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기자의 첫 인상은 바람이 불면 ‘훅’하고 날아갈 것 같이 연약해 보였다. 큰 키에 구부정한 어깨. 고경태 기자는 약간 귀찮은 듯 강단에 올라와 악센트 없는 첫 문장으로 강의를 열었는데, 하지만 곧 그 담담한 어조에 담긴 날카로운 유머의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강의를 들으며 그가 ‘훅’하고 날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당당히 ‘훅’을 날릴 줄 아는 에디터임을 알게 되었다.
고경태 기자는 한겨레21과 씨네21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에서 일하면서 hook이라는 온라인 오피니언 사이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강연에 앞서 자신의 강의는 미디어 기획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다루어질 것임을 명확히 밝혔다. 결과적으로는 보편적인 기획의 정의 운운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재미있는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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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은 기획이다. 기획에는 어떤 말에도 갖다 붙일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기획’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 하는 걸까? 세상의 모든 게 다 기획이라면 굳이 골치 아프게 기획에 대해 강의를 듣고 고민을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냥 기획과 ‘매력적인’ 기획은 다른 것. 고경태 기자는 매력적인 기획의 묘를 살리기 위한 기획자의 마인드를 강조했다.
1. 월급쟁이 마인드를 버려라
2. 뒷면보기에 집착을 가져라
3.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라
4. 타이밍을 잘 잡아라
5. 컨셉을 고민하라
와 같이 목록화 하면 (그 자신도 밝혔듯이) 뻔한 얘기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그가 말한 기획자의 마인드이다. 하지만 그가 실제 작업했던 예시들을 가지고 하나하나 얘기를 하는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 그러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실천하는 데에서 결국 실력은 판가름 나는 것 같다. 새해가 되면 모든 신문이 한결같이 싣는 사진들을 쭉 나열하며, 우리 사회의 관습화 된 것들을 꼬집었다. 고경태 기자는 그런 관습을 꼬아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 듯 했다.
“하고난 일에 대한 후회는 짧지만,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는 정말 길다.”
“놈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사 때문에 최근 한겨레가 도마 위에 올랐던 사건(?)을 나도 기억한다. 그 중심에 해당 코너 기획ㆍ 진행자인 고경태 기자가 있었다. 논란이 터진 뒤 자신이 받은, 욕설이 난무하는 이메일을 공개해, 우리들의 웃음을 빵 터뜨렸지만 당시 고경태 기자의 심경은 참으로 복잡했을 것 같다.
그가 낸 책의 제목은 <유혹하는 에디터>다. 유혹하는 에디터가 되기 위해선 가끔 기사제목도 낚시글이 될 필요가 있다고, 책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때의 기사제목은 낚시글은 절대 아니었다고. 일부의 실수를 인정하긴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위의 저 말을 했다. 참으로 공감이 간다. ‘기획’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일을 매력적으로 꾸며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질러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아직도 어떤 기획을 할 때,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질러보는 것. 그게 기획자의 마인드라고.
뭘 말하고 싶은거죠?
미리 수강생들이 과제로 제출했던 한줄 카피에 대한 코멘트 시간이 있었다. 사회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한줄 카피로 표현해 보는 과제였다. 한 명 한 명의 카피에 코멘트를 달아 프레젠테이션으로 띄울 것이라곤 전혀 예상 못했던 모두에게 충격적이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상처받지 마세요. 그냥 하는 얘기니깐.” 무서웠다.
[##_1C|1331430031.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드물게(?) 칭찬을 받았던 한 수강생의 카피 _##]
다행히 고경태 기자는 상처받을 만한 얘기를 재밌게 해낼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의 문제로 지적된 것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지 못하다는 것. 나 역시 평소 문화적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해 막연하게 ‘빽빽한 도시 안에 문화적 흐름이 고일 수 있는 여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제적 앎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한 줄의 카피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는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한 줄로 표현 할 수 없다면 진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에 고경태 기자는 자신이 만들어 온 카피를 우리에게 공개했다.
* 카피: 에라, 모르겠다
* 문제의식: 눈치보지 않는 과감한 결단.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자각. 나이 들어서도 철들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
(카피의 탄생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클릭)
“에라, 모르겠다.” 2010년을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부여한 좌우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는 “짝짝짝, 참 잘했어요.^^”라는 코멘트가 덧붙여졌다.
그렇게 강연은 마무리 됐다.
강의를 들으며 나의 흐리멍덩한 사고를 어떻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예전에는 작가에게나 해당되는 이런 고민을 요즘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한다. 블로그 문화가 확산되고,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소셜 디자이너를 꿈꾸는 우리들에게 블로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흥미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도구로서 유용하다. 하지만 막상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그 황량한 여백을 감당하지 못해 유령 블로그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우리들에게 필요한 두 글자가 있었다. 바로 ‘기획’이다.
고경태 기자의 ‘소셜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기획력’ 강연 후기는 SDS 7기 2조 <두근두근 팩토리>의 채철우, 민대홍, 이지운, 이진주, 조은경, 황경아 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3. 하고 후회할래, 안 하고 후회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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