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문화가 판치는 시대에 ‘한옥’은?

<박원순의 희망탐사 28>

지금 당신이 서 있는, 혹은 앉아있는, 혹은 누워있는 곳에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길거리에 있다면 바닥은 아스팔트나 보도블럭 위일 것이고, 주변에는 시멘트로 지은 고층건물이나 집들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건물 안에 있다면 바닥과 벽면이 온통 시멘트로 이뤄진 곳에 있을 것이다. 집에 있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모반듯한 시멘트벽과 바닥은 우리가 눈을 어디로 돌리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눈은 시멘트를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멘트는 인류의 삶을 바꾼 대단한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견고하고, 단단한 시멘트는 우리의 주거문화를 바꾸었고,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의 양식조차 바꾸었다. 나무와 흙, 돌 등으로 이뤄진 우리의 전통가옥이 없어지면서 우리의 삶은 과거와 비교해서 많이 바뀌었다. 이를 시멘트 문화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시멘트 문화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한옥의 아름다운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한 사람 경북 청도 한옥학교의 변숙현(48) 교장을 만났다.

서양의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한옥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그는 이후 전통건축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한옥의 전통을 살려내고,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한옥을 보편화시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한옥학교를 세웠다. 한옥에 대한 열정 없이는, 우리의 문화자산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게 5년 전 일이다.

서양의 건축학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한옥학교까지 열게 된 변숙현 교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옥의 멋과 철학에 흠뻑 빠지게 된다.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인들의 사고와 생각에 맞는 한옥을 재창조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시멘트 문화, 아파트 문화가 완전히 우리의 주거를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한옥문화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노력한다면 비록 그 동안 공고해진 시멘트 문화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한옥문화를 조금 더 확산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들머리에 변숙현 교장의 한옥학교가 있다.

‘내가 자랐던 한옥의 공간을 내가 설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부터
[##_1L|1160687207.jpg|width=”240″ height=”360″ alt=”?”|▲ 한옥학교의 변숙현(48) 교장. ⓒ희망제작소 _##] 변숙현 교장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현대 건축도 접해보고 약 7년 동안 시공업을 하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공병장교로 일을 했다. 군 생활 동안 그는 토목과 교량, 전기, 설비 등 건축과 관련된 일을 모두 접해보기도 했다.

그가 전통건축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군대 가기 전에 영남대학교에서 전통건축분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부터다. 그 학교에서 전통건축분야의 대가인 김일진 교수를 은사로 만나 전통건축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전통건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지만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사실 대학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에 집에 와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전통한옥이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혼자 책을 보다가 화장실이 밖에 있어 마당에 나와 서보니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당에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 끝에 밝은 달이 걸려 있고, 달빛에 비친 집의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달빛이 부서져 전통창살에 비치고 있었죠.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살면서 한번도 받지 못했던 한옥에 대한 감동은, 그러나 곧 좌절감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한옥을 설계할 수 있을지 도통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건축학도로서 설계를 배우고 있었는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건축을 배우고 서구의 학문을 배우는데 방금까지 머무르고 내가 자랐던 그 공간을 설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 설계의 아름다움, 내면적인 깊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조형적인 부분을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한옥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대학4학년 때 이런 생각들이 바탕이 되어 졸업작품을 초가집으로 정했습니다. ‘한국의 마음’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이를 만들기 위해 용인 민속촌에 몇날 며칠을 보내며 한옥을 보고 또 보게 되었습니다. 한옥에 심취했던 것이죠.”

한옥을 설계하지 못하는 건축사의 현실이 슬프다

한옥에 대한 아름다움을 깨달은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군 제대 후에는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 후 몇몇 대학에 강사로 출강하며 한국건축을 가르쳤지만 한계를 느껴야 했다. 대학의 건축학과에는 한옥, 즉 전통건축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학과의 커리큘럼은 서양건축이 주를 이뤘고, 한옥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를 짊어질 예비건축가들에게 한국건축의 이론적 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커리큘럼 자체가 서양건축이 주종입니다. 한국건축을 배우는 기회는 2~3학점인 한국건축사 한 과목 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현대주택만 설계할 줄만 알았지 졸업하기까지 한옥을 한번도 설계해 보지 않습니다. 또 어느 누구도 한옥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이 계속되다 보니 건축가마저도 한옥을 설계한다고 하면 이방인처럼 취급합니다.”
[##_1C|1155334363.jpg|width=”501″ height=”333″ alt=”?”|▲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변숙현 교장의 자택도 한옥이다. ⓒ희망제작소 _##] 전통건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론과 실제를 아우를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그는 사재를 털어 5년 전 경북 청도의 선산에 한옥학교를 세웠다.

