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30)
커피 한잔 값으로 풍차를 만든 사람들
‘시민들의 쌈짓돈을 모아 지역에서 그린 전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시민 스스로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자!’ 지금부터 13년 전 자금도 없이, 지식도 없이, 기술도 없이 맨손으로 홋카이도 오호츠크해 연안의 하마돈베츠정에 시민 풍차 1호를 건설해 이 꿈을 실현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NPO법인 홋카이도 그린펀드(이하 그린펀드)의 스즈키 토오루 (鈴木亨) 대표이다.
시민 풍차 1호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시민 펀드로 세운 풍력 발전소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민 풍차는 벌써 16대(총발전용량 24,990kW)가 세워져 연간 6000만kW 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 가정 1만6천 세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며, 인구 3~4만 명 마을의 전력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발전량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에너지 지산지소’ 운동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스즈키 토오루 대표를 만나 그가 꿈꾸는 ‘시민의 주체성이 확립된 에너지 생산과 이용’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One Coin으로 시작한 시민 풍차 만들기
그린펀드는 1999년 ‘커피 한잔 값의 기부로 친환경 미래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라는 카피로 활동을 시작했다. 회원들이 매달 납부하는 전기요금에 5%의 그린펀드(자연에너지 기금) 기금을 부가하여, 그것을 적립해 ‘시민 공동 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기금을 마련했다. 그것이 ‘그런전기 요금 제도’이다
즉 전력회사에서 회원들의 전력 사용 데이터를 넘겨 받아, 거기에 5%를 추가해 전기 요금을 청구하여 받는다. 5%의 추가분은 기금으로 적립하고 이를 제외한 전기요금을 전력회사에 지불하는 제도다. 1만 엔의 전기 요금을 내는 경우 500엔 원코인을 자연에너지 기금으로 기부하는 셈이다. 스즈키 대표는 그린전기 요금 제도와 NPO홋카이도 그린펀드가 탄생된 과정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NPO법인 홋카이도 그린펀드의 스즈키 토오루 대표
Q. 생협에서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나는 원래 ‘생활 클럽 생협 협동조합’에서 배송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생활 클럽 생협은 안전한 먹거리와 생활 잡화를 생산하고 있는 생산자를 찾아 조합원들이 상품을 공동구매하는 소비자 협동조합 조직이다. 그런데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생산자가 고생해 생산한 완전무농약 녹차에서 274베클의 세슘이 검출됐다. 물론 국가 기준인 356베클에는 미치지 않은 양이었지만 생산자는 전량을 소각 처분했다. 조합의 생산자들과 회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오염된 찻잎을 병에 담아 다니며 지역별 조직별로 원전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먹거리뿐만 아니라 에너지 분야에서도 안전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Q. 자연에너지 발전 사업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체르노빌 사고 후 홋카이도 전역에서 토마리 원전 가동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생활 클럽 생협도 전 조직이 운동에 참가했다. 생활클럽 내에서 ‘탈원전부회’의 사무국 담당자로 임명되면서, 열혈 주부 회원들과 함께 집회, 서명운동, 원전 연구회 등으로 하루 일과를 보냈다. 그러나 100만 명(홋카이도 유권자 1/4에 해당) 서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의회에서 표결로 도민 투표는 무효화되었다.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즉 생협이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구조를 개척해 온 것처럼, 에너지도 우리가 원하는 안전한 에너지를 생산해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 권의 책이 희망을 주었다. 그 책 속에는 주민투표로 원전 가동을 멈추고, 기부금으로 주택 지붕에 판넬을 설치해 솔라 파워로 전력 공사를 운영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주민들의 활동이 소개돼 있었다. 생협식의 그린전기 사업에 대한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Q. 그린전기 요금 제도와 홋카이도 그린펀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A. 조합원들과 함께 연구를 거듭한 결과 생활 클럽 생협에 ‘그린전기 요금 제도’를 제안했고 이사회는 이를 수락했다. 첫째 전기도 상품임을 의식할 것, 둘째 그린전기 요금이 5% 부가되는 만큼 절전에 힘쓸 것, 셋째 3.5%의 기금으로 자연에너지를 보급할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린전기 요금 제도와 자연에너지 보급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생협의 ‘탈원전부회’는 1999년 ‘NPO법인 홋카이도 그린펀드’로 독립해 자연에너지 보급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연구회를 시작한지 3년 만의 성과였다.
은행의 거부로 탄생한 시민 펀드
독립한 그린펀드는 활동을 시작한지 불과 2년 만에 홋카이도 하마돈베츠정(浜頓別町)에 시민 풍차 1호기를 세웠다. 하마돈베츠정은 홋카이도 최북단 오호츠크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4,000명의 마을로, 람사르 조약의 보호구로 지정된 큿챠로 호수에는 겨울이 되면 수만 마리의 백조와 오리 등이 찾아와 절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공모해 ‘하마카제(浜風)’라는 이름을 선물 받은 1호기는 1,000kW를 생산하는 대형 풍차로 13년간 변함없이 년간 약 250만~300만 kW의 그린전기를 생산해 지역 주민들에게 공급해 주고 있다. 1호기를 세우기까지의 역동적인 과정을 물어봤다.
