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통신 (3) 전력 자급율 180% 달성한 ‘풍차의 마을’
사상 초유의 재난이었던 동일본 대지진은 약 2만 명의 인명 피해, 그리고 약 16조~ 25조 엔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가져왔다. 약 6300 명의 인명피해, 약 10조 엔의 재산피해를 기록한 한신대지진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건 지진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였다. 철통같이 믿었던 원자력 안전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사능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방사능의 영향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에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탈원전’과 ‘원전 없는 사회’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지난 9월 19일 도쿄 도심에는 약 6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거리로 나온 최대 인파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 등의 주재로 열린 이날 집회는 탈원전으로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 ‘사요나라! 원전1000만 명 행동’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
기업도 ‘탈원전’ 동참
산업계의 동향 또한 심상치 않다. 가장 먼저 깃발을 든 곳은 손정의 사장이 이끄는 통신회사 소프트뱅크.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탈원전을 적극 주장해 왔던 그는 지난 6월 주주 총회를 통해 ‘발전과 전기의 공급ㆍ판매’ 사업에 새로 진입하겠다고 밝혔다. 7월에는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 등의 보급을 목적으로 오사카를 비롯한 36개 광역자치단체와 함께 ‘자연에너지협의회’를 발족시켰으며, 9월에는 사재 10억 엔을 출자해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했다. ‘버려진 밭에서 전기를!’ 이란 슬로건이 말해주듯 휴경지 등을 활용해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메가솔라)를 건설해 자연에너지 발전의 비율을 높여 원전 의존 사회로부터 탈피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파나소닉 등의 가전업계와 주택업계는 각 가정마다 태양광 파넬과 축전지를 설치하는 내용의 ‘전력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마을만들기’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핵연료 재처리 공장이 있는 아오모리현(靑森縣) 록카쇼(六ケ所) 마을에서도 도요타, 파나소닉, 히타치, 일본풍력개발이 차세대 송전망 건설을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전력회사의 전기는 보조적 존재가 된다. 미쯔비시 중공업은 거대 해상풍력발전소를 건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산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 에너지 정책 변화와 무관치 않다. 원전 사고 후 여야당의 끈질긴 퇴진 요구에 시달리면서도 탈원전 정책에 의욕을 보여온 간 나오토 총리는 지난 8월 ‘재생가능 에너지 특별조치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퇴진했다. 민간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일정기간 동안 전력회사가 국가가 정한 고정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으로 과도한 투자 비용에 발목이 잡혔던 민간의 자연에너지 개발 노력은 한층 활발해질 것이며, 2020년 자연에너지 비율을 총발전량의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간 정부의 계획이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간 나오토 전 수상은 지난 5월 10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백지 상태로 돌리고, 에너지 정책의 기본을 재생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절약 사회 실현에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14대의 원자로를 증설해 원자력을 총발전량의 50%까지 높이겠다며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정책의 중심으로 설정해 왔다. 앞으로 일본에서 원자로를 더 증설하거나 재가동시키려면 시민들과 오랜 줄다리기를 해야할 것 같다.
이러한 탈원전 동향과 더불어 자연에너지 보급에 힘을 기울여 ‘그린도시’ 실현에 앞장 서온 지방자치단체들의 혁신적인 사례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지자체의 규모에 따라 그 실현 방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자연 에너지를 통해 지역의 에너지 수요를 100% 충족시키며 자급자족하는 기초자치단체가 일본 전국에 이미 57곳이나 된다. 그 중 10년 전부터 ‘에코타운’을 선언하고 자연에너지로 180%의 전력 자급율을 기록해 일본 신에너지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는 이와테현(岩手縣)현 쿠즈마키정(葛?町)의 사례를 살펴보자.
산ㆍ태양ㆍ바람이 최고의 자원
이와테현 북부, 현청 소재지 모리오카(盛岡)에서도 70km 이상 떨어져 있는 쿠즈마키정. 해발 1000m 정도의 산지로 둘러쌓여 있고, 마을 면적의 97%가 해발 4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86%가 산림이다. 인구는 약 7600명, 주민수보다 키우고 있는는 소의 수가 더 많은 곳이기도 하다. 특산품인 머루를 이용한 와인 재배와 낙농업이 발달해 일찍부터 ‘와인과 우유의 마을’이라고 불려왔다.
