원 짜리 하나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들과 만나고 논의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정의 지원할 때는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들 스스로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을기업을 통해 조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을기업은 그 정도만 해도 성공이라고 본다. 돈이 선한 것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이다.
창원에서 느슨한 주민협의체를 만들고 함께 만나서 공부했다. 계속 학교를 운영하면서 언제든 오시라고 했다. 주민들과 학교를 운영하다보니 마을자산도 찾고 이를 활용해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사단법인이지만 협동조합 수준의 정관을 가지고 있다. 마을기업이 잘되면 개인이 소유하려는 사람이 생기는 등 문제가 종종 발생해, 협동조합이 아닌 사단법인으로 머물고 있다. 주민들과 마을축제도 했는데 마을만의 고유한 이야기,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프트웨어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축제를 해야 한다. 주거지는 관광지가 아니다. 주민들이 사는 공간, 터전이다. 관광지로 만들거나 성과로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탑다운 얘기도 많이 하는데 전문가들이 아직도 너무 빨리 간다.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13개 지역이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야 한다. 전문가는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어야 하고 행정은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한다. 주민들이 그 사이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얼마나 개입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민들이 행복하려면 스스로 결정한 것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끼게 된다. 서로 소통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 적절한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 그와 함께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어가는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마을벽화 그려주는 건 주민참여에 있어 한계가 있다. 촌스러운 낙서라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발견한 자산을 가지고 도시재생대학과 마을학교를 통해 주민, 전문가, 공무원이 함께 만나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주민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사업이 끝나도 지속될 수 있다.
장소만들기도 했는데, 디자인보다 함께 공감하는 비전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했다. 주거지든, 상업지든 기본적으로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제대로 된 방향을 바라보며 가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바로 잡기 어렵다. 개인 욕심을 가지고 왜곡하기 시작하면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행정도 성과만 보고 가면 잘못되기 쉽다. 이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복지, 마을에서 마을로
– 강위원 광주 광산구 더불어락복지관 관장
9년 전, 농촌복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영광으로 귀농귀촌을 했고 여민동락공동체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역에는 복지가 없고 업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 농촌에는 농협 직원과 공무원만 살고 있지 않을까? 선거 때마다 실현 불가능한 계획으로 주민들을 농락하고 4년짜리 단기 계획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10년 이후 농촌의 복지, 경제, 문화, 재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민들과 함께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던 학교를 살리고 모두가 조합원이 되어 마을가게를 시작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유일하게 군내에서 인구가 늘고 있다.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에게 꿈을 여쭤본 적이 있다. 시작할 때부터 주민들의 꿈을 묻지 않는 행정이 문제다. 70세가 넘은 할머니에게도 ‘내가 직접 일해서 손자 용돈 주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협동조합에 참여하셨다. 복지가 지역의 재생에 기여해야 되지 않느냐고 얘기하면 시골이니까 가능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지금은 잠시 광산구에 파견 나와서 일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광산구 운남권 노인복지관인데, 철학과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더불어락복지관’으로 바꾸었다. 아무리 복지를 해줘도 어르신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고 행정과 정치는 이들을 복지대상자로만 취급하고 있다. 옥상에 탁구시설이 있는데 불법 가건물이다. 전전 구청장이 지었는데 정치와 행정이 협잡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어르신들이 그냥 떼쓰면 안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 복지재정 투입이 100조 원 가량 되는데 실제 주민들은 행복할까? 이제 땅 사고 건물 짓는 토건복지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있는 공공건물을 공유시설로 변화시켜야 한다. 더불어락복지관은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처음 밤늦게까지 운영한다고 했을 때 안전과 화재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이 반대했다. 인근 복지관 관장들은 자기들도 늦게까지 복지관을 열어야 한다며 반대했다. 처음에는 복지관이 열려있는 줄 모르고 사람들이 잘 안 왔다. 그런데 6개월 지나니까 주민들이 오기 시작했다. 사실 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 당사자들도 복지관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들만을 위해 써야지 왜 다른 주민을 위해 쓰느냐’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 어르신들이 떼쓰지 않게 되었다.
복지관의 3년 치 전기요금 내역을 공개하고, 어르신들이 그 내용을 알게 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전에는 1년 중 6개월은 에어컨, 6개월은 히터를 켰다. 그런 부분에 대해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고 아무도 절약하지 않았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5천 명의 어르신들이 복지관에서 무한 탐욕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기요금을 공개하면서 스스로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전국의 복지관이 민원 때문에 질식할 지경이다. 우리나라 행정이 어르신을 복지 대상자에서 복지 주체로, 마을 꼰대에서 원로로 예우하는 복지를 시작해야 한다. 복지 대상자로 취급하면 손을 벌리게 된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식당과 북카페 운영을 시작하면서 어르신들이 출자하도록 했다. 전통시장에 팥죽집을 차렸다가 지금은 황태국밥집으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돈 내라고 하니 반대가 심했지만 설득하면서 두부공장도 운영하게 되었고 북카페도 냈다. 자기 돈이 들어가면 참여도 늘어나고 주인의식도 높아진다. 물론 공무원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상가번영회가 반대하고 시끄럽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안 해주려다가 청장님이 지시하니 갑자기 노인일자리 창출 등의 근거를 만들어 된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공간이 텅텅 비어있고 놀더라도 무언가 시작되는 것 자체가 업무가 복잡해지고 민원이 생겨 싫은가 보다. 지금은 이 모델이 모범사례로 꼽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행정에서 했다면 과속과 성과주의 때문에 실패했을 것이다.
팥죽집이 망해가니까 어르신들이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두부공장도 처음에는 다 안 된다고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모두 반대한다. 저희가 광주에서 두부공장 중 협동조합이자 HACCP인증을 받은 곳으로는 최초인 것 같다. 더불어락은 이제 명실공히 주민 공간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공유공간, 공유복지 개념에 대해 이해를 잘 못했다. 사실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은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됐다. 어르신들의 사회적 성숙과 지구촌 나눔 등을 위해 기부하도록 했다. 어르신들이 재능기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타이른다. 노인복지관이지만 낮에는 노인복지, 밤에는 마을복지, 주말에는 청소년복지를 한다. 노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을에 환원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이 함께 마을민주주의 복지 모델을 만들었다. 주민을 존엄하게 예우하고 복지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민이 규칙을 만들고 정치가 그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글_ 송정복 정책그룹 선임연구원 / wolstar@makehope.org
임은영 정책그룹 선임연구원 / ley@makehope.org
이남표 정책그룹 위촉연구원 / smond@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