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뛰어넘는 공익재단들의 활약

편집자 주

유럽희망통신은 유럽 주요 국가들의 시민사회, 사회적 기업, 사회자본, 싱크탱크들이 만들어내는 희망적인 소식들을 국내에 전하려는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번 글은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 사회투자센터 (Centre for Social Investment)의 소장이자 NGO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인 헬무트 안하이어(Helmut K. Anheier) 교수가 년 1월 29일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FERI 재단 수상식에서 발표한 연설문인 “Der globale Wirtschaftsabschwung und die Rolle der Philanthropie – Die Chance der Krise “의 국문 번역본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현재의 경제위기의 새로운 특성들을 지적하면서, 비영리부문, 특히 공익재단의 형태를 한 기관들(Stiftungswesen)이 현대사회에 내재하고 점점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는 여러 위험들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여, 궁극에 글로벌 거버넌스의 유익한 주체가 될 수 있는 적극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위기 속에서 위축되어 있는 한국의 비영리부문 기관들, 재단들 그리고 시민사회 싱크탱크들이 공유해야 할 사고라고 판단되어, 그 전문을 번역, 소개한다.


머리말

글로벌 경제위기가 재단들과 제3섹터에 끼치는 영향은 여러가지 면에서 명확하다. 행사들, 활동들, 프로그램들의 발주가 취소되고, 이러저러한 기관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보고가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위기가 계속해서 확산되고 심화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영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재단과 제3섹터에게는 그다지 급하지 않게 나타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반면, 위기의 지속기간이 얼마간 이어질지는 불명확하다. 특히 위기가 재단들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어떻게 재단들은 증대하는 불확실성에 적절히 그리고 사전예방을 행하면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더더욱 명확치 않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의해 유발된 작금의 경제후퇴는 국가수준이든 국제수준이든 종래의 제도들이 제어와 규제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 무능함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전문가들이 바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문제”로 명명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글로벌화한 (globalisiert) 시장들의 파워와 그들에 대한 제어 및 통제력 사이의 불균형이 증대한 결과다. 현재의 금융위기 자체는 한편으로 그러한 문제들의 명확관화한 예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미국, 중국, 혹은 일본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도, 그리고 월드뱅크, IMF 혹은 유럽연합을 포함하여 그 어떠한 국제기구들도 현재 세계경제의 허약함의 정도와 범위를 측정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하나의 불행한 대답이기도 하다. 글로벌 세계의 “거버넌스 문제”가 적절한 초국가적 법규의 역량과 제도를 통해 수정될 때까지, 우리들은 계속해서 “징후들을 보며 병을 고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의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지적된 글로벌 문제들의 의미의 측면말고, 개인들과 재단들의 행동지향적인 이니셔티브의 측면에서 여전히 많은 것들이 행해질 수 있다. 바로 그러한 가능성들이 현재 재단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나의 고민의 핵심점이다. 옵션들 및 행동양식들에 해단 논의에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위기와 무관하게 어찌되었든 매우 개연성 높게 이루어질 발전들과, 위기로 인하여 이전보다 더욱 더 강하게 이루어질 발전들 두 가지를 분리시켜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위기가 없었어도 이루어졌을 발전들

대안적 미래는 단지 예감으로 직감될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지난 10년간의 발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특정한 경향들을 인지할 수 있다.

– 공공 서비스와 비영리 자본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었으며, 이들은 공적인 수단을 통하여, 경쟁에 기반한 부분적인 재원(Teilfinanzierung)과 더욱 더 강하게 결합되어 왔다.
– 재단들은 (예컨데, 건강, 사회적 서비스, 교육, 연구 및 정책에 있어서) 공사(共私)파트너쉽 (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s)과 보다 강하게 결합되어 왔다.
– 줄어드는 국가의 지원을 보완하기 위하여, 건강부문에서 시작하여, 예술과 문화, 고등교육을 넘어, 사회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역들에서 새로운 경제모델이 추구되었으며, 이는 재단에 대한 적절한 보상기대와 결합되었다.
– 재단의 재정, 경영 및 서비스가 전문화(Professionalisierung)되었다.
– 시민들의 참여가 증대하였다는 측면에서 재단들에 대한 정치적 인식이 증대하였고, 보다 높은 투명성과 결합이 이루어졌다.
– 기존의 인구집단들과 정치적 선호를 넘어, 재단들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Stiftungsfreudigkeit) 및 재단에 대한 우호성(Stiftungsfreundlichkeit)이 증대하였다.
– 재단들은 보다 강하게 국제화되어 갔다.

이러한 흐름들은 수사적인 지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지금보다 보다 심각한 위기의 맥락에 처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단들은 지속가능하고, 영향력을 보일 것이라는 단순한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예컨데, (건강부문 및 사회적 서비스 부문 등에서) 규제된 유사시장들에서 공적인 기관들의 사적인 기관들 (교육과 문화 부문에서)로의 전환 혹은 전이가 이루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영리조직과 기업간의 대체화(Substituierung) 과정도 점점 증가했다.