학교의 기반시설확충이 최대의 문제-사재를 털어 산비탈에 한옥학교를 설립하다

한옥학교를 만들면서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옥학교의 부지는 선산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었지만 학교를 세우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는 학생들의 학비와 사비를 들여 학교 시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조상들의 집짓기 지혜를 조화롭게 다듬는다면 여기가 몇 년 안에 노천 한옥박물관이 되리라 본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을 그렇게 녹록치 않다.

“학교의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입니다. 한옥문화를 전반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합니다. 현재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가장 절실한 것이 우리 학생들이 먹고 사는 시설이다.
[##_1L|1396506046.jpg|width=”473″ height=”326″ alt=”?”|▲ 한옥학교에는 어린이들도 많이 찾아와 체험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인사를 하는 변숙현 교장. ⓒ희망제작소 _##] 이 아래에 아파트 한 채와 단독주택을 하나 얻어 분산 수용하고 있지만 관리하기도 힘들고 동기생들끼리 화합하기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전통건축은 공동체정신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4개월 동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기생들이 모두 한배를 타고 있는 공동체여야만 합니다. 다함께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한옥학교를 만들면서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시설확충도 문제였지만 한옥학교를 제도권에 안착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학교를 제도권에 안착시키기는 힘들었다.

교육부에 자문을 구했지만 자본금이 너무 소요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노동부에 자문을 구해 직업전문학교로 등록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옥학교는 우리의 전통문화재인 한옥을 유지, 보존하는 인력을 배출할 수 있고, 이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교육기관이어서 직업전문학교에 부합한다. 만약 직업전문학교가 되면 학비가 무료고, 생활비를 보조받을 수 있어서 한옥학교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도 여의치 않아 문화관광부와 교섭 중에 있다.

오늘날의 시대 인식, 가치관을 담는 이 시대의 한옥을 지어야

그는 한옥이 오늘날의 가치와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의 가치와 시대성이 담긴 한옥의 전형을 만들어 그것을 국민들에게 보급해야겠다는 당찬 꿈을 꾼다.

그 일환으로 만든 교육과정이 ‘스스로 집짓기 반’이다. 토요일, 일요일에 운영되는 이 반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건축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지만, 한옥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해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요구를 이들을 통해 듣고, 그것을 통해 한옥을 보완해나간다.

“한옥에 사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느끼는데 그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한옥으로부터 더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많이 보편화된 이후의 일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요구는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옥에서의 불편한 요소를 보완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그는 한옥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어 한다. 그 중 하나가 한옥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만 해당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짓는 모든 형태의 주거가 한옥”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초가집, 황토집이 모두 한옥이라는 얘기다. 볏짚을 이용해 지붕을 잇거나 주변에서 나는 황토로 벽을 바르는 것이 한옥의 전형적인 요소다.

한옥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옥을 많이 접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옥학교에서는 가족을 상대로 한옥체험 강좌를 수시로 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한옥에서 한번이라도 생활해본 사람이 한옥에서 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한옥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에게는 너무 동떨어진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한옥체험이 더욱 귀중할 수 있고 그런 체험을 해나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한옥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_1R|1213031481.jpg|width=”400″ height=”299″ alt=”?”|▲ 한옥학교에서 아이들이 실제 한옥 건축과정을 설명듣고 있다. ⓒ희망제작소_##] 하지만 한옥에서 살고 싶어도 한옥을 짓는 단가가 너무 비싸다는 경제적인 문제점이 있다.

변숙현 교장은 “한옥의 단가가 비싼 것은 기능공이 적고, 자재를 구입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을마다 건재상이 있지만 한옥자재를 다루는 건재상은 없고, 한옥을 짓는 숙련공은 더욱 찾기가 힘들다. 옛날 사람들은 동네 주민들끼리 품앗이 해가며 한옥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1년에 12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한옥학교가 소중한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졸업생 중 절반 정도만 실제 현장에서 일하며, 현장에서 형틀을 만드는 사람보다 한옥을 짓는 사람들이 덜 대접받는 현실은 여전히 한옥을 짓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것이 한옥의 전형을 제시하고 한옥문화를 보편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숙련공을 배출하는 일과 함께 이뤄져야할 이유다.

