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충북에서 살아보기’
도시 생활이 지긋지긋해도 귀농귀촌하긴 겁난다면? 한 달이나 일 년씩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지역에 애정을 품은 ‘관계인구’를 늘리는 한 방안이죠. 서울 토박이 나현은 지난해 8개월간 충북 제천 덕산에서 보냈습니다. “삶에 구체적인 선택지를 하나 더 얻은” 한 해였습니다. 그에겐 ‘비빌 언덕’이 있었습니다. 제천에 본가를 둔 친구인 별과 청년 농촌 정착 플랫폼 ‘청년마을(주) /이하 ‘덕산 청년마을’입니다. 덕산 청년마을 ‘충북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살 곳과 점심, 작업공간과 체험기회를 줍니다. 그 정도면 ‘떠나볼 결심’해 볼 만합니다. 나현과 별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참여자였을 뿐만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청년여성 농촌 정착 지원 프로그램 ‘시골언니 프로젝트’의 제천 운영자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시골에서 삶을 고민하는 다른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 준 셈이죠. 나현과 별한테 “계절을 오롯이 느꼈던 한 해”에 대해 물었습니다.
2018년, 20대 초반의 어느 날
두 사람은 어느 면접장에서 ‘경쟁자’로 만났습니다. 당시 나현은 대학생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가 ‘활동가’를 ‘직업’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는 있을까? 노동 강도는 세고 벌이는 적은 환경에서 오로지 신념으로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내가 고민하고, 내가 결정해서, 내가 책임지는 삶을 지켜가고 싶은데.’ 별은 그런 나현이 “멋있었다”고 합니다. 난생처음 본 사람인데 친해지고 싶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대안대학 지순협(지식순환협동조합)을 졸업한 별은 자기 삶의 방향을 잡아줄 중요한 가치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이 면접장에 오기 며칠 전 별은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열린 ‘아시아 평화교육 워크숍’에 다녀왔습니다. “평화는 가망 없는 목표 같잖아요. 공격받기도 쉽고요. 그 불안을 감수하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이 평화활동가더라고요.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함께 하고 싶었어요. 어떤 가치를 받아들이냐에 따라 인생 항로가 결정될 수 있잖아요. 나현은 수년 동안 평화와 관련된 활동을 해왔고, 진지하게 다음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둘은 친구가 됐습니다.
2021년, 20대 후반의 어느 날
나현은 활동가로 3년 일했습니다. “이름 뒤에 붙은 활동가라는 낱말 때문에 더 진지하게 열심히 움직였던 거 같아요.” 네트워크를 넓혀가고 공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좋아하는 일이고, 정말 잘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그 마음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런 경험 해보셨나요? 정말 지치고, 상처받고, 화나면 다시 잘 해봐야지, 그럴 수도 있지, 극복해야지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어요.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을 남겨두고, 완전히 끊어내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어요.”
나현은 ‘자체 방학’을 결심했습니다.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해보려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막상 집에만 있으니 더 우울한 거예요. 서울에선 그런 감정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달까요? 창밖만 봐도 다들 바쁘게 움직이잖아요. 무얼 하자니 힘은 안 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그래서 뭐라도 해봤어요. 여유도 즐겨보고, 운동, 공부, 독서 다 해봤어요. 그래봤자 서울이더라고요.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또 비슷하게 고민하다, 비슷하게 결정해서, 비슷하게 일하다, 또 그만두겠다 싶었어요.”
그때 제천에 머물고 있던 별이 연락해, ‘충북(제천)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링크를 보냈습니다. “서울 바깥이 궁금하긴 했지만, 막상 떠나려니 무섭고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정보도, 관계도, 자본도 없고.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이 저한테는 중요하고 필요했어요.”(나현)
2022년, 자신에게 선물한 전환의 해
나현이 덕산에 왔을 때 벚꽃이 막 지고 잎사귀가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별은 ‘덕산 청년마을’로 들어가 나현의 룸메이트가 됐습니다. 나현은 난생처음 목공과 농사를 배웠습니다. “손재주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와서 막연히 제가 잘할 줄 알았는데 못 하더라고요. 기술도 체력도 센스도 제 맘처럼 되는 게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공유경작지에서 손 모내기를 해요. 저는 한 시간 동안 한 줄을 겨우 삐뚤빼뚤 심는데, 누군가는 그걸 십오 분 만에 칼각으로 해내요.” 그는 그곳에서 못해도 괜찮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서울에서 경험해 온 것들과는 정반대죠. 서울에선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 데다, 경쟁에서 돋보이기 위해 늘 완벽하게 잘 해내야만 하잖아요. 여긴 과정에 집중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별이 덧붙였습니다. “덕산 청년마을은 나다움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공동체예요. 지역에서 청년이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조금씩 해나가면 그것 자체가 곧 마을의 자산이 된다고 말해주는 곳이거든요.”
나현은 덕산에서 벚꽃 잎사귀 색깔이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일상도 달라졌습니다. 여기 시골 맞나 싶게 바빠졌습니다. ‘덕산 청년마을’엔 배움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 둘 만 모이면 언제든 다양한 수업이 열립니다. 영상, 그림, 도예, 천연염색, 서예, 전통주, 약초, 요리…. 강사는 지역 주민이기도, 마을 청년이기도 합니다. “문화생활에 대한 요구가 있는데 접근성이 좋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기회가 있으면 더 하고 싶어져요. 뭐, 새로운 배움터 열린다고? 나도 갈래. 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스케쥴이 엄청 빡빡해졌죠 하하. 이런 프로그램으로 여건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좋았어요. 도시가 아닌 곳도 다채롭고 바쁘고 재미있고 시끄러울 수 있구나.”
