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갑자기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신촌역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총총히 목적지를 향해 사라진다. 설상가상으로 세찬 바람에 현수막과 마이크 세움대마저 자꾸 쓰러진다. 하는 수 없이 청 테이프를 붙여 고정했다. 드디어 공연 시간.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우린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불만합창이 거리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책 불만합창단 본문 중)

2008년 10월 10일, ‘멋대로 불만합창단’의 첫 번째 거리공연이 있던 날의 풍경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불만’이란 단어를 부정적 의미로만 익혀온 세상 사람들은 이날 거리에 처음 울려 퍼지는 불만쟁이들의 합창을 어떻게 들었을까? 철없는 이들의 삐딱한 시선이라고 눈을 흘겼을까? 아니면 세상을 향한 진심어린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을까?

이 행사를 기획한 희망제작소 김이혜연, 곽현지 연구원은 이 불만합창을 두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쾌한 에너지’라 말한다. 그리고 그 날의 감동과 열정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그간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두 연구원을 만나 불만합창단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본다.

”사용자

하규운(이하 규운) : 희망제작소에서 언제부터 일하셨는지 궁금해요.

김이혜연(이하 혜연) : 저는 2006년 10월 사회창안센터(사회혁신센터의 전신)에 들어왔어요. 올해로 4년째네요. 대학원 졸업하고 직장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성매매여성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너랑 잘 맞는 곳이 있다”고 소개해주었어요. 마침 공채 중이어서 얼른 지원했죠.

곽현지(이하 현지) : 전 이번 달로 꼭 3년째 됩니다. 당시엔 희망제작소에 지금보다 더 다양한 주제별, 분야별 연구소들이 있었어요. 뿌리센터 내에도 다양한 연구소가 있었죠. 그 중 하나인 ‘주민참여클리닉’ 부서에 지원했어요. 사실 저는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다가 일반 기업과 학교로 자리를 옮겼었는데 이쪽 분야로 다시 돌아왔죠. 제 적성은 역시 시민단체 활동에 있었나 봐요.

규운: 불만합창단을 처음 접하셨을 땐 어떤 느낌이셨어요? 보자마자 ‘이 기획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셨나요?

혜연 : 어느 날 박원순 상임이사께서 ‘사회창안’을 주제로 국제회의를 기획해보라고 제안하셨어요.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계속 미루다가 엄청 깨졌죠. ‘사회창안’을 주제로 회의를 할 때 그저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 말고 뭔가 새로운 방식의 참여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인터넷에서 ‘불만합창단’ 동영상을 발견했어요. 영국 한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그야말로 ‘불만을 노래하고’ 있었죠. 평소 같으면 듣기도 싫었을 불평불만이 너무나 아름다운 가사로 변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의 표정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합창을 끝내고 서로 보듬어주는 모습에서는 저도 코끝이 찡해졌어요. 이거다 싶었죠. 우리의 역량으로 충분히 기획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어서 회의에 가지고 갔죠. 원래는 사회창안 국제회의의 부분행사로 기획했는데, 호응이 좋아 점점 판이 커지게 되었어요.

현지 : 저는 좀 달라요. 처음엔 회의적이었지요. 제가 하는 일이 매일 지역을 탐방하고, 주민들 만나고, 사업을 제안하는 일이다 보니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너무 잘 알았거든요. 준비된 자료도, 확보한 자금도 얼마 없었고 기대보단 걱정을 많이 했죠. 처음 받았던 느낌은 서로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규운 : 어떤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불만합창단을 함께 해보자고 다른 단체에는 어떻게 제안하셨는지요, 혹시 제안하실 때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나요?

혜연 : 글쎄요. 사실 잘 못했어요. 어떤 사업을 ‘기획’하는 것과,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참여하게 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거든요. 노하우라고 할 건 없고, 그냥 무조건 많이 알렸어요. 우선 시민단체 목록들을 쭉 훑어보면서 불만합창단에 관심을 가질만한 단체들을 추렸어요. 문화ㆍ예술과 관련된 단체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단체들, 자신들만의 이슈가 있는 단체들을 골랐죠. 메일, 공문, 포스터, 팩스를 엄청나게 보냈어요. 실무자가 직접 찾아온 열성적 단체도 있었지요. 그런데 그 팀은 실무자만 엄청난 열의를 보였을 뿐 결국 회원들이 모이지 않아 결실을 이루지는 못했어요. 불만합창단은 담당자의 열정 하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지요.

규운 : 책에도 나와 있지만, “불만합창단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불만을 노래해봐야 뭐하냐”고 자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야길 해주고 싶으세요?

”사용자

혜연 : 저는 그냥 “그럼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 익산 불만합창단 같은 경우는 불만합창을 통해 모은 불만들을 지역사회에서 하나씩 해결하기로 했다고 해요. 그렇게 하면 되는 거죠. 어느 누구도 ‘노래만 부르고 끝’이라고 정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의 방향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죠. 구성원들끼리 정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덮어놓고 노래만 불러서 뭐하냐고 묻는다면, 그럼 당신이 하실 수 있는 다른 것을 하든가, 불만합창단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뭔가 해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불만합창단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방향은 만들어가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어떤 지침이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없겠죠.

