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해피시니어’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부를 비영리기구(NPO) 또는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참여해 사회공헌을 할 수 있도록 돕고, NPO·NGO에게는 은퇴자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연결해주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적인 대안 프로젝트입니다.? 해피시니어에서는 매월 시니어들을 위해 ‘행복설계포럼’를 열어, 성공적인 인생 후반전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신문에 칼럼은 그만 쓰려고 해요. 글도 늙고 사람도 늙으니까요. 앞으로는 아주 마일드하게 ‘내 인생의 남자들’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저를 키운 것은 사람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듣기 좋아합니다. 신혼시절 집세를 준 사람들, 새로 이사 간 동네 할머니들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래서?’ ‘어머! 어떻게?’ ‘왜?’ 하며 공감하다보면 사람들이 솔솔이 이야기합니다. 동시대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사용자?

‘나는 누구인가?’, ?‘나대로 사는 것은 무엇일까?’

김선주씨(63ㆍ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칼럼니스트)는 혼자 집에 있을 때 깊은 사색에 잠겨 많이 고민한다고 한다.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직장 일로 바쁘면서도 늘 돌보야 할 식구들과 가정 일이 짐이더니 이제는 사는 문제를 살펴 볼 자산이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무리 곱게 포장을 해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김선주씨가 말하는 ‘아름답게 나이들기’가 궁금한 청중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희망제작소 4층 희망모울 안이 꽉 차고도 자리가 모자라 보조의자로 채웠다.

김 전 위원은 연단에 오르지 않고 청중들과 같은 눈높이의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임플란트 시술로 인해 발음에 문제가 생겼고, 머리도 백발이 되어 염색한 이야기를 하며 나이 듦을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나이 듦을 견뎌낼 수 있을까. 어떻게 잘 늙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며.

흔히 사람들이 ‘곱게 늙어야지, 아름답게 살아야지’하는 말을 들으면, ‘젊어서 아름답게 살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늙어서 아름답게 사느냐’고 첫 번째 하이킥을 날린다.

“제 부모님이 90살 넘게 장수하셨고 결혼해보니 노인들이 즐비하셨어요. 이제 다 떠나셨지요. 주변에서 장수하는 분이 많아 ‘나이듦’을 많이 느끼고 생각했어요. 저도 지금 노년준비를 하느라고 참 힘듭니다. 며칠 전, 그 좋다는 강남 아파트에서 강북 단독주택으로 이사했습니다.? 아침에 문 열고 나갔을 때 맞는 공기도 좋고 ‘땅 있는 곳에서 죽음을 맞아야지’ 생각했기에…….”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라

“박완서 선생이 ‘평균수명이 늘어난 시점에서 옛날식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며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라’고 하셨어요. 어른이 되는 나이가 늦어졌고 지금은 70이 되어야 노인 대접을 받지요.”

김 전 위원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첫째로 ‘여자로, 남자로 사랑하며 살자’고 전한다. “저는 이 나이에도 여자 대접 받는걸 좋아합니다. 여자, 남자 그런 걸 느끼고 사는 것이 생의 활력이 됩니다. ‘성기능은 69세까지다’라는 판사의 판결에 성토하는 남자친구가 이뻐 보입니다. 중년 이후의 부부가 서로 소, 닭 보듯이 사는 분이 많습니다. 사랑, 로맨스, 사람의 근원적인 행복입니다. 그런 사랑을 많이 하십시오.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 멋진 여자, 멋진 남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이성에 대한 관심과 멋져 보이려는 노력… 이런 것이 멋져 보입니다.”

더불어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너그러운 마음도 당부한다. “배낭 메고 튼튼해 보이는 남자들이 지하철에서는 꼭 노인네 행세를 합니다. 젊은이 앞에 서서 ‘자리 안 내주나’하는 노인들이 눈에 보입니다. ‘괜찮다. 나는 잠시 나왔을 뿐이다. 바쁜 자네가 앉게나’하면 얼마나 멋있습니까. 인생에서 깊이와 넓이는 나이 들어서 생깁니다.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사랑표현을 진하게 하면 저는 부럽고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어떤 이는 어디서 이런 행동을 하냐고 끝까지 째려본다고 하네요.”

두 번째 주제는 ‘계급장을 떼고 살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번 국장이면 죽을 때까지 국장, 한번 사장이면 죽을 때까지 사장입니다. 혼자 느꼈던 자기 자신, 그런 소년의 마음으로 계급장을 다 떼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새기며 삽시다. 인생의 정점이었던 시절에 멈춰있지 말자는 겁니다.

