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특별교부금과 파생정치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미국정부가 양대 국책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 달러란 사상 최대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 회사들을 정부 관리 회사로 바꾼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저당금융제도)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 금융시장이 계속 추락하는 이유는 주택 모기지 사업 규모가 투자은행과 펀드회사가 만든 파생상품 때문에 크게 불어나 최종 피해액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5년 한 명의 직원이 파생상품 거래에서 큰 손실을 내는 바람에 233년 역사의 영국 베어링스 은행이 파산한 예에서 보듯 금융기관이 파생상품을 잘못 다루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한국정치에도 파생상품과 비슷한 파생정치가 있다. 파생상품이 전통적인 예금과 주식과 같은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새롭게 만든 금융상품이라면, 파생정치는 특별교부금과 같은 통제받지 않는 예산을 먹고 자라난다.


파생정치는 통제받지 않는 예산을 먹고 자라나


서울신문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9월 초 특별교부금 사용 실태를 추적해서 밝히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은 내국세분 교부금의 20% 중 4%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2006년도는 8240억, 2007년도는 9440억, 2008년도는 1조 1170억에 달하는 큰 돈이다. 이 돈의 60%는 교육 관련 국가시책사업에 쓰고, 30%는 지역교육 현안, 그리고 재해대책 수요에 10%를 쓴다.

이 특별교부금은 많은 액수가 장관이 모교를 방문하거나 총리가 방문한 학교에 지원되는가 하면,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지역구에 지원되는 등 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하게 쓰였다. 2007년도의 특별교부금 중 재해대책비는 944억 이었는데 학교 재해 피해 지원금으로는 겨우 4.5%인 42억 원만 쓰였다. 그래서 111개나 되는 건물 붕괴 위험이 있는 학교 중 특별교부금으로 개선작업을 하는 학교는 4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자본유치사업(BTL)으로 하는 실정이다.


[##_1C|1156867279.jpg|width=”400″ height=”264″ alt=”?”|_##]특별교부금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내국세의 일정비율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회의 예산 심사를 받지 않는다. 부처 공무원이 10억 짜리 예산 사업을 하나 하려면 부처에서 기획하고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배정받고, 국회의 심사를 거쳐 부처가 집행을 한 후 마지막으로 결산을 해야 한다. 즉 나랏돈으로 사업을 하려면 <기획 -배정 – 심사 – 집행 – 결산>이란 까다로운 5단계 과정을 거치고 공무원이 일을 잘못하거나 돈을 잘 못 쓰면 감사원의 감사와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특별교부금은 이런 절차 없이 그야말로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다.

행정안전부에도 교육부와 유사한 특별교부금이 있다. 2008년 예산이 9468억인데 재해대책과 지역현안에 각각 4734억이 배정되어 있다.

특별교부금의 효과는 수십 배 부푼다


이렇게 편하게 쓸 수 있고, 배분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돈이 효율적으로 쓰이기보다는 청와대와 고위관료, 국회의원 등 ‘힘 있는 자’의 쌈짓돈처럼 쓰일게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렇게 특별교부금을 사용함으로써 한국 정치와 국민에게 미치는 폐해가 파생상품처럼 끝없이 부풀어나간다.

합계 2조 원이 넘는 교육부와 행전안전부의 특별교부금은 그 자체 액수도 크지만 실제론 그 돈의 수십 배 부푼 효과를 낸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 해결해야 할 ‘현안’이 없는 지역은 없으니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이 특별교부금을 받고자 노력하고 교육부와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청와대가 그런 노력을 <선별>해서 교부금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이런 <선별과정>을 잘 헤쳐 내려면 정치인을 비롯한 정치엘리트들이 직접 ‘중앙의 힘 있는 자’가 되거나 그런 사람에게 줄을 대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예비정치인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들도 미래를 대비해 똑같은 노력을 한다. 정치인들이 주요한 역량을 이런 줄대기에 탕진하고 있으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을 그런 식으로 정치와 행정이 굴러간다면 무슨 생산성이 있겠는가.


되풀이되는 범국민 학습과 파괴력


서울시의 학교 화장실은 지은 지 15년이 넘어 지저분하고 낡아 학생들이 들어가기가 겁난다는 곳이 많다. 2007년 서울시교육청에 화장실 개선을 요청한 학교는 모두 234개이며 이에 따른 소요예산은 790여 억이다. 시 교육청이 2007년에 일선학교 화장실개선에 쓸 수 있는 돈은 시교육청 예산 200여 억과 서울시 예산 130여 억을 합한 330여 억에 불과해 신청한 학교의 절반도 개선사업을 할 수 없다.

모든 학교가 순서대로 화장실 개선 사업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지역의 권력자나 국회의원이 특별교부금을 받아 먼저 번듯하게 해버리게 되면 순서를 기다린 학교는 허탈하다. 그들은 ‘공정하고 투명한’행정 과정보다 대통령과 장관을 비롯한 ‘중앙의 힘 있는 자’를 통한 문제해결이 훨씬 빠르고 효과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다.

이런 범국민학습이 매년 전국에서 되풀이되니, 국민의식에 미치는 파괴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의원 당선에 공헌한 서울의 ‘뉴타운 바람’도 그렇게 누적된 국민의식이 뉴타운을 해 줄 수 있는 ‘힘 있는 쪽’으로 분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이런 특별교부금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17대 국회에서 이주호 의원은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을 지금의 절반으로, 그리고 최순영 의원은 사분의 일로 줄이려는 법안을 냈다. 이들 법안은 같은 교육위원회의 의원들도 호의를 보이지 않아 법률 심사도 못하고 17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정치의 기초자산은 ‘공정과 투명성’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특별교부금 혜택을 받으니 특별교부금을 줄이거나 없애기는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자세히 보면 특별교부금 배분권은 교육부와 행정안전부가 쥐고 있어 국회의원들은 불리한 ‘을’의 위치에 서 있다.

항상 우월한 지위인 ‘갑’처럼 보이는 국회의원들도 특별교부금을 통해 지역민원을 해결하려면 정부 부처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선별과정>이란 시험을 거쳐야 한다. 생각해 보라. 내 호주머니 속의 작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상대방에 큰 칼을 쥐어주는 정치 형태가 무슨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특별교부금이 가지는 파생정치의 해독을 줄이려면 먼저 특별교부금의 액수를 줄여야 한다. 그 다음에 공정한 배분기준을 정하고, 마지막으로 국회에 사용 내역을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기관이 파생상품으로 망하고 있다. 한국 정치도 통제받지 않는 예산을 통해 커나가는 파생정치의 올가미를 끊어야 한다. 국회는 정치의 기초자산인 ‘공정과 투명성’에 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_1L|1265425359.jpg|width=”12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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