달리 표현하면, 많은 조직들이 그들의 형태를 변화시켰고, 많은 비영리기관들이 기업으로 발전되었으며, 많은 공적인 연구기관들이 사적으로 되었고, 공사파트너쉽이 그 빈도와 복잡성에 있어 증대하였다. 이는 심화되는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전환하는 과정, 그리고 그와 함께 연관된 복지국가의 재구조화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반면, 그러한 과정들은 예컨데, 적절한 수입구조, 공적인 재원과 사적인 이용의 최적의 결합, 재원의 운영, 평가기준과 고객유치 전략들, 공공성의 경계, 대표자의 역할, 사회적 기업, 경영 및 리더쉽의 스타일, 그리고 이질화 되어 가는 사회에서 재단과 국가가 갖는 특별한 역할 등의 주제들을 놓고 격렬하고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논쟁들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새로운 것들은 무엇인가?

지금의 경제위기는 새로운 주제와 발전들을 일깨운다.

– 사회적 수준에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불확실성에 대한 보편적 감성과 정치와 경제에서 기회주의(Opportunismus)적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 거의 모든 사람들이 케인즈주의를 새로이 발견하면서, 그것을 전형적으로 (아마도 제3섹터로는 단지 적은 부분들만 유입되더라도), 하나의 혹은 다른 막대한 공적 지출 프로그램을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독특한 정책적 장점을 지니는 것으로 해석한다.
– 공적 지출의 증가는 많은 다른 영역들에서 매우 혹독한 (drakonisch) 절감조치 및 예산감축과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종종 사적인 측면에서 (즉 재단들로부터) 보상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동반하며, 그와 함께 적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적인 수단의 촉진에 대한 수요는 재단의 자산이 압박을 받게 되는 시간 동안 증대될 것이다.
– 많은 기업들이 공고화를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고, 그들의 지분소유자들을 누그러뜨리려 시도한다. 공공선을 향한 행동들을 위하여 마련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과 재정적 수단들은 축소되고 있고, 사람들은 일자리 지키기 및 그와 유사한 보장을 위한 반대급부로 국가에 의한 지원수단들을 추구한다.
– 재단들은 오래동안과 그러하지 않았던 재산의 손실을 어느 정도 확인한다. 그들은 처분가능한 촉진자금이 감소할 것을 기대하고 있고, 재산의 안전성에 대하여 보다 강한 주안점을 두게 된다.
– 많은 사적인 가계들이 보다 큰 재정적 불안정성에 직면했고 하고 있는 바, 이는 기부의 수익과 무보수 봉사활동(Ehrenamtlichkeit)의 감퇴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재단들의 자산운영을 넘어, 세계경제 위기라는 큰 틀 내에서 지향점을 효과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분명히 재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점이 무엇인가를 새로운 시각에서 따져보고 나서야,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분명해 질 것이다.

재단들은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다른 기관들에 비해서 매우 적절한 이점을 지니고 있다. 현대의 재단들은 경제적 부분에서나 당파성에서 독립적 위치에 설 수 있는 특수성을 지닌다. 실제로도 가능한 최대한 독립적이다. 그들은 장기적인 주제를 잡고, 그에 맞는 해결책에 접근할 수 있다. 단기적인 정치?경제적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거나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는데 연연할 필요가 없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재단들은 보다 건설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공역(共力)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가능하다.

– 재단들은 훌륭한 사회적 기업이다. 그들은 민간사업, 국가사업, 공익사업 등의 범위 내에서 요구되는 필요와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천착할 수 있다. 사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이윤이나 정치적 문제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부분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칠 수 있다.
– 재단들은 개인과 단체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하나의 방향성을 지닌 기관들로 한데 묶어 지원하는 데 매우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회적 투자주체이다. 그들은 경제적 자금, 지식과 노하우 등을 제공하여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내고, 또 지속적인 운영을 지원하는 “진중한 매개자” 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성공여부가 투명하지 않은 투자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 성과나 기대했던 목표를 이루게 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위험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재단의 장점이다. 특별히 의약, 교육, 사회 분야 등 전례가 없고 성과가 불확실하며 인기가 없는 분야에도 투자가 가능토록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다.
– 재단들은 풍습과 전통적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각각의 기관들을 지원하는 공동체의 문화적 변호인이다. 사기업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워하고, 정치권에서 가볍게 여겨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재단은 소수의 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

여기에서 명심할 점 하나는 재단이 자신들의 장점을 실현시키는데 있어 경제적인 자원은 필요한 중요한 여러 자원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지식, 전문성, 합법성, 보호 등의 요소들은 경제적 재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들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경우, 재단들은 사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지식과 전문성에 있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사회가 스스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사회적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에 영향을 끼쳐, 궁극적으로 국가와 기업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열한 재단의 성격과 자원들은 현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요소를 다룸에 있어 매우 유용하다. 바로 이 부분에서 앞서 언급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그러한 사회적?개인적 위험에 직면하여, 재단들이 정계와 재계에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은 말하자면 ‘예방원칙’을 따르게 하는 일이다. 기후변화, 2008년의 경제붕괴, 2009년의 경기불황, 불안정한 원자재와 식품 가격, 테러리즘 등은 사회와 경제분야의 세계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동시에 예측도 극복도 어려운 불확실한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럼에도 위험을 예측하고 극복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근대사회가 맡아온 임무였다. 국가는 질병과 실직과 같은 개인적 위험과, 개인, 가족 그리고 국가적 치안상의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안심시키는 임무를 맡아왔다.

