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34
쇼핑센터에서 동전 하나로 받는 건강검진
도쿄 도심 나카노역에 위치한 쇼핑센터 브로드웨이. 쇼핑객들의 발걸음이 1층 한쪽에 설치된 작은 부스로 향한다. ‘케어프로 주식회사’가 원 코인으로 실시하고 있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원코인이란 500엔짜리 동전을 말한다. 부스를 찾은 이용자들은 먼저 검사 항목을 정하고 검사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기입한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 끝을 소독한 뒤 1회용 채혈기로 혈액을 한 방울 채취하여 시약이 든 자동 검사기를 적시면 10초 정도 후에 검사 결과가 분석돼 나온다. 이렇게 5~10분이면 500엔으로 혈당수치,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골밀도, 혈관 연령, 신체 나이 등 9개 항목을 검사할 수 있다.
케어프로의 건강검진의 장점은 이처럼 부담 없는 비용과 간단한 절차만은 아니다. 건강검진을 위해 미리 예약을 할 필요도 없으며 시간에 맞춰 멀리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건강검진 부스는 주로 지역의 쇼핑센터, 전철역, 공공시설 등에 설치돼 있어 출퇴근길에, 혹은 장을 보러 가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검사 결과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데이터가 계속 기록돼 있어 건강 관리 또한 편리하게 할 수 있다.
병원 방문 없이 500엔으로 받을 수 있는 건강검진
케어프로의 건강검진의 장점은 이용자들의 소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60대 남성 이용자는 “20년 이상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케어프로 검사에서 혈당수치가 500이 넘은 것을 보고 놀라서 바로 병원에 입원하여 당뇨병 치료를 시작했다. 500엔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30대 남성은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걱정은 되었지만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위해 하루 일을 쉬고 병원에 가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역 앞에서 케어프로 부스를 발견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혈당수치가 위험 수치로 나와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당뇨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평소 당뇨가 걱정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수치를 확인하니 스스로 건강 대책을 세우게 됐다. 식사를 조절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2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한 결과 거의 기준치로 결과가 나왔다. 2개월 간격으로 꾸준히 검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케어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병원의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지 못하는 의료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거주지가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노숙자, 육아로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는 주부,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아르바이트생,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 노동자, 스스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노인들이 그들이다.
▲ 쇼핑센터에 설치된 케어프로의 원 코인 건강검진센터
케어프로는 2007년12월 설립되었다. 26살에 케어프로를 설립한 카와조에 타카시(川添高志)는 설립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내가 만난 환자들 중 대다수의 당뇨병 환자들이 빨리 증상을 발견했다면 중병으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던 환자였다. 그중에서도 35세의 프리터(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 A씨는 입원한 다음 날 당뇨병 합병증으로 발목을 절단해야 했다. 그는 기회가 없어 오랫동안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일자리를 잃고 생활 보호 대상자가 되어서 주 3회 혈액 투석을 받게 됐다. 연간 6000만 엔의 의료비는 모두 세금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깊어진 생활습관병은 환자의 인생뿐만 아니라 사회 보장 비용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만약 그가 좀더 일찍 건강검진을 받았더라면 다리를 절단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며 카와조에 타카시가 생각한 것이 누구나 쉽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원 코인 건강검진’이었다. 그는 일본 의료비의 약 30%와 사망 원인의 약 70%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병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1년 이상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의료약자’가 전국에 약 3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보험증과 예약 없이 누구나 500엔짜리 원 코인으로 간편하게 건강검진을 받고 그 자리에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비지니스 모델을 창안해 케어프로를 설립한 것이다. 그가 대학 시절 미국 유학을 갔을 때 대형 슈퍼마켓에서 간이 건강검진이 실시되는 것을 본 것이 창업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셀프 건강검진으로 의료 제도의 장벽을 넘다
원 코인 건강검진을 실행하는데 가장 큰 장벽은 현행 일본의 의료 제도였다. 의료 제도에 따르면 건강검진은 의료 행위이기 때문에 의사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장벽은 법인격의 문제로 주식회사는 원칙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용자가 스스로 채혈을 하여 그 혈액으로 검사를 하는 셀프 건강검진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다.
이러한 장벽을 극복하고 2007년12월에 도쿄 도심 나카노역 주변에 1호점을 열었다. 올 1월에는 오다큐선 노보리도 역 안에 2호점도 열었다. 그러나 케어프로의 건강검진 서비스는 두 곳의 상설점보다는 출장 서비스가 중심이다. 귀가길이나 외출 중에 가볍게 들릴 수 있는 곳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출장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쇼핑센터의 출장 서비스 이용자는 주부가 많고, 파칭코 점에서는 프리터와 자영업자가 많이 이용하며, 역 안의 매장은 회사원들이 많이 이용한다. 설립한 지 6년째인 2014년 4월 현재 이용자는 총 2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처럼 단시간에 이용자가 급증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사업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점포를 확대하는 것은 고정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쇼핑센터, 경마장, 파칭코 매장, 온천, 스포츠센터, 대형약국, 보험 대리점 등에서 출장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러한 출장 서비스는 대체로 다양한 주체들과 파트너십으로 이뤄진다. 한 예로 USB증권과 빅이슈가 함께 한 사업을 소개할 수 있다. USB증권은 사원에게 복리후생의 일환으로 원 코인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거기서 얻은 수입으로 노숙자들에게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 USB증권과 빅이슈가 함께 한 원 코인 건강검진
365일 24시간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
케어프로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방문 간호 사업을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케어프로의 간호사들은 미야기 현 이시마키 시의 피난소를 돌며 재해지역 의료 봉사를 실시했다. 그곳에는 병원에 통원할 수 없는 의료 난민이 수없이 많았으며, 피난소에서의 재택 의료가 절실했다. 체온과 혈압, 배변사항 등을 체크하고, 약의 복용 방법을 안내하며 노약자들에게 계속적인 방문 간호를 실시했다.
재해지역에서 방문 간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고령의 노약자에 대한 재택 의료와 방문 간호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험한 케어프로는 바로 방문 간호 서비스를 전체 지역으로 확대시켰다. 준비 과정을 걸쳐 2012년 12월에 365일 24시간 대응할 수 있는 ‘케어프로 방문 간호 스테이션 도쿄’를 설립했다. 그리고 고령의 노약자들이 익숙한 자택에서 안심하고 요양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돌봐 줄 간호사들을 모집하여, 2014년 4월 현재 15명의 간호사와 1명의 물리치료사, 2명의 사무실 직원이 24시간 365일 간호할 수 있는 근무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 24시간 365일 대응하는 케어프로의 방문 간호
건강검진소 50개 설치, 이용자 100만 명 확보를 위해
현재 케어프로의 목표는 3년 후 50개의 원 코인 건강검진 출장소를 설치하고 1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해 생활습관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증상의 환자든, 언제든,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10개의 방문 간호팀을 안정적으로 꾸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보건사와 간호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고 있다. 마치 미용실에 가듯이 몇 개월에 한 번씩 가볍게 건강검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생활습관을 점검하여 생활습관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오늘도 달리고 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westwood@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