한옥을 지으려는 사람에게 공짜로 한옥을 지어주겠다.

-천혜의 주거환경에 있는 청도에서 한옥천국을 만들자는 제안

한옥에 대한 이해와 식견, 그리고 한옥문화에 대한 정신적 바탕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옥문화를 체험해야 생길 것이고, 주변에서 한옥문화를 많이, 계속 접해봐야 생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숙현 교장은 얼마 전에 청도군청에 제안서를 하나 전달했다. 제안서 요지는 청도에 가면 한옥에 살 수 있다는 인상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청도는 자연재해가 없는 천혜의 주거지이다. 그래서 청도군수에게 청도에 오면 한옥에 살 수 있다, 너무 저렴한 가격에 한옥에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렇다. 청도에서 한옥에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재료비를 내면 한옥학교는 인건비 안들이고 실습을 하면서 한옥을 지어주겠다, 그러면 한옥학교 학생들은 공짜로 배워야 하니까 한옥학교 운영비를 청도군에서 내달라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청도군수가 선거법위반으로 계류 중이어서 결재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한옥학교에서 “과거 한옥의 요소들을 모두 경험하고 돌아가도록 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 사람들로부터 우리 한옥에서 살아본 결과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 것인지 독창적인 경험과 의견을 들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청도군에, 폐교를 하나 빌려주거나 사 주면 구들을 놓고 지붕도 기와로 얹어서 한옥 형식으로 만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친환경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이곳을 체험장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놓기도 했다.

변숙현 교장 말은 한옥을 체험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인데, 거기에는 일정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폐교를 활용해 한옥체험, 전통문화체험, 먹거리 체험을 하도록 하자는 것도 그 일환이다. 얼마 전 전주시청에 한브랜드과가 만들어져 문의와 자문을 구해왔는데 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통한옥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전주라고 하면 예향의 도시고, 전통문화가 숨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한지, 한복, 한식, 한옥 등을 브랜드화 한다면 지자체로서는 좋은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창의적이어야지 답습해서는 안 됩니다. 한옥은 지어놓고 프로그램은 없어서 죽은 곳이 많습니다.”

한옥은 반만년동안 우리 자연환경, 한반도 사람들의 조형요구를 수용한 양식

한옥의 보편화, 한옥문화의 보편화를 꿈꾸는 변숙현 교장에게 우리네 삶과 함께 해온 한옥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한옥은 “반만년 동안 우리의 자연환경, 사는 사람들의 조형 요구를 수용한 양식”이자, “집짓는 이치가 다 숨어있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학성과 합리성의 요소가 다 들어 있는” 건축물이다.

“한옥은 반만년동안 우리 자연환경, 사는 사람들의 조형 요구를 수용한 양식입니다. 연속성이 단절된 것은 일제와 미군정기에 한옥이 주춤하면서 양옥이라는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옥을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잔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기 때문입니다.

한옥이라는 명칭이나 정의도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만이 한옥이 아니라 미래에 사는 후손들의 집도 한옥으로 불려져야 합니다. 저는 옛 한옥이 마르지 않는 보물창고라고 생각합니다. 집짓는 이치가 다 숨어있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학성과 합리성의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한옥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깊이감이 대단합니다. 범어사의 일주문이 한옥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건축물입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길은 더 대단합니다. 저는 그 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그 길을 바라보고 전율합니다.

오늘날 그 깊이를 건축물에 반영해 간다면 풍부한 내용이 들어가고 한국인의 미학이 포함되는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만약 오늘날의 한옥의 전형이 한옥학교에 세워진다면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관, 이 시대에 산출되는 재료,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대의 한옥의 전형과 한옥문화가 만들어 진다면 우리는 시멘트 문화, 아파트 문화와 조금은 거리를 멀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옥문화는 우리네 살림살이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변숙현 교장의 한옥사랑과 한옥운동은 그래서 단순한 복고운동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다시 일으켜 세워야할 건강한 주거권운동이다.

면담일시 – 2007년 3월 18일 오후 4시반

면담장소 – 경북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 산 112-4

면담인사 – 변숙현(한옥학교장. 경북 도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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