Q. 왜 풍력발전을 선택했나?
A. 당시 솔라발전은 설치비가 너무 비쌌고, 잉여 전력 판매만 가능했다. 그래서 풍력발전에서 사업의 가능성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업용 대형 풍차는 1대당 약 2억 엔(약20억 원)이나 했다. 회원들의 5% 그린요금으로 적립한 기금만으로는 도저히 충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2년간 적립한 기금은 약 1,000만 엔에 불과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융자를 받으려고 닥치는 대로 은행을 돌았다. 지금은 상황이 좋아져서 지역 금융기관들이 자연에너지 시민 공동 발전소에 융자를 잘 해주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NPO가 하는 발전 사업에 융자를 해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Q. 어떻게 1000만 엔이 2억 엔이 될 수 있었나? 자금을 20배로 불린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A.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은행들이 전혀 상대를 해주지 않는 가운데, 단 한 곳의 담당자가 30% 정도의 자기 자금을 마련하면 융자를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6,000만 엔이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먼저 이사들이 50만 엔씩 출자하고 지인들에게 출자를 부탁해 3,000만 엔의 자금이 모였다. 시민들의 출자금 모집에 감동받았는지 지역 신문이 시민 풍차 기사를 크게 실어줬다. 여기저기에서 출자 문의가 쇄도했다. 여기서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시민들에게 널리 출자금을 모으려면 금융과 법률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해진 것이다. 금융 전문가와 변호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증권회사도 아니고 은행도 아닌 NPO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시민펀드라는 전혀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식으로 시민펀드를 만들고 출자자를 모은 결과 2001년 봄에는 3,000만 엔이 1억 엔으로, 다시 6개월 후에는 1억 4천만 엔으로 늘어났다. 결국 2억 엔의 필요 자금 중 80%를 시민 출자로, 20%만 융자로 충당하는 쾌거를 이룬 결과 시민 풍차 1호기 하마카제는 2001년 9월에 무사히 운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 시민 풍차에 출자한 시민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Q.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하마돈베츠에 시민 풍차 1호기가 들어선 이유는?
A. 생활 클럽 생협의 반원전 운동은 호로노베정(幌延町) 문제에서 시작됐다. 1885년 도정부와 호로노베정, 그리고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는 낙농의 고장 호르노베정에 고농도의 핵페기물 심층 매장 처리소을 건설하려고 했다. 곡창지대 홋카이도에 핵페기물 저장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안전한 먹거리 운동을 벌이고 있는 생협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마돈베츠정은 바로 호로노베정에 이웃해 있어 처분장 건설 반대 운동을 함께 했다. 주민들이 일치 단결해 반대 운동에 앞장 서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반원전 운동의 상징으로 시민 풍차 건설에도 적극적이었다. 정의회 의원을 비롯해 60여 명이 ‘자연에너지를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고 출자에도 참가했다. 철새의 도래지이기 때문에 풍차 날개에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그 행로를 피해서, 그리고 주민들에게 소음 피해가 없도록 위치 선정에 신중을 기했다. 하마카제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은 아직도 남다르다. 어쩌다 풍차가 정지해 있으면 풍차가 왜 안 돌아가냐며 걱정하면서 전화를 해주기도 한다.
▲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민 풍차 1호기가 움직이고 있다
자연에너지 100% 시대, 꿈이 아니다
2001년9월 시민 풍차 1호 하마카제 건설 이후 그린펀드의 시민 풍차는 착실하게 증가해 현재 16대가 홋카이도, 아키타, 아오모리 등에 세워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년째 되는 2012년 3월 아키타현 니카호시(秋田?にかほ市)에 세워진 2대의 시민 풍차는 PPS(특정규모전기사업자)를 통해 출자자인 생활 클럽 생협과 (주)와타미사에서 직접 사용한다는 획기적인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이것이 이뤄지면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그린전기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에서의 전력 자유화가 명실공히 이뤄지는 셈이다. 또, 지금 각지의 시민그룹들은 그런펀드처럼 자연에너지 생산 주체로 직접 나서 지역에서부터 에너지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FIT(재생 가능 에너지 고정 가격 매수 제도)실시가 큰 촉발제가 된 것이다. 스즈키 대표는 13년 외길을 걸어온 시민 풍차의 선구자로서 이들 지역 운동에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전국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 그리하여 올해 3월에는 전국 각지의 13개의 조직이 모여 ‘전국 내 고장 에너지 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주제가 여기까지 이르자 스즈키 대표의 이야기는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Q. 13년간 그린펀드가 이룬 성과를 자랑해 주시죠.
A. 지금 16대의 시민 풍차가 연간 약 6,000만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약 4,000여 명의 시민들이 총24억 엔(약240억 원)이라는 거금을 출자해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런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풍차 건설을 통해 사람과 지역을 움직인 것이다. 즉 시민 풍차를 통해 지역의 자립과 활성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전국의 지역 운동을 지원하느라 바쁜데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면?
A. 아마추어였던 사람들이 전력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작은 힘이 모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만든 것이 ‘전국 내고장 에너지 협회’다. 우리는 이 모임을 자연 에너지에 의한 또 하나의 전기 사업 연합체라고 부른다. 태양과 바람, 바다와 강… 각 지역에 있는 자연에너지를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 활용하면 지역 비지니스의 하나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이제껏 국가 에너지 체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지역의 모습을 바꿔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지역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자연에너지 100%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60여 명 회원들의 커피 한잔 값, 또는 One Coin 기금으로 시작해 15년 만에 인구 3~4만 명의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전력을 생산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린펀드의 성장을 생각해 보면 자연에너지 100%의 미래가 결코 꿈같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