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시작될 때 즈음 개강한 ‘마을이 학교다’ 2기도 벌써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평창동에서 보낸 하루에 이어 7월 14일에는 예술가 마을로 잘 알려진 헤이리 마을에 모여 마을만들기에 대해 고민하는 또 다른 뜻깊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헤이리 마을은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는 곳이자, 많은 갤러리와 박물관 등 문화예술공간이 모여 있어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입니다. 그런데 그림과 조각품, 그리고 공예품으로만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이곳에 텃밭을 일궈 수확한 작물로 점심을 만들고, 똥오줌으로 만든 거름을 밭에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농부가 흘리는 땀과 들녘에 흔들리는 벼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들, “농사가 예술이다” 라고 외치는 쌈지농부 사람들을 헤이리 마을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쌈지농부는 토종 잡화브랜드 쌈지를 창업한 천호균 대표가 농부와 농사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고자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든 기업으로, 문화예술 컨텐츠 기획부터 디자인, 유기농 식품 유통, 작가공방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것이 주목받고 아름답게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에서, 쌈지농부는 농촌의 흙에서 나오는 것을 키우는 행위와 또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헤이리 마을 4번 게이트로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박물관 간판, 장난감 모형과 작은 이동식 매대가 시선에 들어옵니다. 화려한 건물들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난 흙길로 들어서면 땅에 박혀 있는 거대한 무 모양의 조형물이 시선을 잡아 끌고, 그 뒤에는 산비탈에 나지막이 자리잡은 논밭예술학교 건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논밭예술학교는 산비탈에 녹아드는 외관과 미로 같은 내부만큼이나 흥미로운 용도로 지어진 공간입니다. 한 건물 안에 갤러리와 레스토랑,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는 곳은 아마 전국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을이 학교다 수강생들은 건물 안에 굽이굽이 이어진 복도와 계단을 따라 올라가 꼭대기 층에 있는 밭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전시회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밭 갤러리는 현재는 전시가 열리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과 공간이 연장되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거울, 그리고 깨져서 금이 간 유리 위에 그대로 그림을 그려 꾸며 놓은 커다란 채광창으로 둘러싸인 방은 공간 그 자체로 투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채광창 밖에 있는 작은 테라스에서 금이 간 창문을 보며 새가 날아와서 부딪혔다느니,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느니 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천호균 쌈지농부 대표가 들어오자 갤러리로 들어와 모두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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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균 대표는 우리 앞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의 소소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년쯤 전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작물을 키우는 기쁨과 집 주변에 나타난 길고양이 이야기와 거름을 주기 위해 똥오줌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 미소를 그림 속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 즐거운 모습 자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천호균 대표가 강의 내내 이야기한 “농사가 예술이다” 라는 말에 점차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냄새나는 흙과 그 위에 자라는 벼, 그리고 그것을 돌보는 농부의 주름진 얼굴에 쓰여진 이야기는 어쩌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천호균 대표의 짧은 강의가 끝난 뒤에는 쌈지농부의 천재박 과장이 나서서 쌈지농부가 전국의 농촌과 마을에서 하는 사업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쌈지농부의 사업은 크게 헤이리 마을 내에서 운영하는 공방, 가게와 헤이리 마을 밖에서 하는 디자인 컨설팅으로 나누어집니다. 헤이리 마을 내에서는 예술 전시공간, 레스토랑, 세미나 공간, 요리교실, 생태교실을 겸하는 ‘논밭예술학교’를 시작으로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는 ‘농부로부터’, 지역 작가의 공방과 공예체험프로그램이 있는 ‘작가공방 일하자’, 그리고 자연주의적인 쌈지농부의 철학을 반영하는 잡화 매장인 ‘생태가게 지렁이다’를 운영하고 있고, 헤이리 밖에서는 전국 곳곳의 향토 사업장의 디자인과 상표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쌈지농부의 모든 사업에는 공통적으로 사람과 자연이 중심이 되어 만드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있다는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헤이리 마을 곳곳을 둘러보면서 재활용 소품을 구경하기도 하고, 유기농 채소 찬거리를 사기도 하고, 여기저기 있는 공방들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와 마음 속에 담았습니다. 마을 내의 가게들과 공방을 둘러보면서 발견한 울퉁불퉁하고 작지만 자연 그대로인 당근, 각종 유기농 곡물, 자연을 닮은 한지공예 조명, 주변 지형에 녹아들면서 자연을 그대로 담은 건축물은 쌈지농부가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는 좋은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좋은 마을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곱씹어 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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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모두 마치고, 한지 공방 앞에서 모여 선 우리에게 천재박 과장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쌈지농부에서 하는 활동들이 ‘마을이 학교다’에서 지향하는 바와 같이 주민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에 어떻게 비추어질지 고민을 많이 했다더군요. 하지만, 많은 지역이 아직도 경제성 위주의 개발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름다움과 바람직함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해 나가는 쌈지농부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마을을 만들자는 구호 이전에 우리 동네를 먼저 둘러보고, 잠시 앉아서 고민하고 꿈꾸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습니다. 농사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헤이리 마을 쌈지 농부들처럼.
글_ 류경수 (뿌리센터 인턴연구원)
사진_류경수 이양희 (뿌리센터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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