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 빌리러 왔습니다

지난 4월 22일 도봉구 정신보건증진센터 블루터치카페에서 정신질환을 주제로 정기 휴먼라이브러리 ‘너는 마음이 마음대로 되니?’가 열렸습니다. 이번 휴먼라이브러리의 기획자로, 스태프로, 독자로 참여한 세 명의 희망제작소 인턴연구원이 시간대별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 참여 전

홍지애 (공감센터 인턴연구원 이하 지애) : ‘너는 마음이 마음대로 되니?’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당연하지!’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람책 한 분 한 분의 사연을 꼼꼼히 읽어 보고 참가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들에 대한 나의 편견을 되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될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이한결 (교육센터 인턴연구원 이하 한결) : 지난 2월 국회 도서관에서 창립자 로니 애버겔 초청강연 및 컨퍼런스로 진행되었던 휴먼라이브러리 이후, 4월부터는 매월 한 가지 주제의 편견을 가지고 정기 휴먼라이브러리가 소규모로 진행된다. 이번 휴먼라이브러리의 주제는 정신질환이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고 그렇기에 더욱 편견이 많은 주제. 설레는 마음으로 휴먼라이브러리가 열리는 날만을 기다렸다.

4월 24일
PM 4시~6시

이슬비 (사회혁신센터 인턴연구원 이하 슬비) : 업무를 정리하고 교육센터 연구원 선생님, 인턴들과 함께 도봉구 정신보건증진센터로 이동했다. 이동 중 교육센터 연구원 선생님들과 오늘 진행되는 휴먼라이브러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면서 이 행사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결 : 도봉구 정신건강증진센터 1층 로비 한편에 아담하게 차려진 블루터치 카페. 정신질환자 두 분이 예쁜 유니폼을 차려입고 분주하게 뒷정리를 하고 있다. 바로 이곳이 오늘 사람책과 독자들이 만날 장소이다. 짐을 한쪽에 풀어놓고 간단한 요기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PM 6시~7시

슬비 :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블루터치카페를 휴먼라이브러리로 꾸미는 것이다. 먼 길을 오시는 사람책과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다과와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 세팅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지애 : 퇴근을 하고 서둘러 블루터치카페로 향했다. 초행길이라 길을 잃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카페에는 이미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나도 테이블에 앉아 다른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책과의 대화를 기다렸다.

한결 :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교육센터 이민영 연구원께서 희망제작소와 휴먼라이브러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유의사항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우울병 환자, 조현병 환자, 정신질환자의 가족, 정신과 전문의로 구성된 사람 책 한 사람 한 사람이 소개되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사람책과 독자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1차 대출

지애 : 내가 첫 번째로 대출한 사람책은 ‘우울병 환자’이다. 우울병 환자는 무기력하고, 꿈도 없고,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해보니 우울병 환자 사람책은 자신의 감정과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원인이 무엇인지,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있었다.

한결 : 사람책 ‘우울병 환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다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다른가요? 자신은 전혀 다른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 주변에서 계속 다르다고 판단하고 멀리하니까 우울병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나온 답변은 “달라요. 그리고 그걸 인정하게 된 순간이 저에게는 소중해요.” 같음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이 사람책에겐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슬비 :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 ‘정신질환자의 가족’ 사람책과의 만남.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오히려 시작은 간단했다. “그냥 편하게 제 이야기를 할게요.” 사람책의 침착한 한마디로 시작된 첫 번째 독서. 40분이라는 시간동안 조현병 환자 가족에 대한 편견을 깨자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사람책의 인생이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2차 대출

슬비 :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갖은 후 만나게 된 두 번째 사람책 ‘우울병 환자’. 처음보다는 한결 자연스러워진 독서시간 40분. 독자로서는 자연스러워졌으나 사람책이 느끼는 어색함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10Km씩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하려고 노력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정돈되거나 유려하지 않았지만 진솔하고 담백한 한 권의 책 그 자체였다.

지애 : 두 번째 대출한 사람책은 ‘정신과 전문의’다. ‘정신질환은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지’, ‘과연 약이 효과가 있는지’ 등 질환이나 치료에 관한 질문과 ‘정신질환자를 계속 만나면 그러한 생각이 전염되지는 않는지’,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는지’, ‘직업병이 혹시 있는지’ 등 ‘정신과 의사’에 대한 질문을 상담하듯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마음의 생김새가 다 다르고, 의사는 환자와 같이 간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한결 :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대화가 시작되자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정신질환자 가족’ 사람책. 밝은 모습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인내의 시간과 수많은 이야기들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특히 어머니로 사는 것은 불행하고 비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와중에도 소소한 행복이 있느냐는 질문에 분명하게 “있다.” 라고 답하는 모습에서 편견의 해소를 넘어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PM 9시~10시

슬비 : 두 번의 사람책 대출을 마치고, 독자들이 간단한 소회를 말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독자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을까? 이제 휴먼라이브러리가 문을 닫아야 할 시간. 서둘러 공간을 정리하고 도봉구 정신보건증진센터를 나왔다.

한결 : 정신과 전문의 사람책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편견들을 마주했으며, 자신이 정신과 전문의로서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 같다며 휴먼라이브러리 참가 소회를 밝혔다. 독자 한 분은 편견을 깰 필요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며 건강한 충고를 해주셨다. 참여한 독자들이 다함께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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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0시~11시

지애 : 행사가 끝나고, 휴먼라이브러리를 기획하고 실행한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오늘의 소감을 나눴다. 우선 가장 좋았던 점은 만나기 쉽지 않은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일반화와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사람책 1권당 4~5명의 독자가 함께 하게 되어 다른 이의 관점을 다른 독자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사람책 대출 후 독자들이 함께 모여 느낀 점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훨씬 그 효과가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뿐, 분명 비슷한 점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고 서로를 알아가는 첫 만남의 자리. ‘휴먼라이브러리’는 나에게 그런 의미를 남겼다.

한결 : 편견을 마주하는 자리인 만큼 다른 이야기보다 편견에 관련된 질문들이 많이 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집요하게 편견을 캐묻지 않아도 사람책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편견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덧붙여 사람책이 그 편견의 대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사람책을 통해 부정확한 정보가 전해졌을 때 혼란이 올 수도 있겠다는 한계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편견을 깨기 시작하면 더 큰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슬비 : 조금 특별한 도서관에 다녀온 화요일. 오늘 하루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지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글_ 이슬비 (사회혁신센터 인턴연구원), 이한결 (교육센터 인턴연구원), 홍지애 (공감센터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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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9호 한겨레 21 / 마음대로 되지 않나요? 나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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