위험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예방의 원칙’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원칙에 따르면, 단순히 위험에 대한 예측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로 인하여, 위험예방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것을 미루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제 3자에게 책임전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다. 정보의 불확실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예방원칙은 위험의 원인과 효과를 예측하고 미리 방어하는 데에 노력하지만, 세계화된 사회 속에서 위험은 매우 높은 우연성을 띤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특히 언제 어떤 성격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미래 알 수 없다. 위험은 대부분 개인과 조직들이 적합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 처리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위험이 가지는 이러한 특징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매우 뜻 밖의 형태로 나타난다.

위험은 한번 폭발하면, 집단화된 시민들을 리먼브라더스나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의 간부들,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소유주들, 상하이의 이민 노동자들, 두바이의 가정부들, BMW의 계약직 노동자들,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연금수혜자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일자리로 인해 고통 받는 영국의 청년층에게 직결된다. 세계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위험요소들은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으며, 이해하고 조정하는 것도 어렵다. 다시 말하면, 위험요소들과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위험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허나 작금의 세계화 시대에서 위험을 어떻게 다시 예측, 계산, 조정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 시점에서 나는 재단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안하고 싶다. 재단들은 이 문제에 있어 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어 상대적으로 더 잘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단들은 시간을 초월하고, 사회의 각계 공동체 간의 경계와 차이를 초월해,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 위험 요소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키고, 위험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사회의 적재적소에서 그러한 증대된 이해가 이용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다. 재단들은 위험이 공적으로 거론되고 계산가능토록 하며, 위험의 껍질을 벗겨, 분석하고 평가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

재단들은 다양한 정보, 전문적 지식 그리고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결과들을 종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금융, 보건, 환경, 에너지, 커뮤니케이션, 주거환경 등 그 어떤 분야든지 위험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소통될 수 있는 포럼을 구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행할 수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매우 좋은 예이다. 은행과 정부는 오랜 시간 동안 위험을 수반한 게임에 계속해 더욱 복잡한 금융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파생금융의 결과 자산이 부채가 되고 부채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전세계에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워싱턴, 런던, 베를린 정치계의 이해관계, 혹은 북경이나 뭄바이의 경제 테크로크라트들의 머릿속에는 세계화된 금융의 위험성에 대한 진지하고 공식적인 논의를 할 여유가 없었다. 누가 예방원칙에 따라 중립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을 것인가? 어떤 기관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세계화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무책임성을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막을 수 있었을 것인가?

반세계화나 반자본주의 이념은 적합하지 않다. 반대로 전통적인 막스 베버의 이념에 따라 시장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도록 능숙한 솜씨로 잘 이끌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에서 루드빅 에르하르드에 이르기까지 널리 강조되어왔다. 시장은 창조성과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부재와 그로 인해 발생한 2008년의 금융위기는 여러 분야의 많은 기관들로 하여금 높은 불안정성과 신뢰도의 하락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기회에 따라 변하기 쉬운 성격을 띈다. 바로 이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재단들이 이 일에 뛰어들게 될 경우, 특히 보람찬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재단들의 분명한 목표는 세계화된 현대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숨겨진 위험요소들을 밝혀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사회 각 분야에 자신감을 되찾아 줄 수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거버넌스의 문제를 들춰내, 예방원칙이 해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금융위기는 재단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역할은 바로 위험을 발견하고 관리하며 이를 위해 적합한 기관과 연합체를 설립하는 것 등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각 기관들은 좁은 의미의 경제적 신뢰가 아니라, 세계화가 사람들에게 반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신뢰를 키우는 것이다. 과거 사회발전을 위한 청사진의 개발과 재현에 동참하면서 대부분 정치에 관여했던 재단들에게는 이제 독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에 다가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맺음말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위기는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수정(Korrektiv)이며, ?창조적 파괴“의 지속적 과정의 일부임을 오래동안 지적해 왔다. 자본주의는 현대 세계를 특징지우며, 오늘날 세계화와 함께 새로운 발전을 보이고 있다. 위기는 재단들에게 단순히 본질의 보존을 넘어서는 매우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새 부대에 낡은 술“ 을 채우는 것 ? 이는 경제와 정치의 일부 대표자들이 하고 싶어 하는 바이다 – 이 아니라,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재구축이 중요하다. 이는 비영리기관들의 존재 목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혁신을 위한 공간을 창출하고, 사회의 성취를 모두의 복지를 위하여 유용하게 보존하는 일이다. 점점 더 조망하기 어려워지고, 불확실해져 가는 세계에서, 우리는 사전에 예측가능하면서도 독립적인 기관을 필요로 한다. 한 마디로, 세계는 재단을 필요로 한다.


원문링크: http://www.csi.uni-heidelberg.de/downloads/Anheier%20-%20CSI%20zur%20Krise.pdf
번역: 박명준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원), 유호진 (희망제작소 독일어 번역재능 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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