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상담사 로라 씨의 다섯 가지 질문

20대 청년보다 활기차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미국 시니어, 그들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젊은 한국인 경영학도가 ‘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 아래 자신의 눈에 비친 미국 시니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적극적으로 노년의 삶을 해석하는 미국 시니어의 일과 삶, 그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_1L|1304715507.jpg|width=”1″ height=”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7)  

예전에 소개해드린 바 있는 SOAR55는 시니어 자원봉사자와 비영리단체를 연결해주는 기구입니다. SOAR55라는 조직 자체도 실은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꾸려지는 단체입니다.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시니어 자원봉사자. 저는 그분들이 SOAR55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6월 말, SOAR55 잰(Jan)씨의 소개로 로라(Laura, 가명)씨를 만났습니다. 로라 씨는 SOAR55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중 한 분으로 보스턴 서쪽 외곽 도시 프래밍험(Framingham)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계십니다. SOAR55에서 현재 로라 씨가 하는 일은 자원 봉사 일거리를 찾는 시니어 분들과 상담하고, 각자에게 맞는 자원봉사 일을 소개해주는 것입니다.  

로라 씨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수요일에 프래밍험 공공 도서관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무실에서 시니어들을 만납니다. 로라 씨를 따라 들어선 사무실은 자그마하니 로라 씨와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온 시니어 한 분이 앉아 있으면 꽉 찬 느낌이 들 만한 크기였습니다. 이 사무실에서 지난 몇 년간 여러 시니어들을 만나 자원봉사 상담 및 소개를 하면서 로라 씨는 상담 절차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먼저 로라 씨는 시니어들이 사무실을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여러 시니어 관련 단체들로부터 리스트를 받아 이메일을 먼저 보내봅니다. 그 중에서 답장이 오는 사람들에게 로라 씨는 한 번 본인과 만나보지 않겠냐고 물어봅니다. 그 중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한 시간 정도의 상담 약속을 잡습니다.

약속을 잡을 때 ‘지금까지 해온 일의 여정(Work History)’을 적어서 오라고 한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의 여정’이라는 단어도 로라 씨가 경험을 통해 일부러 선택한 단어였습니다. 처음에는 약력 혹은 이력서(resume) 등의 단어를 썼지만 찾아오는 시니어 분 중에는 특별히 커리어라고 말할 수 있는 직장이 없었던 분들도 있어 이제는 ‘Work History’라는 단어를 쓴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분들이 주눅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상담 당일 시니어를 만나면 로라 씨는 가장 먼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SOAR55에서 하는 일은 기존의 인력소개소와 다르며, 본인이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는지 포장하기보다 솔직하게 관심있는 것을 말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로라 씨가 소개해주는 자원봉사 자리를 바로 승낙하고 일을 시작할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시니어들 중에는 직장을 잃은 후 제대로 된 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고 이러한 시니어들은 인력소개소에서 위축감을 느낀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경계심을 갖고 로라 씨를 찾아옵니다. 한 시니어는 심지어 로라 씨의 사무실에 들어와 앉기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정해주는 일자리를 반드시 따라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의자에 앉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라 씨는 SOAR55는 인력소개소가 아니며,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기쁘게 할 수 있는 자원봉사 일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SOAR55라는 단체의 목적과 자신이 상담사로서 하는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한 뒤, 로라 씨는 찾아온 시니어에게 어떤 자원 봉사 자리가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다섯 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1. 일대일로 일하는 것이 좋은가, 팀을 이뤄 일하는 것이 좋은가

2. 어린 아이들과 일하는 것이 좋은가, 시니어들과 일하는 것이 좋은가

3. 자원봉사를 하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4. 폭력 피해자들과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5. 수감자들과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들은 로라 씨가 다 년간 상담을 하면서 개발한 자원봉사 일거리 분류법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로라 씨는 사람마다 절대로 하기 싫어하는 자원봉사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위의 질문항목을 만들었습니다. 로라 씨의 관찰 결과 어떤 사람은 본인이 피해자였기 때문에 다른 피해자와 일하는 것을 꺼려하기도 했고,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원봉사 자리 중에는 일대일로 상담하는 일 혹은 교육하는 일 등이 있는 반면 시니어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야하는 자원봉사 자리도 있었습니다. 어린이 교육을 담당할 수도 있고,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노인을 보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 노인들이나 차가 없는 사람들의 발이 되어서 여러 곳을 운전하며 다녀야하는 일도 있었고, 다양한 폭력 피해자들을 교육하고 도와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의 재교육을 담당하는 일도 있었고, 병원 환자들의 말동무를 해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로라 씨는 찾아온 시니어와 앉아서 이 리스트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각자에게 맞는 일을 함께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일단 찾아온 시니어가 하고 싶은 자원봉사 자리를 다섯 개 정도로 추려내면 상담이 끝납니다. 그 리스트를 SOAR55의 최고 담당자인 잰(Jan) 씨에게 보내면 자원봉사 자리가 나는 대로, 혹은 해당 자원봉사처 혹은 비영리단체에서 그 시니어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오는 대로 그 시니어에게 직접 알려줍니다.