그런데 이 작은 산간 마을이 자연에너지 정책을 바탕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해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사업이 와인, 우유와 더불어 지역의 대표적인 산업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자연 에너지의 마을’ 혹은 ‘풍차의 마을’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쿠즈마키에는 비옥한 땅도, 온천도, 이렇다할 관광지도 없다. 보통 4,5월까지 눈으로 덮여있다. 대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과 태양과 바람이란 풍요로운 자연이 쿠즈마키를 살리는 자원이 되고 있다.
쿠즈마키의 자연에너지 이용은 풍력발전에서 시작됐다. 1999년, 소데야마 고원(袖山高原) 해발 1000m의 산악고지에서도 풍력발전이 가능한지 실험하기 위해 풍차 세 개를 세웠다. 세계 최초로 산간 고냉지에 ‘소데야마 고원 풍력발전소’가 건설되어 가동률과 경제적 채산성을 입증했다. 출력은 1대당 400kW, 연간 200만kW의 전기를 생산하는데, 이는 일반가정 600세대분의 전력 소요량으로 쿠즈마키 변전소를 통해 관내 지역에 공급되고 있다. 총 건설비는 3억 4400만 엔으로 NEDO(신에너지 및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의 보조금으로 건설됐다.
[##_1C|1190123821.jpg|width=”304″ height=”22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소데야마 풍력발전소_##]소데야마 풍력발전소가 성공을 거두자 쿠즈마키는 2003년 남부에 있는 카미소데가와 고원(上外川高原)에 대당 출력이 1750kW에 이르는 세계 최대 출력의 풍차 12개를 건설했다. 연간 총발전량이 마을 전체 연간 소비 전력의 1.8배, 관내 일반 가정 소비전력의 약 5배에 이른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모리오카시 타마야 변전소를 통해 동북전력에 판매하고 있다.
12개의 대형풍차가 주변의 목장과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카미소데가와 풍력발전소는 강한 바람을 통해 사계절 내내 안정적인 풍력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입지 조건이 장점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생 모델인 ‘윈도우팜’을 운영해 지역의 관광 거점이 되고 있다. 전원개발공사가 100% 출자해 총 건설비 47억 엔을 부담했고, 지역의 제3섹터 단체인 (주)그린파워쿠즈마키가 경영을 맡고 있다.
목장도 학교도 발전소
쿠즈마키 서남부에는 일본농업상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쿠즈마키 목장이 있다. 넓은 관내에 숙박시설, 레스토랑, 각종 가공 공장, 캠프장을 갖춘 목장이다. 이곳 역시 제3섹터 단체인 (사)쿠즈마키정 축산개발공사가 운영한다. 이 목장은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해서 발전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 플랜트 2동을 갖추고 있다. 관내 5개 목장에서 회수되는 축산 분뇨 13톤과 음식물쓰레기 1톤을 원료로 메탄가스를 발효시켜 전기와 열을 얻는 시스템이다.
[##_1C|1188784035.jpg|width=”250″ height=”18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쿠즈마키 목장의 바이오가스 플랜트_##]발전된 37kW의 전기와 열에너지는 목장 내에서 이용하고, 남는 액체비료는 농지로 환원한다. 대기 중으로 환경 오염 가스를 방출하지 않고 유기물을 분해할 수 있으며, 미네랄을 그대로 함유한 양질의 액체비료를 얻을 수 있다. 발전기와 보일러로 전기와 열을 회수한 뒤 시설 내에서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어 1석 3조의 효과를 내는 셈이다. 현재 일정 규모의 축산 농가에는 가축 배설물 처리법이 의무화되고 있어, 쿠즈마키 목장의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일본 전역의 농가로 확산될 전망이다. 총 건설비는 약 2억2000만 엔, 50%는 국가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태양 또한 쿠즈마키의 소중한 에너지 자원이다. 쿠즈마키 중학교의 태양광 발전소는 2000년 3월 학교를 전면 개축할 때 운동장 남단에 설립했다. 태양전지줄 420매를 설치했고, 파넬 총면적 413㎡, 발전출력 50kW 로 이와테현 내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교내에서 소비되는 전력을 모두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이 가능하다. 평균적으로는 교내 사용 전기량의 25%를 이 시설에서 충당하고 있다. 교내에는 발전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을 설치해 학생들의 환경 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총 건설비는 4500만 엔으로 ‘에코스쿨’ 지정을 받아 NEDO에서 건설비의 50%를 보조받았다.
