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연금’ ‘바람 연금’…신안의 개발이익공유제

신안군 “2028년 햇빛바람 연금 1인당 월 50만원”
‘햇빛 연금’, ‘바람 연금’ 주는 곳이 있습니다. 외국 아닙니다. 전라남도 신안군입니다. 이름하여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제’. ‘우리 땅에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하고 싶어? 그러면 주민에게 이익 30% 돌려줘.’ 신안군은 2018년 조례로 못 박았습니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 규정입니다. 그 후 신안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1004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에서 지난 7월 14일 ‘대안적 지역경제 모델,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제4차 목민관클럽 정기포럼이 열렸습니다. 9개 시군구 지자체 단체장이 모여 공부하는 자리에서 박우량 신안군수가 개발이익공유제를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신안하면 천일염이 떠오르시죠? 그만큼 바람과 햇빛 부자입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하기 최적의 입지죠. 여러 기업이 탐낼 만합니다. 신안군은 2030년까지 태양광 2GW, 풍력 8.2GW 생산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 6기 규모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낮췄지만, 하여간 신재생에너지 생산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연합은 RE100(기업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을 수입 조건으로 걸고 있죠. 이 조건 못 채우면 수출도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주민들 반발입니다. 주민들은 소음이나 경관 훼손 같은 피해는 보고, 이익은 외지 기업에만 돌아가니 반대할 만하죠. 그렇게 생산한 전기를 주로 쓰는 건 수도권입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하는 회사들 90%는 대출받아요, 바람과 햇빛 경제성 보고 해주는 대출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과 햇빛, 지역 주민의 공유자산 아닙니까?”(박우량 군수)

2018년 신안군은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듭니다. 섬별로 협동조합을 구성했습니다. 조합비는 1만원입니다. 이제까지 기업이 90% 받던 대출 중 4%를 조합이 받아 출자합니다. ‘나중에 그 돈 우리 보고 갚으라는 거 아니야?’ 주민들이 불안할 수 있겠죠? 최종 상환 책임은 발전사업자가 지도록 확실히 해뒀습니다. 주민 동의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으니 발전사업자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조례는 수난을 겪어요. 1년 6개월 동안 감사원 감사를 받았습니다. 왜 기업을 규제하려고 하느냐는 거죠.

2년간 75억 수익 배당…정책 호응도 커져
조합비 1만원만 내면 식구 수대로 평생 이익 배당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주민 설득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거 다단계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답니다. 안좌도에서 첫 조합을 구성하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2021년부터 수익이 실제로 주민들에게 돌아가자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2년간 발전수입 75억 원을 주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올해 4월 조합 구성을 시작한 임자도는 일주일 만에 주민 동의를 얻었습니다. 정책 호응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게, 자라도에서 가장 많이 배당받은 한 가족은 한 분기에 240만 원을, 사옥도에선 423만 원을 가져갔어요. 태양광발전으로 24MW를 생산하는 자라도는 주민 한 명당 한 분기에 17만 원~51만 원, 안좌도(96MW 생산)는 12만 원~36만 원, 지도(105MW 생산) 11만 원~26만 원, 사옥도(45MW 생산) 22만 원~60만 원, 임자도(100MW 생산) 10만 원~40만 원씩 받았습니다.

목민관포럼 참석자들이 안좌도스마트팜태양광발전소에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섬 안에서 왜 배당금이 다를까요? 신안군의 ‘개발이익공유제’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발전소에서 가까울수록 피해가 크겠죠? 그만큼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도록 짜여있습니다. 합리적 분배입니다. 발전소 100m 이내, 100m~500m, 500m~1000m, 1000m 초과 이렇게 구간을 나누고 가중치를 달리합니다. 배당금은 지역상품권으로 줍니다. 실제로 첫 배당금이 나가고 인근 마트 매출액이 20% 이상 늘었답니다. 지역 안에서 돈이 돌게 하는 것이죠. 태양광발전소 없는 읍면은 어떻게 되나요? ‘햇빛 아동 수당’이라고 7세 미만 어린이들에게 한해 1인당 40만 원씩 줍니다. 매달 10만 원씩으로 늘려가는 게 목표입니다. 신안군의 ‘개발이익공유제’ 두 번째 특징 눈치채셨나요? 인구 정책과 연결시켰다는 점입니다. 만 40세 이하는 전입신고한 날부터 100% 발전이익을 나눠 받습니다. 50세 이하면 첫해엔 50%, 1년 후부터 100%입니다. 50세 초과면 2년 후부터 100% 받습니다.

인구 반등 효과
효과가 있었습니다. 인구가 늘었습니다. 박 군수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합니다. 신안군의 재정자립도는 6.4%로 전국 최하위권입니다.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47.5%에 달하는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입니다. 2018년엔 989명, 2019년 1336명 줄었습니다. 배당금을 지급한 뒤인 2022년 인구가 248명 늘었습니다. 특히 태양광발전사업으로 ‘햇빛 연금’을 준 5개 섬에선 인구 반등이 뚜렷합니다.

‘바람 연금’도 곧 붑니다. SK E&S 등 8개사에서 풍력발전 허가를 받았고, 한전 등 13개사는 계측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발전을 시작해 2030년이면 풍력발전으로 8.2GW, 연간 3000억 원 수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8년 이후엔 신안군 군민 1인당 50만 원, 4인 가족이면 200만 원씩 ‘햇빛, 바람’ 연금을 줄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요.”(박우량 군수)

희망제작소의 ‘똑똑박사’ 송정복 자치분권센터 센터장은 2021년 12월 희망이슈 <신재생에너지 기본소득은 가능한가?>라는 보고서에서 신안의 실험을 분석했습니다. 2017년 중앙정부 산업통상부도 주민참여제를 만들어요. 태양광발전소 반경 1km(풍력발전 5km) 이내 1년 이상 주민등록상 거주자 중 5인 이상 주민이 참여하면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추가 가중치를 부여하기로 합니다. 쉽게 말해 주민이 참여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에 따라 발전 사업자는 자체 설비를 갖춰 발전하거나 인증서를 거래시장에서 사야 하거든요. 그 인증서에 가중치가 붙으면 더 비싸게 팔 수 있겠죠. 그런데 산업통상부 정책엔 맹점이 있었어요. 발전소는 대규모입니다. 사업비 규모가 크죠. 지역 주민들이 초기 자본을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제도 도입 뒤 4만611개 발전사업 가운데 주민참여형은 22건에 불과했습니다.

신안군의 개발이익공유제는 산업통상자원부 지침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산업통상부 지침에선 주민 참여가 발전사업자의 선택 사항이었는데 이를 의무조항으로 바꿨죠. 사업대상도 100kW미만 농가태양광을 제외한 모든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 늘리고, 주민 참여도 태양광발전은 5km 이내, 풍력발전은 전 군민으로 대폭 확대합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중치 부여에 따른 이익은 참여 주민 모두에게 배분하고, 채권투자에 대해 5.2% 고정이자 수익을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신안군의 혁신은 진행 중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죠. 비판적인 주민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조합 참여 주민들에게 정보 공개나 교육도 확대해 가야죠. 발전소에서 나올 전자파 등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혁신만 해도 의미가 큽니다. 지역 정부가 발전사업자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편에 서서 개발이익이 주민에게 돌아가도록 제도화했으니까요. 송 센터장은 보고서에서 “지방정부의 현실에 맞게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과감한 위임이 필요하다”며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주민참여지분율에 대한 가중치를 확대해 주민참여형 발전소 건립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정리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