로라 씨와 이야기를 나눠보기 이전에는 SOAR55를 시니어 자원봉사 소개센터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SOAR55 자원봉사 상담자로서 로라 씨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나니 자원봉사자를 돕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로라 씨는 SOAR55의 자원봉사 소개 절차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줬을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첫째, 로라 씨의 입에서 나오는 생생한 미국 시니어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원봉사 일거리를 통해 시니어들이 얻고자하는 것은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로라 씨 말에 의하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인생의 세 번째 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경우입니다.

또 다른 많은 분들은 자원봉사 자리를 네트워크의 수단이나 새로운 유급 커리어 시작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인식하고 찾아온다고 합니다. 미국 시니어들은 6개월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 새 직장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에 다양한 네트워크도 찾고, 경험도 쌓기 위해서 SOAR55를 찾는 것입니다. 찾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파악해 필요한 부분을 찾고 도와주려 힘쓰는 것이 바로 로라 씨의 일이었습니다.

둘째, 로라 씨를 통해 목적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한 번 시작한 자원봉사일은 진심을 다해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10대 소녀처럼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로라 씨의 모습에서 그 자그마한 사무실을 찾았던 많은 시니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로라 씨가 얼마나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로라 씨는 자신이 인생의 두 번째 장에서 첨단 산업 대기업에서 일하며 닦아온 홍보 및 경영 실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더 체계적으로 시니어들을 도울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자원봉사 일자리 소개로 그칠 수도 있는 일을 로라 씨는 본인의 노하우와 관찰력을 통해 그 영역을 확장하고 더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공공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시니어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돕는 자원봉사자 로라 씨와 로라 씨를 찾아오는 자원봉사자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셋째, 로라 씨가 이렇게 애착을 가지고 하고 있는 지금의 자원봉사 일 역시 그냥 쉽게 찾아온 기회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자원봉사 일을 찾으려는 꾸준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로라 씨는 싱글맘으로 살면서 중소기업 마케팅, 영업 부서에서 시작해 대기업 마케팅 부서로 옮겨 다년간 경력을 쌓았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도전d과 개척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로라 씨는 자신이 사는 커뮤니티 안의 자원봉사 일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은퇴 후에는 예전 일터에서 알던 사람의 소개로 프래밍험 법원에서 조정자로 본격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년간 조정자 일을 하면서 이쪽 저쪽에서 많은 압력에 시달리는 업무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자원봉사 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자원봉사도 해보고, 지역 사회에 있는 작은 단체에서도 일을 해보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찾은 것이 SOAR55의 자원봉사 상담사 일이었습니다.

이직과 전직이 잦은 미국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Proteus)가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듯 직업과 직장을 바꾼다고 해서 ‘*프로티안 커리어(Protean Career)’라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대학 졸업 후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식당을 열기도 하고, 병원에서 언어치료사로 일을 하다가 댄서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용어설명

[#M_ more.. | less.. |프로티안 커리어 (Protean Career): 유동화된 인력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커리어 유형으로 기존의 조직 중심 커리어가 아닌 개인 중심 커리어를 뜻한다. 프로티언 커리어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정의하는 승진, 보너스 등을 바탕으로 성공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 성공을 중요시 여기며, 조직에 충성을 바치는 것보다 개인적인 성장과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http://wfnetwork.bc.edu/encyclopedia_entry.php?id=249
_M#]

자신에게 의미있고 마음이 맞는 자원봉사 자리도 이와 같은 도전과 개척 정신을 바탕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기존에 하던 일과 다르더라도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로라 씨도 다양한 자원봉사 일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자원봉사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고, 다른 시니어들의 자원봉사 자리를 찾는 일 역시 행복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1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가정을 해보면, 50대라는 시기는 인생의 네 개 장 중 세 번째 장을 막 여는 시기이며, 반이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아닐까요. 자원봉사로 시작한 일이 정식 직업으로 바뀔 수도 있고, 본인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자원봉사 기회를 가져다 줄 지도 모릅니다. 자원봉사 일을 찾을 때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프로티안 커리어 사고 방식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덧붙이는 이야기: 로라 씨는 현재 SOAR55의 자원봉사 상담사로 활동하는 것 외에 종합병원에서의 자원봉사 일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보석 사업을 구상 중이며, 주말에는 뉴헴프셔의 작은 별장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글_ 김나정 (보스턴 컬리지 경영학 박사과정)

[##_1L|1295200939.jpg|width=”87″ height=”7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김나정은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조직사회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미국 보스턴 컬리지 경영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일터에서 다양한 종류의 변화를 겪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박사 논문 주제로 은퇴기 사람들의 새터 적응기 및 정체성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najung.kim@bc.edu

● 연재목록
1.
세 번째 장을 사는 사람들
2. 인생의 의미, 한 문장으로 간추리면       
3.
낯선 자신이 두려운 시니어에게 
4.
어떤 자원봉사 자리 찾아드릴까요?
5.
나이에도 종류가 있다  
6. 탱글우드의 시니어는 왜 즐거운가
7.
자원봉사 상담사 로라 씨의 다섯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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