[##_1C|1308377832.jpg|width=”300″ height=”22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쿠즈마키 중학교의 태양광발전소_##]고립된 산촌에 연 50만 명 방문
쿠즈마키가 자연에너지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환경보호조례를 책정하면서부터다. 1999년 ‘쿠즈마키 신에너지 선언’을 발표하고 소데야마 고원 풍력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자연에너지 사업으로 마을이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많았지만, 10여 년에 걸친 자연에너지 사업은 쿠즈마키를 산간 고지의 고립된 산촌에서 연간 50만 명이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로 바꿔 놓았다. 자연에너지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1999년의 방문자가 약 15만 명 정도였으니 그 증가 추세가 놀랍기만 하다.
자연에너지가 가져온 경제적 효과는 2004년 (재)사회경제생산성본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억 엔에 달한다. 어떻게 이러한 경제적 효과 창출이 가능했을까. 쿠즈마키는 제3섹터가 매우 발달한 곳으로 풍력 발전소와 쿠즈마키 목장 모두 제3섹터 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들이 쿠즈마키의 신에너지 정책에 입각해 흑자 경영을 달성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8월 ‘재생가능에너지 특별조치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자연에너지 사업의 흑자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또한 자연에너지 관련 부가 산업도 발달하기 시작해 지붕 수리점이 태양광발전 대리점으로, 농기구점이 솔라 대리점으로, 수도공 사업자가 히트펌프(Heat Pump) 설치 대리점으로 바뀌는 등 지역의 산업 양태도 달라지고 있다.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자연에너지 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 중 가장 큰 비중이 자연에너지 사업 관련 연수에서 나온다. 연간 50만 명의 쿠즈마키 방문객 중 30만 명이 에너지 산업 관계자로 추정된다. 정청(町?) 농림환경에너지과에 따르면, 2008년 연간 약 300회, 2009년 약 200회, 2010년 약 120회의 연수단이 쿠즈마키를 방문했다. 이는 숙박업과 요식업 등 지역의 관광산업을 크게 발달시켰다. 일반 관광객이든, 연수단이든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목장에서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들며 쇠고기로 바베큐를 즐긴 뒤 배가 부르면 산보삼아 풍차를 보러 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와인과 치즈를 사들고 간다.
이와 같은 지역 경제의 활성화는 곧 귀향과 귀촌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여느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쿠즈마키 역시 노령화와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어 2009년부터 ‘U턴ㆍI턴’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토지 제공자 등록 제도’와 ‘정주 장려금’ 지급이 주요 시책이다. 2010년 5월까지 31세대가 현외로부터 이주해 왔는데, 그 중 29세대가 성장과정에서 인연이 없었던 쿠즈마키를 선택해 귀촌한 ‘I턴’ 사례에 해당하며 젊은 층의 귀촌도 많다.
[##_1C|1407399288.jpg|width=”338″ height=”30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쿠즈마키의 에너지 자급 구상도_##]현재 쿠즈마키는 자연에너지 정책을 더욱 확대해 새로이 ‘에코타운’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총 3년에 걸쳐 청사 부근에 태양광발전과 축전지, 목질 바이오매스, 소규모 수력으로 구성되는 ‘에너지 센터’를 건립해 재해 발생시 청사, 쿠즈마키 병원, 학교 등 공공시설에 스스로 열과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정전 시에도 2~3일은 자급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센터에는 태양광 파넬을 설치해 시간 당 약 150KW를 발전함으로써 평상시 청사에 필요한 전력을 100% 충당할 방침이다.
동시에 관내 25개의 커뮤니티센터와 피난소에도 정전 시 전력확보를 위해 태양광 파넬과 축전지를 설치한다. 평상시에는 전력을 팔아 각 지역자치 조직의 활동자금으로 사용한다. 조직별로 연간 20만~30만 엔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치 비용은 국고 보조금을 신청해 조달할 계획이다. 시내 가정의 음식물 쓰레기중 약 60%를 바이오가스 플랜트에서 처리해 전기자동차용 전력으로 사용하는 구상도 세우고 있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전기도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글_안신숙 일본희망제작소 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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