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북부, 최북단에 위치하는 고성. 인구 2만 7천여 명이 살고 있다. 속초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고성에서 색다른 시도를 벌이고 있는 김은율 대표. 생선의 ‘비린내’에 대한 역발상으로 반려동물의 프리미엄 간식을 탄생시켰다. 그간 삶의 궤적에서 ‘일당백’ 역할을 도맡아오다가 고향인 고성에서 든든한 직원, 부모님, 이웃 어르신과 함께 일하고 있는 김은율 동해형씨 대표(홈페이지)를 만났다.
-건축과를 졸업하셨는데 창업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은율: 제가 잘할 수 있는게 예술 계통 쪽이라 건축학과를 진학했어요. 20대 초반엔 여러모로 지기 싫어했어요. 지역 출신이라는 것도, 설계를 하는 것도, 노는 것도요. 또 시골에서 지내다가 서울에서 살려니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죠. 내가 잘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기반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레 창업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 학부 시절 프리랜서로 일한 이유가 있나요.
김은율: 건축은 오랜 경력과 인프라가 쌓여서 30~40대 정도는 돼야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거든요. 생애주기를 따져보면 그 과정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바로 무언가를 기획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프리랜서 쪽을 택했죠. 한창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회사에 입사해 일하기도 했고요. 대학을 다니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스스로 성장한 측면이 있죠.
– 회사 다닐 때 전국 산지도 돌았다면서요.
김은율: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학부생으로써는 최초로 디자이너로 작업하면서 스카웃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당시 글로벌 이커머스 업체와 밀접하게 일하던 용역사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었는데요. 이커머스업체가 국내 1위를 지키기 위해 새 제품 기획에 목말라 있었는데, 그 일을 제가 도맡아 했어요. 일년에 전국 30곳 이상을 다니면서 제철음식 및 제품의 스토리텔링(영상, 디자인)하는 작업을 했어요.
🐟 건축, 디자인, 프리랜서, 그리고 창업까지
-회사에 소속해 일하는 것과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건 천지 차이잖아요. ‘동해형씨’ 런칭 초기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은율: 지금껏 겪은 경험, 실무가 직접적인 건축은 아니었지만, 10년간 프리랜서와 회사생활에서 작업했던 브랜딩, 인테리어, 식품기획, 그밖에 크고 작은 디자인일들도 모두 큰 범주안에서 모두 설계의 과정이 었던것 같아요. 건축의 설계는 고려할것들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A부터 Z까지 주어진 문제를 풀어가는 프로세스를 배웠는데, 매번 주어진 문제가 달랐을 뿐이지,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갈지 기획하고 실제 그일들을 현상화하는 과정이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30대가 되고서 제 인생을 두고 설계를 해봤어요. 내가 가장좋아하는것과 잘하는것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집중했어요. 좋아하는것들은 바다와 고향사람들, 가족이었고 잘하는건 기획, 디자인 등이었어요. 무엇보다 20대때는 나의 발전과 나를위한 방향으로 걸어왔다면, 30대에는 내가 잘할수있는일로 나혼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사람이 가치를 나눌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잘할수 있는 것과 부모님의 30년된 어업경력을 최대한 활용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시도했어요. 물론 어려움이 많았죠. 채소나 육류는 유통이 원활한 데 반해 어류는 그렇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비린내’가 관건이었어요. 현재 특허를 낼 정도로 연구를 거듭했지만, 당시만 해도 비린내를 활용한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 ‘비린내’에 대한 고민,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김은율: 어렸을 때 해풍에 생선을 말리면 동네 강아지나 고양이가 와서 훔쳐먹었거든요.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니까 강아지가 생선을 먹을 수 없을까에 다다르더라고요. 개의 식품기호성은 후각과 식감이 중요한데, 이 때문에 시중에 나온 제품 중에는 첨가물을 많이 넣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생선은 어떤 첨가물이 없이도 고유의 향이 진하기때문에 기호성은 충분했어요. 생선의 염분만 해결한다면 수산물을 활용한 반려동물 식품을 아이템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경험에서 우러난 인사이트가 빛을 발한 경우네요.
김은율: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막상 새로운 아이템을 떠올렸지만 실제 반려동물 식품 관련해 알아보고, 공부해야 할 정보가 많았거든요. 하나의 식품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 고유 레시피를 확립하기 위한 습도, 시간, 온도부터 보관, 기계 활용법까지 하나도 쉽지 않았죠.
🐟 ‘생선 비린내’를 활용한 반려동물 프리미엄 간식을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셨잖아요. 애초에 동업은 고려하지 않았나요.
김은율: 어릴 때부터 프리랜서로 일하다보니 혼자 하는 게 익숙했어요. 협동보다 직접 해결하는게 편한 플레이어형 이랄까. 아직까지도 디자인일이나 기획 모두 직접 하고있지만, 지금은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명과 함께 일하면서 손발을 맞춰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그럼 현재 ‘동해형씨’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김은율: 정규직 3명, 프리랜서 3명이 함께 일하고 있고요. 정기적으로 수산물 원재료를 담당해주시는 어르신 분들이 4~5명이 비정기적으로 함께 일하고 계시죠.