별은 이런 순간들이 좋았습니다.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하루에 네 대밖에 없는 월악산 자락,오래된 오토바이 한 대로 햇살이 쏟아지는 가로수길 사이를 내달리고, 친구의 밭에서 몰래 감자와 가지, 토마토를 잔뜩 따다 저녁에는 요리 배틀을 하고, 밤이면 온돌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할 수 있을까? 농사짓지 않고도 먹고 살 방법이 있을까? 내 정체성과 가치관을 시골에서도 존중받을 수 있을까? 청년이면서 여성인 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일까?’ “걱정, 불안, 두려움, 막연함… 저는 지역에 아무런 인맥도, 경제력도, 정보도 없는 1인 가구 여성 청년이니까 귀농귀촌 관련 공고나 지원 제도를 더 유심히 찾게 되더라고요. 근데 대부분 ‘은퇴 이후 귀농귀촌하려는,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을 위한 내용밖에 없어요. 위험에 처하면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이웃과 관계를 형성하려면 어떤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찾아야 하는지, 귀농 이외에 귀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나 지원이 있는지. 그런 것들은 없더라고요. 관련 교육도 몇 번 들어봤지만 큰 차이는 없었고 저한테는 결국 다 이렇게 느껴졌어요. 귀농귀촌하고 싶다고? 여기 굉장히 열악하고, 폐쇄적이고,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이래도 올 수 있어? 다 준비된 거 맞아? 그런 걸 보면 더 무서워지거든요.”
나현과 별은 고민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발견했죠. 도시 밖 삶을 고민하는 청년 여성들에게 시골 생활을 구체적으로 안내해 줄 ‘아는 언니’를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입니다. ‘이거다’ 싶어 지원했지만, 자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가 시골언니 맞나? 시골에 가는 중인 언니 아니 친구 정도 아닌가? 다른 ‘시골언니들(현장운영자들)’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역에서 거주하고, 일하고, 관계 맺어온 분들이었거든요. 체류 기간이 짧다는 게 우리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시골언니’가 다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래 산 사람, 이제 갓 이주한 사람. 이주는 안 했지만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더 많은 걸 고민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로컬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고요. 덥석 우리만 믿고 여기로 오라고 할 만큼 자리 잡은 시골언니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청년과 어른을 연결해 주는 것만큼은 책임지고 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죠.”
막상 ‘시골언니’ 제천 운영자가 되고 보니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강원도 제주도 가지 제천 올까? 덕산까지 올까? 두 사람은 자기들이라면 ‘좋아할 것’을 더하고, ‘싫어할 것’을 뺐습니다. 첫째는 ‘안전한 공간’입니다. ‘너무 예민하다고 하지 않을까? 이상하다 하지 않을까? 공격당하지 않을까?’ 이런 자기 검열 없이 존중받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 만드는 데 두 사람은 일가견이 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해오던 일입니다. 일방적인 강의는 빼고 서로 배울 수 있는 활동을 넣었습니다. 제천간디학교 졸업생과 서울에서 온 여성이 함께 이끌어가는 ‘누리마을빵카페’에서는 지역 생산물을 활용한 베이킹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덕산 청년마을 ‘살아보기’ 프로그램한 뒤 이곳에 목공방을 창업한 청년들이 시골살이 온갖 굴곡을 전하며 함께 나무를 깎습니다. 제천간디학교 선생님은 1인 가구 여성으로 친구처럼 경험을 들려줍니다. “참여자들에게 여러분의 몸과 마음 상태가 가장 중요하니 언제든 자기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했어요. 주민 강사님한테 어리다고 바로 반말하지 않기로 약속도 받았고요.”(별)
하루에 네 번밖에 없는 버스 시간에 맞춰 월악산 자락 마을까지 5박6일 휴가를 받아 온 사람들,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첫 프로그램에서 15명을 모집했는데 일주일 만에 다 차고 대기자가 15명이었어요. 여성 청년 특화된 사업이 별로 없다 보니 수요가 많았던 거 같아요.”(나현)
2023년, 갈림길..돌아갈 수 있는
나현은 다시 서울로 와 희망제작소 새 연구원이 됐습니다. “계속 거기 살자니 아직은 서울에 있는 제 관계나 일을 포기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덕산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삶에 구체적인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거죠. 원하면 돌아갈 수도 있고 다른 지역에 살 수도 있고요.” 그에겐 강화, 옥천, 울주, 상주 등 8곳에 ‘시골언니’가 생겼습니다.
별은 덕산에 남아 앞으로 방향을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충북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이번엔 운영자로 참여합니다. 별 씨가 아예 눌러살지는 아직 모릅니다. “정착한 사람, 떠난 사람으로 나누는 게 맞나 싶어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스스로를 긍정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망 속에서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덕산에서 지난 한 해를 충만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덕산의 자연과 사람들 곁에 더 있어 보고 싶더라고요.”
별은 나현의 한 문장을 기억합니다. “우와, 세상이 뿌옇게 보이네.” 미세먼지가 아니라 쨍한 햇살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 산을 그리라면 세모에 초록색을 칠했습니다. 여기 와 보니 아닌 거예요. 산 색깔이 분홍, 빨강 다양한 거예요. 그걸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은 다른 거 같아요.”(나현)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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