90세에 돌아가신 은사님이 ‘90세까지 살 것을 예측 못했다. 죽음을 기다리며 살지 말고 새로운 것을 계속하면서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나이 들면 왜 보수화 됩니까. 40년 전에 배운 세계관, 철학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은 젊어지려고 애쓰면서 마음은 젊어지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혈연만 중요한가요?”

김 전 위원이 낮은 목소리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허망하다고 하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내’가 소멸되는 이 세상의 삶인데, 덜 무의미하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녀는 ‘허망해도 ‘내’가 태어났다 감으로써 몇 억분의 일이라도 이 세상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자기 재산의 최후의 한 방울까지 자식에게 남기고 가려 하지 맙시다. 개인이 소멸하면 그 사람 재산도 소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은 사회적인 유대관계 속에서 삽니다. 꼭 혈연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식한테 남겨주되 다 남겨주지 말고 각자 소속했던 사회에 조금이라도 남겨줍시다. 우리가 부모로서만 살아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까운 이에게 이야기하듯 이어진 강연이 끝났다. 김 위원은 사람들 심리를 알고 싶어 그런다며 나이, 성별과 함께 좋아하는 낱말 열 개를 청중들에게 부탁한다. 까뮈가 좋아하는 단어 중에 ‘고통’이 들어있었다며 ‘고통’을 최근에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덧붙이며.

청중들이 열심히 쓰고 있는 동안, “여기 재혼하신 분 있으세요? 삼혼하신 분은요?”하고 묻는다.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사람은 뭐든 할수록 잘하지요.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랑도 소소하게 하다보면 대박 터집니다.

은퇴 후, 가장 중요한 것이 배우자와의 관계입니다. 밖에서 시니어가 해피하면 뭐합니까. 집안에서 웬수지간이면. 솔직하게 앞으로 90까지 산다면 지루하게 어떻게 살겠습니까. 배우자에게서 성적갈망도 느끼고 익사이팅한 감정 이런 것을 느끼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이 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남자로서 여자로서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거죠.”

꺼진 불도 다시보자

이제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김 전 위원은 ‘노숙자시리즈’와 ‘깻잎시리즈’가 왜 생겼는가를 이야기하며 청중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한다.

“어느 분이 ‘인생에서 황금기가 59세에서 69세야. 자식 키워놓고 부모 봉양 의무도 끝났고 술 한 잔 먹어도 좋고 부부관계도 편안해지고’ 라고 하시더군요. 저희는 환갑을 맞으며 ‘우리 서로 죽을 때 너 때문에 하고 싶은 일 못했다고 말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배우자가 꿈을 실천하고 가도록 하십시오.

부부관계를 고민하는 주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꺼진 불도 다시보고, 재활용하라’고 조언합니다. 부부가 같이 해결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어디 가서 실컷 놀고 오라고 하십시오. 제주올레에 60ㆍ70대 여자들이 그렇게 많이 걷습니다. 60ㆍ70대 여자는 자기 성찰을 하고 살 기회가 없었어요. 가정을 위하여 그저 참고 살았으니까요. 정경부인 콤플렉스, 조강지처 콤플렉스라고 할까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서 사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습니다. 하나의 인간, 개인 아무개로서의 삶을 활발하게 갖는 게 노년을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나는 시니어야, 노년이야’ 에 맞추어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부부문제 카운슬링로 주제가 이어졌다. 테레사 수녀가 “여러분 모두 캘커타로 오지 마시고 이웃의 캘커타로 가십시오” 라고 했듯이 김 전 위원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다.

더 나아가 자기 주변의 가장 가까운 이들을 돌보고 어려움을 살피는 사람이 되자며 “아내에게 어떻게 해줘야하느냐”는 질문에 ‘시키지 않은 일을 해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꼬집는다.

“나이 들어서 미워하며 한 집에 사는 부부가 많습니다. 부부란 서로 잘 보이고 서로 잘 살아야 합니다. 노년을 얘기하자면 부부관계를 짚지 않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아름답게 나이 들기’의 제일 첫째는 부부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이런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아름답게 살 수 없습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_ 정인숙

중고교 영어교사로 50세까지 지냈다. 글읽고 음악듣고 영화보기를 즐긴다. 나무를 살펴보며 걷는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있다. 해피리포터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가열차게 글을 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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