– 고향이 고성인 ‘U턴 청년’에 해당하잖아요. 고향 가니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김은율: 고성 인구가 적어서 마을 사람들이 이웃 사정을 속속 알고 계시거든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뉴스도 나왔다고, 여기저기 스카웃해간다던데, 제가 어느 날 고성에 자리 잡고 생선 손질하고 있으니까 어르신들이 “갑자기 왜 생선을 만지고 있냐”라며 궁금해 하시더라고요.(웃음) 처음엔 걱정도 많이 하셨는데, 취재도 자주 오고, TV에도 나오니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며 긍정적으로 봐주시죠.
– 사업 준비할 때 고향인 고성 외 다른 지역은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김은율: 타지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까 ‘귀향’이 꿈이 되더라고요. 그 일정이 앞당겨진 셈이죠. 무엇보다 사업의 핵심인 수산업이 저의 전문 분야가 아니잖아요. 오히려 부모님이 전문가죠. 수매업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원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 고성이니까 다른 지역을 크게 염두하지 않았어요.
-‘동해형씨’가 안착하기 위해 과정이 궁금해요.무엇을 중요시 여겼나요.
김은율: ‘동해형씨’가 내놓는 프리미엄 반려동물 수산물 간식이 ‘B2C’(Business to Customer)이잖아요. 런칭 초기에는 다양한 소비자의 피드백을 받는 데 주력했어요. 막상 제품을 내놓으려니 식품 전문가도, 반려동물 전문가도 아니니까 덜컥 겁이 나서요. 반려동물 간식 레시피 연구에 약 1년 여간 집중하니 특허까지 출원할 수 있었어요. 제품이 잘 다듬어진 뒤에는 판로 확보가 중요했어요. 이건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워낙 독특한 아이템이니까 납품하자는 제의가 많이 들어왔거든요. 지금은 서두르지 않고 하나둘씩 온라인/오프라인 채널에 입점하고 있어요. 유통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짧은 유통기한’ 문제도 올 초 최대 1년까지 가능하도록 개선했고요.
– 소비자에게 처음 ‘동해형씨’ 제품을 소개했을 때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김은율: 반려동물 프리미엄 간식이라는 포지셔닝이니, 소비자 누구나 선뜻 구매하기 쉽지 않거든요. 허들이 높은 편이죠. 실제 반려동물을 아끼는 소비자 분들이 반려동물이 간식을 너무 좋아하거나, 털에 윤기가 난다는 등 호평해주시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힘을 북돋아주죠. 특히 유기견을 입양하고 눈에 띄게 밝아졌다는 후기는 아직도 뭉클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 고성에서의 창업, 그리고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
-‘동해형씨’의 시작부터 안착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지자체의 청년정책 지원을 받았는데, 청년 창업가에게 지원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김은율: 어떤 사업이든 초기 자본이 필요한데 첫 시작하는데 지자체 청년정책 지원사업이 많이 도움 됐죠. 단돈 1천 만원이더라도 청년 창업가에게는 중요한 시드머니거든요. 다만, 지원 받는 청년 10팀 중 10팀 모두 창업 준비가 완전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일면 소모적인 수혜가 될 수도 있죠.
-그렇다면 지자체의 청년정책에서 보완할 점이 있을까요.
김은율: 지자체 청년정책 지원사업의 성과가 주로 창업 유무로만 판단하잖아요. 어느 분야든 시제품 테스트해보면 여러 개 중 하나가 성공할까 말까인데 후속 투자가 부족한 것 같아요. 지역에서 창업한 뒤 성장 단계에 진입하는 청년 창업가에 대한 후속지원이나 단계별 투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동해형씨’처럼 로컬산업이 지역소멸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고성에서 ‘동해형씨’가 전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김은율: 고등학교 때부터 고성을 쭉 지켜봐왔잖아요. 지역소멸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막연히 걱정만 했었죠. 저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크고, 동네 이웃 분들과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니까 지역소멸이 더욱 와닿아요. 소멸위기지역에서 청년들이 무언가를 하면서 활력을 만들기도 하고, 코로나19에 따른 지역 방문객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이 있었어요. ‘지역 정주민은 잘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요. 이러한 마음으로 고성에서 ‘동해형씨’를 창업한 것도 있고요. 사업 측면에서는 이러한 ‘사람’과 ‘삶’에 대한 고민이 진정성 있게, 정직한 제품으로 이어져, 많은 펫팸족(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써 수산물 식품의 가치가 전달되기를 바래요.
– 지역소멸은 결국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귀결되는데요. 김 대표님은 지역 정착을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은율: 내가 어떤 지역에 살기 위해선 일자리가 필요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이런저런 필요한 게 늘어나기 마련이잖아요.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청년을 직접 지역으로 유인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잖아요. 오히려 지역에서는 1차 생산단계 산업이 많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죠. ‘동해형씨’로 사업하면서 ‘아, 지방에서도 청년들이 저런 멋진 일을 할 수 있구나’는 인식을 주고, 실질적인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싶어요. 더불어 수도권에 비해 지역을 낮게 바라보는 시선을 탈피해 우리 지역이 자랑거리와 가치를 품은 곳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미디어팀 방연주 연구원 yj@makehope.org, 정보라 연구원 bbottang@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