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발전소의 소기업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는 ‘블루칼라’의 자존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조차 영국의 광부 출신 노부부가 고등학교 교사가 된 자신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떻게 노동자 계급의 자식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느냐, 아들이 우리를 배반했다”며 울먹거리는 인터뷰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영국 사회에 대해 이해가 깊은 어떤 이는 그러한 현상을 ‘화이트칼라’에 대한 ‘블루칼라’의 자존심이라고 해석했다.

제조업 생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자존심은 싹조차 피어난 적 없는 한국 사회에서 ‘연구소’ 따위의 고상한 이름들을 마다하고 철공소나 대장간을 연상하는 ‘제작소’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인턴으로 희망제작소의 문을 두드릴 때 가졌던 첫 번째 궁금증은 바로 그것이었다.

희망제작소 안에 있는 소기업발전소. ‘발전소’라 하면 수백 개 배전판의 스위치와 윙윙거리는 터빈의 소음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에게는 그 기묘한 단어의 조합이 더욱 궁금증을 키울 것이다. 소기업발전소 이진영 위촉연구원(여기까지 찾아와서야 비로소 ‘연구원’이라는 다소 품격 있는 단어와 접할 수 있다)을 그의 아담한 발전소에서 무릎을 마주 대고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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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궁금증을 잠시 접고 ‘사람’에 대해 먼저 물었다.

하규운(이하 하) :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이진영(이하 이) : 소기업발전소 위촉연구원 이진영입니다. 소기업발전소에서 사회혁신기업가아카데미 운영 전반과 각종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SDS 1기였고요. SDS는 소셜 디자이너 스쿨(Social Designer School)의 약자에요.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하 : 학부에서도 사회학을 전공하신 걸 알고 있습니다. 왜 사회학과를 선택하셨나요?
이 : 고등학교 때에는 심리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사회과학부로 입학해서 사회복지ㆍ사회학ㆍ심리학 개론을 다 들어봤는데, 심리학개론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고, 좀 과학적(?)이었어요. 오히려 사회학 개론에 더 끌렸죠. 선배들의 영향도 컸어요. ‘사회현상극’이라는 학회에 들어갔는데, 선배들이 온통 말도 잘하고 멋있어 보였어요. 그 선배들이 전부 사회학과라는 걸 알았고, 자연스럽게 ‘이게 내 길인가보다’ 생각이 들었죠. 미달되는 과에 당당히 지원해서 들어갔어요. 전 사회학과에 보배 같은 존재였죠(웃음).

하 : 사회현상극은 어떤 학회였나요? 대학 생활 전반이 궁금해요.
이 : 연극학회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런저런 사회 문제들에 대해 팀원들끼리 연구해서 세미나 하고, 대본 쓰고, 연기하는 활동을 합니다. 지금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니 8할은 사회현상극 활동이었구나 싶네요. 아,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에도 있었어요. 연장투표해서 겨우 투표율 50%를 넘기고, 어렵게 선거를 치렀는데 무산된 적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저희 쪽 후보가 맘에 안 들었던 거죠. 학칙에 정당 활동을 하는 후보는 회장에 당선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거든요. 선관위장이 학교에 협박당하고 포섭됐죠. 선거가 파행되고 말았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 휴학했어요. 복학해서 한 학기를 마치고 대학원에 갔죠.

