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박진숙 죽곡농민열린도서관장
이 사람을 한 자리에서 인터뷰하긴 어렵습니다. 온종일 동네 여기저기 뜹니다.(딱 몽덕 희망원정대장 타입입니다.) 이 사람 직함만 나열해도 한 문단이 될 지경이에요. 박진숙(51) 죽곡농민열린도서관장,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대표, 곡성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대표, 섬진강마을영화제 공동위원장은 생태농업을 하는 농부입니다. 지난 5월까지는 전남 곡성군 죽곡면주민자치회 자치분과위원장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연결입니다. 사람을 연결해 공동체의 가장 약한 자들을 떠받쳐요. 그 연결망을 타고 가장 약한 자들이 목소리를 냅니다.
아침엔 마을학교 선생님 저녁엔 영화제 공동운영위원장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죽곡초등학교 체육관, 지금 그는 마을학교 선생님 ‘잎싹’입니다. 다른 마을 선생님 셋, 남자 아이 두 명과 배드민턴을 칩니다. 아이들 표정이 어둡습니다. 아이들 팀이 지고 있어요. “물놀이 할래요.”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앞 죽곡천, ‘잎싹’과 아이들이 머리에 대나무 바구니를 썼습니다. 송사리를 몰아 잡았습니다.
전날 저녁 7시, 그는 섬진강마을영화제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공동체상영회 날, 마을 사람들이 옥과면에 모여 가수 정태춘의 삶을 그린 다큐 <아치의 노래>를 봅니다.(몽덕 대장도 관람했답니다.) “영화제 추진위원이 돼 주세요.” 그는 한 사람씩 꼬드겨 1000명을 모아 오늘 9월 1일~3일 열리는 영화제의 추진단을 만들려 합니다. 진 빠지는 일이에요. 지난해 섬진강마을영화제, 추진단 없이 잘됐습니다. 2박3일 동안 600여명이 환경과 공동체를 주제로 삼은 영화를 보러 왔어요. 왜 쉽게 가지 않을까요? “지난해엔 외지인들이 많았어요. 이번엔 주민들이 함께 만들고 누리는 영화제를 만들려고요. 기후위기나 지역 소멸이나 자본의 탐욕 탓인데 거기 대항해 다른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곳이 농촌이잖아요. 이걸 알리는 게 영화제고요.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기서 재밌는 방법이 뭘까요? 뭐든 시키는 거 하면 재미없습니다. ‘자치’의 작당은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서 시작됐습니다. 농민회가 2004년 4평짜리 공간에서 연 도서관이에요. 2014년 관장을 맡은 그는 누구나 선생님이자 학생이 되는 ‘마을학교’ 등 여러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더라고요. 아이들이 지역에 대한 자존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 주민들이 존중받으려면 뭘 해야 할까? 그러다 주민자치회를 생각하게 됐어요.” 2019년 그와 죽곡면 사회복지과 공무원 등 네 사람이 뭉쳐 주민자치연구모임을 만들고 행안부 시범사업에 지원해 선정됐습니다.
10살부터 83살까지.. 죽곡면주민자치준비위원
‘죽곡면주민자치준비위’에 10살 초등학생부터 83살 할아버지까지 들어왔어요. 48명 위원 중 6명이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애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는 할아버지 위원도 있었어요. “딱 하나 약속하자고 했어요. 한 사람씩 똑같은 시간을 주고 얘기 들어보자고요.” 아이들은 문방구와 방송댄스 연습실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모아 준비위는 지역 의제 21개를 만들었습니다. 28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었어요. “필요한 게 뭐예요? 힘든 게 뭐예요?” 주민들 의견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토란도란 죽곡마을잔치’, ‘죽곡문화유산탐사대’,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 형광등 갈아주고 반찬도 해주며 ‘홍반장’이 돼 주는 ‘죽곡마을119’ 사업을 벌였습니다.
토란 빨리 깎기 대회 승자는?
‘토란도란 죽곡마을잔치’ 이름은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제안했습니다. 여기 특산물이 토란이에요. 축제는 “인기 짱”이었습니다. 인기 비결은 역시 ‘쿠폰’. 요리대회, 노래 자랑… 마을 사람들 모두 “소쿠리 하나”라도 받아갔습니다. ‘토란 빨리 깎기’ 대회에선 ‘장비’를 준비해온 할머니가 우승했어요. 평생 토란을 깎아 토란 모양으로 닳아버린 몽당 숟가락이 할머니의 장비였습니다.
축제에 쓴 토란들은 ‘마을학교’에서 왔습니다. ‘마을학교’ 토란 선생님은 70대 할아버지입니다. 농약 치고, 비닐 씌워 개량종으로 토란 농사를 지어온 할아버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애들한테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될 거 같은데. 박 관장(박진숙 관장) 토종 토란 좀 있는가?”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비교해볼 수 있도록 토종, 개량종, 필리핀 왕토란을 준비했습니다. “마을학교에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성장해요.”(박진숙 관장) 아이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책 <토란밭에 뭐가 자라게>를 죽곡초와 함께 냈어요. “아이들이 살 터는 마을이니 교육이 학교와 마을을 넘나들어야죠. 아이들이 있어야 지역에 활기가 생겨요. 그런데 죽곡면에서 1년에 아이가 한두 명 태어나요. 우려한다면 뭐라도 해야죠. 작은 거로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요. 사람들을 묶어주면 돼요. 그 네트워크가 문제가 뭔지, 해결 방안은 뭔지 찾아내고 행정이 지원하면 그 마을은 재밌어질 거예요. 그런 마을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거죠.”