현지 : 불만합창단 자체가 아니라 이 모델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여서 하면 된다’는 그 정신을 봐야죠. 정해진 의제나 구호가 있고, 리더가 있어서 시민들이 일률적으로 따르는 시나리오는 이젠 필요 없죠. 그런 걸 원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시대가 변했기에 ‘운동’의 방법론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참여자 모두가 주체가 되어 모여서 합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거죠. 그런 와중에 불만합창단을 발견했고 이 시점에 딱 알맞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다들 쾌재를 불렀고, 많은 시민단체들도 제안을 받아들인 거구요. 불만을 노래하는 것 자체보다는 이 모델이 시민사회에 던지는 의미, 모여서 함께 힘을 합한다는 그 의미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얼리티가 필요하다

규운 : 불만합창단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시즌2로 이어지나요?

혜연 : 제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불만합창단이 곳곳에서 자발적인 시민모임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학생이면 학교에서, 직장인이면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희망제작소가 장소 제공, 연결고리 구축 정도의 역할은 계속 하겠지만, 더 이상 제작소가 관여하지 않는 자발적인 모임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여러 곳에서 공연 초청도 받고, 노래도 계속 만들어나가면 금상첨화겠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어요. 불만합창단이 끝나자 다들 자기 생활로 복귀하느라 이어지지 못했죠. 물론 이대로 마무리하기는 아쉽다는 말이 있었지만, 불만합창단이 올해까지 이어지게 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현지 : 이건 공유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저는 불만합창단 구성원들이 콘서트를 멋지게 하고,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불만합창 페스티벌은 그 자체가 종결성 있는 프로젝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2차, 3차까지 가지고 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불만합창단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열정과 동력은 언제 어디서든지 다시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불만합창단 같은 새로운 모델이 있으면 또 기획해보고 싶어요.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규운 :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혜연 : 굉장히 많죠. 그 중에 거리공연을 많이 못한 것이 제일 아쉬웠어요. 다음에 불만합창단을 또 하게 된다면 공연을 좀 더 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지난번 불만합창 페스티벌은 각자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서울에 모여서 불만합창을 부르고 다시 헤어지는 방식이었잖아요. 이제는 각각의 지역에서 한날한시에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올해 바람이긴 한데……. 누가 할지는 모르겠어요.(웃음)

현지 : 좀 더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어요. 좀 더 지역적으로, 좀 더 참여자 주체로, 좀 더 리얼리티를 살려서 해보고 싶어요. 지난 행사는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에 기획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는 이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거든요. 불만합창단은 게릴라식 거리공연이 핵심인 ‘날 것’의 프로젝트라고 봤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나가는 인위적인 요소가 끼어드는 것을 굉장히 경계했어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기획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했죠. 이 부분은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거예요.

시민운동이 뭡니까

규운 : 두 분이 속한 부서가 다른데, 각자의 부서에서 앞으로 계획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혜연 : 그간 진행해 온 사회창안센터의 의견 수렴 과정이 오히려 시민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민들은 아이디어만 올리면 그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죠. 이후의 모든 과정을 우리가 맡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외부에서는 사회창안센터가 활동을 못하고 죽어 있다는 비판도 많았죠. 하지만? 비판을 감수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우리의 역할을 더 명확히 규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과 시간을 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 그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창안센터라는 명칭도 올해 ‘사회혁신센터’로 변경했어요. ‘온갖문제총서’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에요. ‘당신들은 아이디어만 내라, 우리가 조사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도 내고, 직접 조사도 해보세요. 당신의 기획을 실현해보세요. 우린 옆에서 지원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죠.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더 많이, 더 재미있게 참여해서 사회혁신을 진정한 시민 주도의 사업으로 이끌어내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현지 : 뿌리센터는 아시다시피 지역을 연구하고 설계하고 만드는 일을 해요. 남은 과제는 불만합창단이 가지는 함의, 사회혁신의 가치와 방법론을 제가 연구하는 분야에 구체적으로 도입하는 일이겠죠. 불만합창단 같은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고 싶어요. 결국 지금은 안했단 얘기가 되네요. 이런!

인터뷰를 마치며 “시민운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당돌한 질문을 던졌지만, 김이혜연 연구원은 말을 아끼듯 “제가 뭘 아나요”라며 웃었다. 그 웃음에 담긴 의미는 무얼까? 아직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몸으로 부딪히며 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곽현지 연구원은 오히려 나에게 “막힐 땐 역질문을 하는 게 생활의 지혜다. 학생운동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어 나를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리곤 말을 잇는다.

“시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 의사를 공론화 시키는 것, 정부가 수행할 수 없는 일을 민간부문에서 실현하는 것, 시민의 요구를 어떻게 잘 구현해 낼 것인가 고민하는 것 등이겠죠. 희망제작소는 그것을 ‘연구’를 통해 구현하겠다는 싱크탱크고요.”

친절한 모범답안을 들려준 그는 이내 “그냥 직장이지, 뭐”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두 사람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누군가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받은 아이처럼 마음이 뿌듯해졌다.

‘전국에서 한날한시에 공연을 하는’ 페스티벌 – 불만합창단 시즌 2가 기다려진다.

글ㆍ사진_ 하규운 인턴연구원

불만합창단 책 소개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