인턴으로 시작된? 인연

하 : 학생회 활동을 부모님께서 반대하시지는 않았나요? 부모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네요.
이 : 부모님은 전혀 엄하지 않으셨어요. 굉장히 자유롭게 컸어요. 항상 ‘욕심 부리지 마라, 순리라는 게 있다’고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옛날부터 돈 많이 벌고, 성공하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학이라는 전공때문도 있지만, 부모님의 영향도 컸죠. NGO 활동도 부모님은 전혀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잘한다, 열심히 하라고 북돋아주셨어요. 제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 : 희망제작소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 : 제가 대학 다니면서 처음 냈던 리포트가 ‘시민운동’ 관련 내용이었는데, 도서관에 가서 ‘시민운동’으로 검색하면 항상 박원순 변호사의 이름이 나왔어요. 궁금했죠. 여자일까 남자일까. 궁금해 하고 있던 중에 대학원에 갔는데, 학부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그런지 공부가 너무 어려운거에요. 한 학기 질리도록 공부하고, 좀 쉬려고 휴학을 했어요. 보습학원에서 6개월 동안 영어를 가르쳤는데, 학원 시스템에 질려버렸죠. 그만두고 시민단체 구인게시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희망제작소 인턴 모집 공고를 발견한 거예요. 관심 있었던 사회창안센터에 바로 지원을 했죠. 2008년 3월에 봄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하 : 인턴 후에는 어떻게 소기업발전소에 합류하시게 되었나요?
이 : SDS 1기 과정을 수료한 뒤에도 함께 수업을 들었던 분들과 계속 모였어요.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고 편해서 계속 모임에 나갔던 거구요. 그러던 중 기회가 왔죠. 박원순 상임이사가 SDS 동문들이 주축이 되어 소기업발전소 부서 사업을 맡아 줄 것을 제안했는데, 저도 마침 그때 논문 주제로 사회적 기업 분야를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소기업발전소에 관심이 있던 차에 제안을 해주셔서 바로 오케이 했어요. 관심이 없었다면 그냥 마음으로만 지지하겠다고 했을거에요.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소기업발전소는 희망제작소 재정 상황 악화 등 여러 내ㆍ 외부적인 문제 때문에 2009년 사업이 중단될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SDS 동문회 등 전문성을 지닌 시민들의 참여로 집행위원회가 꾸려져 상근 연구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현재까지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_1C|1017000084.jpg|width=”500″ height=”22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소기업발전소 집행위원회 (사진:남정탁) _##]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대목에 이르렀다. 들은 풍월이 있어 소기업발전소에서 하는 일 중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짧은 물음에 대한 긴 설명이 이어졌다.

하 : 사회적 기업, 소기업은 어떤 개념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하는 건가요?
이 : 소기업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하 : 단순히 생각하면, 대기업과 반대되는 작은 기업이요.

이 : 기업을 대기업?? 중소기업?? 소기업으로 나누는 건 규모에 따른 분류일 뿐이고, 규모가 아닌 가치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기업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사회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이다, 그럼 사회적 기업이겠죠. 다만, 소기업발전소가 꼭 사회적 기업(정부가 규정한)만을 지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기업을 지원하고 있어요. 지금 ‘사회혁신기업가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는데 ‘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라고 하지 않았잖아요. 사회적 기업을 규정하는 폭이 더 넓어져야 해요. 정부가 규정해놓은 틀에 맞지 않으면 아니라고 하는 건 옳지 않죠. 우리가 생각했을 때, 여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한다(유기농 생산, 사회적 환원 등)고 판단되면 지원을 하죠. 제품 디자인을 해준다던지, 홍보를 해준다던지, 다른 유통 체계를 만든다던지…….

“지금은 많이 어지럽다”

하 : 소기업발전소가 지금의 구조를 갖추기까지 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이 : 지금도 여전히 진통은 있지만, 소기업발전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무조건 빨리 정상화하는 것만이 목표는 아닙니다. 희망제작소가 품고 있는 가치를 버리지 않으면서, 이전의 소기업발전소가 갖고 있던 것들을 전부 되살리는 방식이 되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예전 모습을 찾을 거라고 믿어요.

하 😕 소기업발전소의 앞날이 여전히 희망적인가요?
이 : 그럼요. 희망적이죠.(웃음) 사업 면에서는 굉장히 희망적이에요. 비정기적으로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는 게 이상하게 보이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업무 패턴이나 생활과 조금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앞으로 희망제작소에서 시민참여형 혹은 네트워크 기반 사업들을 해나가려면 반드시 이러한 형태(상근자가 적으면서, 온라인 활동에 충실한)에 익숙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하 : 조금 진부한 질문인데요,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힘들 때 나를 다잡은 단어나 문장 같은 거요.
이 :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비행기가 서울에서 뉴욕까지 가는데 99%는 정상 항로에서 이탈하며 간대요. 쭉 가는 게 아니라 계속 방향을 수정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는 거죠. 그 말이 마음에 남았어요. 꿈을 크게 꾸고, 멀리 보고, 계속 도전하고.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어도 언젠간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믿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하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너무 모범답안만 이야기하신 것 같은데, ‘안’ 모범답안도 이야기 해주세요.
이 : 사실 지금 소기업발전소가 많이 힘든 단계에요. 어지러운 상태죠. 하지만 희망은 원래 그런 엉망진창 속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뭔가 잡음도 많고 시행착오도 있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하는 거죠. 그냥 쭉 가면 재미없잖아요. 진통도 좀 있고 불협화음도 있어야 건강한 단체라고 생각해요. 어느 부서든 다 마찬가지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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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끝낸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이진영 씨의 마지막 말이 뒤통수를 잡아끌었다.