그가 사는 삼태마을이 그 믿음의 근거입니다. 2012년 그가 귀농했을 때 33가구가 살았어요. 10년 만에 76가구로 늘었습니다. “지역 주민들한테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지켜낸 공동체, 환경을 우리가 무료로 쓰잖아요.” 그는 저녁에 맥주 두어 병 사 들고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토란을 다듬었어요.
섬진강이 끼고 도는 청정한 삼태마을엔 차별이 뿌리 깊었습니다. 마을 농사 다 짓는 장애인 가족은 대놓고 무시당했어요. 장애, 비장애 주민을 아울러 ‘삼친회(삼태리에 친한 사람들)’을 꾸렸습니다. 마을회관도 청소하고 잔치도 열었어요. 신나게 어울리니 다른 사람들도 끼고 싶어했습니다.
공유텃밭으로 연결된 삼태마을
사람을 이어붙이는 데는 밥이 최고죠. 삼태마을의 변화는 공유텃밭이 불러일으켰습니다. 공유텃밭은 협동조합이 농림부 사회적농업지역서비스공동체 사업을 받아 꾸렸어요. 여기서 나온 식재료로 마을 사람들은 매일 밥 한 끼를 같이 해 먹습니다. 나머지 식재료는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갑니다. 집성촌인 삼태마을에선 성씨에 따라 사는 곳이 달랐어요. 아랫마을은 ‘성골’, 중간마을은 ‘진골’, 윗마을은 ‘6두품’ 식으로 차별했습니다. 밥 먹다가 그 경계가 점점 옅어졌습니다. 7080 남자들만 있던 개발위원회가 성별, 연령별 균형을 이룬 운영위원회로 바뀌었어요. 마을 전체 주민들이 모여 ‘희망포럼’을 열고 문제를 함께 해결합니다. 노인들이 마을에서 살다 죽고 싶다고 해서 요즘 마을 요양원을 어떻게 만들지 같이 고민 중입니다. “이런 마을자치가 모여 주민자치회가 되는 거죠.”
사업 아이디어를 짜낼 필요가 없어요.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협동조합에서 한울고등학교와 생태텃밭 수업을 했는데 입소문이 났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도 가르쳐달랍니다. 학교에 파견 보낼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학교생태텃밭정원교사 양성과정을 만들고 삼태마을 공동텃밭에서 실습했습니다. 이들이 올해 15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이 생태교사들의 선생님은 마을 할머니들입니다. 팔순이 넘은 이 할머니들은 공동텃밭에서 임금 받는 노동자예요.
사업의 시작은 옆구리 찌르기부터입니다. 은둔한 도예가가 있었어요. 주민들하고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슬쩍 물으니 싫답니다. 박 관장에겐 오랜 세월 연마한 ‘설득의 기술’이 있습니다. “한울고등학교 아이들 중에 마음 아픈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이 숨통이 트일지도 모르는데..” 도예가가 “그렇다면 한울고 학생들까지만 하겠다”고 했어요. 속도 조절이 중요합니다. 학생들도 도예가도 만족했습니다. “이번엔 죽곡초 애들이랑 한판?” “주민자치회 프로그램은 어때요?” 야금야금 활동을 늘렸습니다. 도자기 공예가의 ‘사적’ 공간이 동네 ‘공적’ 공간이 돼 갔어요. “공공기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농촌에서 최대한 엮고 묶어 공동체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해요.”
그는 이야기 듣는 능력이 탁월한데, 조기교육의 효과입니다. 전북 진안에서 인삼 농사를 한 아버지는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인삼밭에서 아버지의 천일야화를 들으려고 아이들은 노동도 불사했습니다. 아버지는 사건의 속도를 조절해 가며 아이들의 속을 태우고 노동 강도를 높였답니다. 대학을 전주에서 다닌 박 관장은 졸업 뒤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다가 광주 북분교 작은학교살리기 운동을 하며 대안 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을 만났어요. “대안교육을 고민하면서 부모가 대안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자본의 틀 안에서 살지 않는, 자립하는 소농이 되고 싶었어요.” 3년 동안 토요일마다 전남, 전북, 광주를 걷다 삼태마을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토종 씨앗을 가지고 생태 농사를 짓고있어요. 세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길렀습니다. “전혀 불안하지 않았어요. 유명한 대학 나와서 대기업 다닌다고 행복한 건 아니니까요.”
자치 완성 멀었지만.. 지금 재밌을 수는 있다
섬진강가 그림같은 죽곡면은 완벽한 주민자치를 이뤄냈냐면, 아닙니다. ‘자치’엔 당연히 갈등이 있습니다.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역 인적자원을 연결해 면단위로 교육.문화.돌봄 네트워크를 만들고 주민자치회로 결합해가는 게 이상적이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죠.” 연결엔 마음고생이 듭니다. 마을을 위해서 필요한 건 알겠어요. 그는 왜 사서 고생할까요? 박 관장은 답을 망설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못 해봤답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자연을 누리면서 우리 가족끼리 각자 모습대로 살려고 내려왔는데, 자꾸 마을이 보이고…”
곡성이 지역소멸 위기에서 벗어났냐면, 아닙니다. 죽곡면 인구는 2005년 2249명에서 2023년 1900명으로 줄었습니다. 죽곡초 학생수는 도시에서 온 유학생을 포함해 38명입니다. 그래도 지금, 재밌을 수는 있어요. 지난달 28일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며 심판을 본 마을 선생님 김금희 씨는 9년 전 곡성으로 왔습니다. “공동체, 도서관이 있고 주민자치프로그램도 중창단, 도자기, 국선도 등 다양해요. 지역에 생기가 돌아요. 움직여요. 그런 역동성이 좋아요.” 송사리를 잡은 아이들은 다음날엔 마을학교에서 빵을 굽는다고 하네요.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몽덕이희망원정대 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