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러분의 수세미는 잘 자랐나요? 🌱
뭔가 조용하다 싶으면 뭔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환경문제에 진심인 정혜진 경영지원팀장은 지난 2021년 조용히 희망제작소 텃밭에 수세미 씨앗 몇 알을 심었습니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웬걸, 쑥쑥 자라더니 애호박같이 생긴 열매를 맺었습니다. 노랗게 익었을 때 껍질을 벗기니 섬유질로 만든 방망이가 나왔습니다. 그 방망이 안에는 까만 씨앗들이 콕콕 박혀있었어요. 섬유질 방망이는 말려 탕비실에서 여전히 잘 쓰고 있습니다. 짱짱합니다. 웬만한 건 싹싹 지우고요. 건조까지 빠릅니다.
올 4월 수세미 씨앗을 나눴습니다. 희망제작소 수세미 프로젝트의 시작입니다. 마트에서 천원이면 플라스틱 수세미를 살 수 있는데, 씨앗을 심고, 오매불망 꽃을 기다리고, 꽃망울이 피면 환호하다가, 열매 안 맺어 애태우는 참으로 비효율적인 과정을 권하는 까닭은, 말씀드렸잖아요. 천연 수세미, 참 일 잘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호르몬이 안 나옵니다. 플라스틱 수세미로 설거지할 때마다 나오는 미세플라스틱, 물로 흘러 들어가 물고기 몸에 쌓이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지요.
수세미를 키워보면 성취감이 큽니다. 이것은 식물인가, 원숭이인가. 넝쿨손을 꼬물꼬물 뻗어가며 하도 빨리 자라 동물 같습니다. 이 넝쿨이 녹색 커튼을 만듭니다. 폭염 때 직사광선을 가려주고 건물 안 온도를 낮춥니다. 그만큼 에어컨을 덜 틀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 쓴 수세미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자연 분해됩니다.
수세미 인기가 이 정도 일줄 몰랐습니다. 씨앗 달라고 요청하신 분들에게 다 보내기에 희망제작소에서 거둔 씨앗으로는 턱도 없었죠. 그때 구원투수가 등장합니다. 이진원 서울 서대문구 호박골 에너지자립마을 대표입니다. 희망제작소 사람들은 그를 ‘수세미 박사님’이라고 부릅니다.(‘박사님’은 모릅니다.) 씨앗을 여럿 기부해주셨어요. 그렇게 지난 4월 272명에게 수세미 씨앗을 보냈습니다.
에너지자립마을이 된 지 8년째인 호박골엔 녹색 터널이 있습니다. 넝쿨 식물들이 지지대를 타고 올라 만든 것이죠. 이 마을은 5년째 수세미를 키웁니다. 조부모, 부모, 아이 이렇게 한 팀을 이뤄 한두 포기를 심고 함께 가꾼답니다.
“추억도 쌓고 식물에 대한 사랑도 키우는 방법이죠.”(이진원)
지난해엔 200포기, 올해엔 100포기를 심어 9월에 수세미 20개를 수확했답니다. 노랗게 익은 열매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말리고 까서 수세미를 만들어 써봤다는군요. 아직 초록빛인 열매는 설탕을 넣고 발효시켜 효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체험으로 아이들이 기후위기나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죠.”(이진원)
수세미의 장점에 대해 이 대표에게 질문할 때는 오래 들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수세미 사랑이 대단하시거든요.
“이렇게 친환경적인 게 없다니까요!”(이진원)
“초조함 자체!” “씨앗 한 알 살아남았다 만세!”
희망제작소는 ‘수세미 키우는 사람들’이라는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수세미 부모들의 희노애락을 나눴습니다. 김충태 씨는 속을 많이 태우신 모양입니다. “아직도 싹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초조함 자체입니다.”(5월 10일) “여덟 알 중 한 알이 살아남았습니다. 정말 만세입니다. 만세!”(6월14일)
닉네임 구항면이여라님은 수세미의 성장🌱을 꼼꼼히 기록하고 공유해주셨습니다.
