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사용자그러고보니 올 여름엔 밝은 달을 본 기억이 없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 때문에 달구경은 한가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삶터를 유린한 가공할만한 비가 잦아들면 집에서 버섯을 키워도 될 만한 습기가 몰려왔다.

지난 8월 17일에도 여지없이 우산과 한 몸이 되어야 했지만, 희망제작소에는 새로운 기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행복설계아카데미(행설아)15기, 반짝이는 눈의 스물일곱 명 ‘청년’들이 주인공이었다.

”사용자오전 9시 30분, 내빈 소개와 교육안내를 거쳐 3주간의 교육기간이 시작되었다. 10시에는 희망제작소 유시주 소장의 ‘시니어., 한국 사회를 혁신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 강연이 진행됐다. 여섯 모둠으로 나눠 앉은 15기 행설아 회원들은 자료집에 메모를 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집중했다.

그러나 오리엔테이션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자기소개시간. 눈인사만 나눴던 사람들과 비로소 첫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다.

간단한 몸 풀기 게임을 거쳐 조장을 선출하고 각조의 이름을 정하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거쳐 흰 종이를 마주하고 앉은 15기 참석자들.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적거나 그려보라는 연구원의 말을 듣고 좀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진지하게 골몰하는 모습이 풋풋해보였다.

27인의 퇴직단상

“퇴직은 철봉에 매달려있다가 떨어져 멍한 상태가 되는 느낌이더군요. 은행에서 40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소위 오륙도 세대입니다. 앞으로는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려 합니다.”

“백화점에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막상 퇴직을 하니 상실감이 크더군요. 1년 놀다가 창업 강의 같은 것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행설아는 지인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정리가 되면 소규모 창업이나 사회적기업 창업에 관심이 있고 해볼 생각입니다.”

“35년간 월급쟁이로 살다가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궤도가 없는 미래를 잘 보내고 싶습니다.”

“은퇴 후 시니어잡지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백두대간 종주도 했습니다.”

“은행에서 30년 근무했습니다. 앞으로 잘 될 것 같은데 부족한 부분이 있는 가게나 개인사업 등을 코치해서 잘 되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프지 않고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할머니가 되자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인생의 하프타임을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IT기업에서 20년 근무했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보니 내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지금까지는 의무만 있던 삶이었고 나머지는 덤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사용자참석자들의 다양한 이력이 펼쳐지던 중 약사부부가 등장했다. 부인인 노신희 씨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1968년부터 2011년 5월 30일까지 약국을 했어요. 딸 다섯 다 시집보내고 손자가 열하나입니다. 일 그만 두고 웃음학교, 단식 등을 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까 진로를 모색하러 왔습니다.”

이어 최고령 수강생 이기안 씨는 다음과 같이 자기소개를 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47년간 약국을 운영했고, 제약회사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희망제작소에서 희망을 제작하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딸 다섯, 사위 다섯, 손자 열하나입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이경희 중앙대 명예교수의 ‘시니어, 일과 은퇴에 대한 재인식’ 강의가 이어졌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희망제작소가 주관하는 행사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먹을 게 많다’는 것이다. 많기만 한 게 아니라 한마디로 ‘잘 먹는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만두전골을 앞에 두고 삼삼오오 정담을 나누는 모습은 보기에도 흐뭇했다. 그러니 교육 진행을 맡은 시니어사회공헌센터 연구원들이 15기 회원들에게 제공할 점심식사가 궁금해서라도 결석하지 말아야 할 듯.

”사용자1938년생부터 1969년생까지, 한 세대를 뛰어넘는 나이 차를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바로 행복설계아카데미의 매력이 아닐까.

15기 참석자의 면면이 소개되면서, 날이 갈수록 참여자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4기까지 기당 40명이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29명이 등록한 15기는 최근 들어 가장 날씬한 기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넘치는 패기와 열정으로 무장한 15기 아닌가. 그들의 전문적인 경험이 사회에 흩뿌려져서 나눔과 자아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_ 이신숙 (시니어사회공헌사업단 레츠)
사진_정운석 (시니어사회공헌사업단 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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