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버려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것

이용규의 Dirty is beautiful

지난 4월 9일 영월군 상동읍에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잊힌 지역이지만 한때 2만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던 규모가 꽤 큰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인구가 1,300여 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부분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동읍은 대한민국에서 읍 단위로는 공무원 숫자가 13명으로 전국 최하위인 곳이기도 합니다. 북제주 애월읍의 공무원 숫자가 52명이니 1/4에 불과한 것이지요. 날씨 또한 잔뜩 찌푸려서 그런지 상동읍은 더욱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제가 이곳을 소개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약 18년 전 상동읍을 찾았던 기억이 나서입니다. 선배가 광산지역을 대상으로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를 돕고자 함께 이 지역을 방문했었지요. 90년대 초 이곳 상동은 이미 ‘대한중석광산’이 문을 닫은 이후라 상당수 종업원이 지역을 떠나 민심이 어수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곳곳에 문을 닫은 식당들, 숙박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던 여관과 여인숙. 또한 세월의 흔적을 한 몸으로 표현해주듯 진한 화장과 붉은 립스틱 그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우리의 질문을 생게망게 되받던 다방 마담(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더군요), 갱내폐수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이 녹물로 가득했던 하천 등 그야말로 유령도시(Ghost city)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_1C|1136868564.jpg|width=”468″ height=”314″ alt=”?”|하천을 따라 늘어선 가옥들_##]

지역파산을 경험하다


이것은 비단 상동읍뿐만 아니라 강원남부 지역 대부분의 시군이 90년대 이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강원남부지역(영월, 정선, 태백, 삼척)은 6-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던 발전소 구실을 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이곳을 찾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줄잡아 4시간 이상은 가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6-70년대 이곳은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는 못나간다는 인생의 막장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척박한 오지였으나 그래도 월급날만 되면 곳곳의 술집들이 흥청망청했던 곳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월급날은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 “중석광산 직원이면 셋째 첩으로라도 딸을 준다”는 말까지 있었으니 그 기세가 실로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52년 대한중석광업으로 출발한 상동읍 구래리 중석광산은 60년대 제련소를 준공하면서 채굴과 제련을 동시에 하는 그야말로 당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오늘날 포스코와 비교한다면 어불성설일까요? 이러한 중석광산이 중국의 값싼 원료가 수입되면서 채굴을 중단하고 제련공장만 가동하다가 92년 이마저도 중단하면서 그 결과 94년 완전 폐광이 되었습니다.

단일 기업에 의한 단일도시(single city by single enterprise)의 종말이라고나 할까요. 특정 기업에만 의존하던 지역이 결과적으로 그 기업이 문을 닫으면 동시에 지역이 파산을 맞게 된다는 혹독한 교훈을 얻게 됐습니다. 폐광지역인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이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_1C|1022207390.jpg|width=”460″ height=”288″ alt=”?”|사람들이 모두 떠나 빈집뿐인 광부사택_##]

이러한 상동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지역의 상징인 꼴두바위 앞에 서게 됐습니다. 세월(歲月)이란 말은 인간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모두 변해도 자연이 만든 것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한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저 꼴두바위가 없었다면 내 머릿속에 상동의 기억은 영영 지워질 것만 같았습니다.

[##_1C|1284235521.jpg|width=”494″ height=”331″ alt=”?”|꼴두바위는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_##]
버려지는 산업유산들


구래리로 가는 좁은 길을 따라 얼마쯤 가자 이미 철거된 중석 저장창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중석 다시 말해서 텅스텐은 제련하고 나면 모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가루의 무게가 1리터 정도의 부피만 돼도 장정 한 사람이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맞은편 제련공장을 보니 이미 모든 시설이 철거되고 그 터만 휑하니 남아 있었습니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시설물들을 이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해버리다니…

점점 더 발걸음을 계곡쪽으로 재촉했습니다. 이미 사택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단지 당시 외지손님이 머물던 여관과 구판장이 남아있었고 관리직 사택만이 일부 남아 있었습니다. 이어서 중석을 채굴하던 갱도 입구로 차를 몰고 올라갔습니다. 갱구주변의 압축기 시설(맑은 공기를 갱내로 집어넣고 더러운 공기는 밖으로 강제로 환기하는 시설)은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_1C|1369389861.jpg|width=”494″ height=”331″ alt=”?”|시설물이 모두 뜯겨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이보다 멋진 오페라 극장이 있겠는가_##]


다시 산을 내려와 제련공장 터에 홀로 서있었습니다. 또다시 하나밖에 없는 산업유산(a Industrial Heritage)이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구나. 하기야 이것이 비단 상동 중석광산뿐이겠는가. 우리나라 곳곳에 이미 수많은 산업유산들이 오늘도 시나브로 철거되고 있습니다. 철거도 재활용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이 불가능하게 철저히 부서지고 녹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건물이 부서지는 것이기 보다는 지역의 과거를, 우리의 과거를 없애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1C|1231866269.jpg|width=”522″ height=”307″ alt=”?”|옛날 귀빈들이 묵었던 숙소_##]

산업유산을 활용하는 나라들


굳이 서양의 예를 들자면 독일은 과거 철강단지였던 졸페라인(Zollferein)을 산업유산으로 재활용하여 오늘날 지역재생의 본보기로 활용하고 있고 영국의 빔미쉬(Beamish)는 산업유산을 박물관(Beamish Open Air Museum)으로 만들어 교육과 관광의 장으로 훌륭하게 탈바꿈시켰습니다.

EU의 경우 유럽의 29개 나라의 산업유산을 샅샅이 조사하여 결과적으로 산업유산 전체를 잇는 유럽의 산업유산 루트(European Route of Industrial Heritage)를 만들었습니다. 웨일즈의 블래나본(blaenavon)의 일명 빅핏(Big Pit)과 주변의 산업유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_1C|1076821717.jpg|width=”360″ height=”451″ alt=”?”|철을 제련하기 위한 냉각수탑, 세계문화유산, 블래나본_##]


상동중석광산은 그 자체로 세계문화유산이라 할 만합니다. 웨일즈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쓸모없는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했고 우리는 고철덩어리로 팔아버린 딱 그 정도의 차이입니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자라나는 후손에게는 선배 세대들의 역사적 경험을, 현 세대에게는 역사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그들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더럽고 오래된 것은 아름답습니다.(Dirty is Beautiful, Old is Beautiful)

글_ 이용규 (희망제작소 기획1팀장)

사북 석탄유물보존위 활동중이며 여우와 토끼 2마리를 키우고 있다. 싱글몰트위스키에 순결을 빼앗겨 헤어나지 못하고 이제는 더불어 살고 있다.
돈 한 푼 없이 농촌에서 일주일 이상 살며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가끔 공무원과 싸워서 물의를 일으키고, 또 가끔은 희망제작소에 금전적 손해를 입혀 Stone Eye라고 한다. 석탄박물관 근처에서 위스키에 대한 글도 쓰고 실제 장사도 하면서 유유자적 신나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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