🔎 4월 25일 “내일 화장솜 위에 씨앗을 올려놓고 싹 틔워보겠습니다.”
🔎 5월 1일 “싹이 안 나와서 속상해요.”
🔎 5월 11일 “싹 싹 싹이 났어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 5월 30일 “흙물 씻겨 내려가고 초록색 떡잎이 빼꼼“
🔎 6월 2일 “떡잎 크기가 달라지고 있어요. 말 없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 6월 6일 “떡잎 5개 관찰. 텃밭에 옮겨심고 물을 줬다.”
🔎 7월 4일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수세미 떡잎은 제 손바닥만큼 커졌어요. 꽃망울이 올라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 7월 16일 “비 그친 틈을 타 수세미 정원을 둘러봤다. ‘언제 피려나’ 나 모르게 피었다. 장맛비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꽃잎 발견하고 속상했다. 커다란 떡잎을 재치니 ‘까꿍’ 나를 반기는 수세미 꽃”
🔎 7월 28일 “수세미 꽃이 떨어지고 수세미가 자라기 시작했고요.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됐답니다.”
🔎 8월 12일 “장마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수세미가 열심히 크고 있다는 사실. 수세미 텃밭을 알고 찾아와주는 꿀벌 덕분에 잘 자라고 있는 수세미.”
🔎 9월 18일 “그늘에 잘 말리고 있어요.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탈탈 털어내고 수세미를 만들었어요.”
9~10월 수세미가 노랗게 익어가며 가벼워지면 수확합니다. 그늘에 말리면 황갈색으로 변해요. 잘 마른 수세미 껍질을 벗기면 섬유질 덩어리가 나와요. 수세미 박사님은 열매째 삶아서 말린답니다. 그러면 더 오래 쓸 수 있다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김충태 씨의 수세미는 계속 속을 썩였나봅니다. ”싹 튼 지 한참인데 요모양인 것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오호 통제라!“(8월 30일)
반면 정희정 씨는 “수세미 농사 풍년”이라며 수세미로 효소를 담그셨답니다. 수세미 한 개 안에 씨앗 21개가 들어있는데 그 씨앗으로 ‘수세미’란 글씨를 만들어 밴드에 사진을 올려주셨어요. 윤소영 씨는 “수확한 수세미는 동네 사람들과 나눌 계획”이라고 합니다.
희망제작소 올해 수세미 농사는 어떻게 됐냐고요? 망했습니다. 무성하게 자랐는데 꽃이 피지 않았어요. 아, 망했다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름 내내 무성한 잎사귀로 희망제작소 대문을 장식해줬거든요. 덕분에 출근이 (조금, 아주 조금은) 더 즐거웠어요.
‘수세미 박사님’ 이진원 대표님이 들려주는 수세미 키우기 팁
– 씨는 언제 뿌릴까요?
지역에 따라 달라요. 대략 4월 15일에서 30일까지가 좋아요. 더 늦어도 싹은 트고 자라지만 열매를 보기 힘들어요.
– 베란다에서 키우면 잘 자라지 않아요.
햇빛도 부족하고 땅도 얕으니 그렇죠. 영양분을 더 줘야 해요. 친환경 퇴비를 주세요.(여기서 친환경 퇴비 만드는 과정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 꽃은 피었는데 열매를 맺지 않아요.
수정이 필요합니다. 암술과 수술의 꽃가루가 만나야 해요. 야외에선 곤충이 그 일을 해주지만 실내에선 인공수정을 해야 합니다. 면봉이나 붓으로 이꽃 저꽃 꽃가루를 사방에 옮겨 칠해줘요. (꽃 밑에 작고 통통한 열매가 달려 있는 게 암꽃, 없으면 수꽃입니다.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묻혀주면 됩니다. 암수 구별 힘들면 사방에다 꽃가루 팍팍)
-잎은 엄청 자랐는데 꽃이 안 피어요
더 기다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