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옥천군민이 되었다

서울살이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지역살이를 결심했다. 입으로는 지역의 가치를 말하면서 정작 서울에 살고 있으니 몸과 머리가 분리된 것 같았다. 애초에 서울에 계속 살 생각은 없었기에 지역살이는 언젠가 실행에 옮길 예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주하려니 막막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부산, 대전, 서울을 거쳐 어느 지역으로?

나의 고향은 부산, 오래 산 곳은 대전이다. 이왕 지역에 가자고 마음먹은 마당에 광역시는 소심한 선택인 것 같아 일찍이 패스했다. 그래서 시군 중에 이주해볼 법한 곳을 검색해보았다. 청년 지원사업이 많거나(의성), 차별화된 활동이 있거나(완주), 친구가 있거나(하동),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순천) 등. 그렇게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가 옥천을 발견했다.

옥천이 가진 저력은 일찍 알고 있었다. 2012년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여기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을 중심으로 한 지역 미디어 운동, 로컬푸드 운동 등이 활발한 곳이다. 게다가 지역 이슈나 지역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옥천신문으로 미리 찾아볼 수 있으니 전혀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살다가 정 안 되면 바로 옆 대전으로 후퇴하겠다는 플랜 B도 가능했다. 올해 2월, 드디어 난 옥천군민이 되었다.

 

서울살이를 뒤로하고 충북 옥천군에서 지역살이

충청북도 옥천은 인구 약 5만 명의 군으로, 대전 바로 옆에 있다. 대청호를 끼고 있어 개발에 한계가 있는 대신 자연경관이 좋고 깨끗하다. 포도와 복숭아가 유명하고, 한반도 지형의 둔주봉, 부소담악 등이 있어 봄, 가을이면 방문객이 많다. 로컬푸드 유통도 잘 되고 있는데 직매장에서 신선한 제철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나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대도시 근처에 있어서 다른 시군에 비해 인구감소 속도가 아주 빠르지 않지만, 옥천도 소멸위험지역이다. 1개 읍과 8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쪽에 위치한 읍에 전체 인구의 57.8%가 집중되어 있다. 읍내는 아파트와 상가가 많고 꽤 시끌벅적해서 농촌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만큼 면의 인구유출은 심각해서 학교 살리기, 주거플랫폼 사업 등 인구유입 사업에 적극적이다.

작지만 알찬, 그리고 낮은 문턱의 문화생활

지역살이의 걱정 중 하나로 문화생활의 어려움이 있다. 아무래도 인프라 자체가 도시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놀랍게도 난 서울에 살 때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문화생활을 옥천에서 즐기고 있다.

일단 군에서 양질의 문화행사를 많이 연다.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수준 높은 오페라, 오케스트라, 발레, 콘서트가 한 달에 한 번은 열린다. 비싸면 가기 어려운데 무료로 열 때도 있고, 최고 2만원이면 관람할 수 있다! 서울에서 20만 원짜리 초호화 캐스팅의 뮤지컬도 좋았지만, 여긴 소규모다 보니 공연자와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 여운이 오래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작은 지역에는 작은영화관이 있다. 이는 일반 영화관이 없는 도서 지역의 주민 복지 시설 중 하나이다. 영화 관람료도 단돈 7천 원! 3D 영화도 9천 원이면 볼 수 있다. 일반 영화관이 1만 5천인 것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물론 영화관 크기가 100석 규모로 아담하지만 뭐 어떤가. 웬만한 최신 영화는 다 상영해서 산책 삼아 영화관을 더 자주 가게 된다.

지역은 문화 소외지역이라 크고 작은 지원 사업이 많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한 달에 서너 번은 공연, 영화, 행사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도시 같이 인프라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은 소규모 행사가 많고 비용의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은 참여 문턱이 낮아 풍성한 문화생활이 가능하다.

▲옥천문화예술회관 공연 무대 ⓒ이다현

무심코 던진 아이디어에 힘을 보태는 동료들

친구를 사귀는데 나이를 상관하지 않는 편이라 그 범위가 넓긴 하지만, 지역에서 친구 만들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만나서 노는 걸 좋아하지만, 한동안은 조용히 지낼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이주 초기부터 지금까지 노느라 바쁘다.

일단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다. 옥천 출신도 있고, 나처럼 다른 지역에 살다가 옥천으로 흘러들어온 분들도 있다. 그리고 업무로 연결된 지역 활동가, 근 10년 만에 지역 행사장에서 정말 우연히 만난 옛 지인, 외국에서 유학하다가 농사지어보겠다고 이주한 청년, 내가 석사논문을 쓸 때 핵심 아이디어를 얻었던 박사님 등도 있다. 각기 다른 생애 경로를 거쳐 여기에 모여있다는 공통분모만으로 서로 할 얘기가 차고 넘친다. 각자의 이주 정착기 이야기만 들어도 인간극장 몇 편이 뚝딱 나온다.

친구가 있으니 비실비실한 아이디어도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저 사람들 편하게 만나는 술집 차려보고 싶다고 무심코 던진 말에 출자하겠다는 분, 공간을 내어주겠다는 분, 후원받아오겠다는 분, 전통주를 직접 빚어주겠다는 분, 무조건 많이 팔아주겠다는 분들이 막 생겼다. 오히려 말을 던진 내가 가장 준비가 덜 되어 당황해버렸다. 혼자서는 아마 시작도 못 했을 일들도 친구가 있으니 이렇게 시동이 걸린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그 자체가 지역에서 재밌게 살아가는 방법인가 싶기도 하다.

좀 더 진중한 이야기도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독서모임도 만들었다. 대부분 옥천에 연고 없이 이주한 30, 40대들이다. 직업도 관심 분야도 제각각이지만, 이렇게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같은 사람들이다. 지역에서는 친구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항상 있으니 잘 모아내면 될 것 같다. 독서모임에서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또 새로운 활동 아이디어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그리고 읽을 책 ⓒ이다현

지역살이를 막상 해보니…어딜 가나 ‘아는 사람’

개인적으로 도시 생활이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집보다 카페에 가거나, 술집에서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고, 동네 주민과 친밀하게 지낸 경험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도시의 익명성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가 옥천으로 이주해오니 내 생활반경에 닿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을 만나고, 같은 사람을 여러 일로 만나게 된다.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분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에서는 한 사람과 일, 인생, 활동을 한 번에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드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내가 일과 생활의 연결을 지향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겨우 9개월 차 신입 군민이지만, 현재까지 나의 지역살이 만족도는 매우 높다. 서울을 떠날 때 마음 단단히 먹고 왔는데, 돌아보니 뭐 그리 큰일로 생각했을까 싶다. 여전히 고민도 많고, 새로운 도전도 머뭇거리긴 하지만, 뭔가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도시보다 더 쉽게 든다. 내가 꿈꿨던 재밌는 지역살이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다음 글에 짠! 하고 내놓을 수 있게 부지런히 만들어보아야겠다.

– 글: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