“정말 그거 하나잖아요. 희망을 제작하는 것.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여기서 ‘다른 것’이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모든 직장인들이 외면할 수 없는 노동조건, 임금이나 뭐 그런 현실적인 것들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말이 마치 ‘내가 이곳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인들 못하랴’라는 비장한 각오처럼 들려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희망’이란 그렇게 ‘내 모든 것을 걸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글ㆍ사진_ 콘텐츠센터 하규운 인턴 연구원

Comments

“기묘한 발전소의 소기업 이야기”에 대한 14개의 응답

  1. Dreamer 아바타
    Dreamer

    무엇이든, 시작하는 단계는 다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래도 힘차 보이는 얼굴을 뵈니, 제가 다 힘이 납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

  2. 지리산 다송 아바타
    지리산 다송

    어려운 것을 매일 하디 보면 군살이 생겨 어렵지 않게 됩니다.

    불가능이란 자기가 만드는 것 아닌가요. 보기 좋습니더.

    고속버스속인데요. 서울이 가까워옵니다.내일 여성플라자에서 봐요~

  3. 싱클레어 아바타
    싱클레어

    인턴분도 그렇고, 연구원 분도 그렇고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인 것 같아서 흐뭇하네요. 공부도, 일도 치열하게 하셔서 꼭 뜻하는 바 이루시길!

  4. 이진영씨!
    오랫만입니다.멘토링하는 최해식입니다.오랫만 들어와보니 진영씨 인터뷰 글 있어 몇자 적어 봅니다.지난해 멘토후 아직 모임없어 얼굴 본지 오래지만 그래도 낮 익은 사진보니 반갑네요.젋은시절부터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회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부럽고 한편 부끄럽기도해요.저는 요즈음 대학원 수업준비 열심히하고있고 남은 인생 사회적으로 뭔가 해보려고 노력중입니다.또 기회되면 보도록 해요.

  5. 소리 아바타
    소리

    이진영! 화이팅!

  6. 가람 아바타
    가람

    기묘한 발전소의 진영씨 눈망울이 또롱또롱..멀리서나마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7. 이주영 아바타
    이주영

    하하 진영쌤 사진 정말 잘나왔는데요? ㅎㅎㅎ
    아유 같은 석사생인데, 저보다는 항상 앞서있는거 같아서
    부끄럽네요;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확 나오게 됩니다^^

    컥,
    근데 우리 본지 좀 됐죠? ㅋㅋㅋ

  8. 정준원 아바타
    정준원

    진영샘 확이팅!

  9. 경화씨 아바타
    경화씨

    보배뇽 화이팅!! ㅎㅎㅎ

  10. 이진영 아바타
    이진영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시니, 감사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보여주신 관심과 응원, 채찍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쁘게 사진 찍어주고 인터뷰 내용도 잘 뽑아준 인턴 규운씨도 감사!!

  11. 박주현 아바타
    박주현

    잘 보고 갑니다.

    진영씨 화이팅이예요! ^^

  12. 한동열 아바타
    한동열

    진영쌤! 멋져요~^^

  13. 짜투리 아바타
    짜투리

    하이루~!! 올만에 멋진 기사로 만나네요~! (내가 누군지 알라나? 호호)
    언제나 항상 뚝심있게 일하는 진영씨! 신뢰로운 진영씨! 끝까지 화이팅이에요~! 소기업발전소에 진영씨가 합류했단 야그를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 새해 복 마니마니 지으시고~! 제작소도 힘내세요~!

  14. 이지혜 아바타
    이지혜

    언니~너무 멋있어여
    바쁘시겠지만 가끔 복도에서 마주쳤던 그 때처럼
    또 학교에서 만날 수 있겠죠 ^^?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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