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선순환 구조 만들기

공동체 자산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전략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저출생·고령화, 여기에 지역의 인구 유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지역의 쇠퇴, 지역소멸을 야기한다. 줄어드는 인구는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한편, 인구 집중화 현상은 지역 간 불균형을 극대화한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의 위축, 성장의 둔화 속에서 변화하는 산업구조, 줄어들거나 이탈하는 인구에 지방정부는, 지역은 어떤 방법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인구 유출 보다 지역의 자본 유출에 주목하고 지역 공동체 부 구축 전략을 택한 도시가 있다. 지방정부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영국 랭커셔주의 ‘프레스턴시 모델: 지역 공동체 부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프로젝트’ 사례이다.

앵커기관과 협동조합의 합작품

프레스턴시도 다른 지방정부처럼 외부 자원, 투자유치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시의회를 중심으로 약 7억 파운드의 대규모 해외투자 유치를 시도하여 도시 정비와 대규모 쇼핑몰 건설 등 개발 전략을 세웠지만 2007년 세계 금융 위기로 무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 재정 또한 영국 정부의 긴축으로 대폭 삭감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경제 개선을 위해 프레스턴이 벤치마킹한 것은 미국 클리블랜드와 스페인의 몬드라곤 사례이다.

클리블랜드는 지역 내 대학과 병원, 공공기관과 같은 앵커기관과 노동자협동조합을 연계해 지역의 공공조달이 지역 내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몬드라곤은 여러 분야의 협동조합과 기업까지 모여있는 협동조합 복합체로 금융위기, 코로나와 같은 전 세계적인 위험에도 직원을 재교육해 재배치하거나 교육, 휴직 등을 지원했다.

프레스턴은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협력해 노동자협동조합 육성과 지원, 생태계를 조성했다. 지역 협동조합, 시 의회, 지역거점대학 등이 참여한 운영위원회를 만들고 ‘프레스턴 협동조합 개발 네트워크(PCDN, Community Benefit Society)’를 구성하여 기업의 노동자협동조합 전환, 지역 자산의 소유, 공공조달 참여 컨설팅 및 역량 강화 등 생태계를 조성했다.

그리고 기존 공공조달 방식도 정책적으로 전환했다. 최저가 입찰 방식의 공공조달 기준을 지역 기업과 노동자협동조합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가치 창출’ 관점으로의 정책 전환이다. ‘사회적 가치 창출’의 기준은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 기업이나 노동자 협동조합이 전혀 없을 때도 외부 기업에 대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기준’을 적용해 심사한다.

또한 지역 내 사업체가 공공 계약을 수주할 때, 지역 내 노동자를 채용하도록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역 일자리의 질과 노동자의 소득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영국 내 최저임금보다 20%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living wage)을 도입하여 지급했다. 지역 시설물도 재매입해 지역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로 개보수하고 취약계층을 고용해 편의시설을 관리, 운영하게 했다. 이렇게 발생한 이윤은 지역사회에 환원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프레스턴시에서만 7만 파운드, 랭커셔주에서는 2억 파운드 규모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신규 일자리를 1천 6백 개를 만들어냈다.

공동체 자산 형성이 가져오는 지역 활력

프레스턴 사례에서 공동체 자산 형성을 촉진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활력으로 순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 앵커기관의 공공조달 비용이 지역 내 노동자협동조합의 사업 활성화, 지속성으로 이어진다. 지역의 노동자협동조합은 다양한 사회적금융의 도움으로 전문성과 운영의 안정성을 도모한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은 노동자의 소득 증대로 이어짐과 동시에 지역사회에 다시 환원되어 지역 활력을 촉진한다.

자원을 지역 안에서 순환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의 협력이 필요하다. 행정의 제도적 지원과 다양한 사회적금융의 협력뿐 아니라 노동자협동조합이든, 사회적기업이든 지역 내에서 활동을 지속할 건강한 공동체가 필수이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한편으로는 안정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공동체의 참여를 위해 사회적 부동산, 시민자산화, 지역 자산화 등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이 만드는 지역사회의 활력

2019년에 시행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 개정내용에 따르면, 청년창업, 사회적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이 지자체의 행정재산과 일반재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었고,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시민자산화 사례가 늘고 있다.

‘빌드’는 시흥시 월곶지구에서 카페, 책방 겸 꽃집, 실내 놀이터 바이아이, 쿠킹 클래스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월곶시탁 등을 시흥시와 협약을 맺어 마을기업 형태로 추진한다. 이러한 운영 경험은 확장되어 커뮤니티 기반 로컬브랜드로 나아간다. 이 외에도 활력을 잃은 건해산물 거리를 살리기 위해 마을주민 100명이 조합원이 되어 마을 펍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목포시의 ‘건맥1897 협동조합’, 지역 주민의 자전거 문화를 기반으로 원도심 활성화와 농어촌 공정여행을 이루고자 하는 제주도의 ‘푸른바이크 셰어링’ 등이 있다.

공공기관, 사회적금융 등의 자원이 노동자협동조합 등 시민사회와 활발하게 협업하는 프레스턴 사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지역 자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형태는 주로 시장경제와 밀접하다. 시민의 자발적인 활동이 지역 활력과 이어지는 방식을 넘어서 지방정부 등 공공기관의 공공조달이나 지역 앵커기관 발굴과 협업을 통한 지역 내 자원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아직은 때이른 기대일까?

단순 통계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조달정보개방포털, 공공기관 소재지별 동일한 지역에서 영업하는 조달업체가 계약하는 비중 통계를 보면 전라북도가 64.5%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반면 세종(8.65%), 대전(16.6%), 대구(28.1%) 등이 최하위권이었다. 중앙정부가 모여있거나, 특정 산업에 집중되었거나, 주요 용역, 연구 분야 등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도 지역 내 선순환 구조를 위해 앵커기관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지역 사회의 활력은 유행처럼 반짝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지역에 활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공공조달을 통해 나가는 자원을 지역사회 안에서 환류시킬 수 있도록 지역 내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 정리: 안영삼 미디어팀 팀장 | sam@makehope.org

참고자료
[사회적금융의 상상⑥] 프레스턴시의 회생과 선순환 금융, 라이프인, 2020.12.11.
지역에 ‘닻 내려야 할’ 앵커기관의 돈은 어디로, 중기이코노미, 2021.04.06.
클리블랜드가 보여준 지역재생 모델, 한겨레, 2018.05.02.
쇠퇴한 英 지방 도시를 부활시킨 지역 공동체 모델, 세계일보, 2023.02.04.
“몬드라곤은 고용 연대 지향…해고는 없다”, 한겨레, 2014.10.20.
몬드라곤은 코로나19를 어떻게 견뎠을까?, 이로운넷, 2022.11.18.
[사람이 답이다] 시흥 월곶포구 변신 이끈 도시재생 스타트업 ‘빌드’, 이코노믹리뷰, 2019.06.24.
유럽의 공동체 자산화와 지역 이익 선순환, 이영범, 국토 Vol 478, 2021년 8월호
지역별 지역업체 실적 비중, 조달정보개방포털, 2021.12.~2022.11. 기준 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