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이 브랜드가 되려면…공무원 300명의 ‘빡센’ 하루

‘2023 정책디자인 아카데미’ 현장 ⓵

희망제작소가 ‘2023 정책디자인 아카데미-도시 브랜딩으로 안성의 미래를 그리다’를 벌이고 있습니다. 공무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인데 전문가 강연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문가 제언을 듣고 지역 공무원들이 정책을 발굴합니다. ‘빡센’ 아카데미입니다.

안성은 경기도와 충청북도가 만나는 경계에 있습니다. 안성에서 주문 제작한 유기가 유명했답니다. ‘안성맞춤’은 여기서 유래한 말입니다. 인구는 18만 명인데 대학이 다섯 곳이 있습니다. 지난 4월 4일 한경국립대학교 산학협력관에서 아카데미의 첫 강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모종린 교수(연세대 국제대학원)가 ‘골목상권 현상과 지역재생’, 박상희 교수(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도시브랜드’로 강연했습니다. 안성시 공무원 300명이 모였습니다.

과연 모종린 교수의 ‘골목상권’은 오후 2시 졸음의 맹공을 이겨내고 안성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모인 300명을 깨워둘 수 있을 것인가? 다음은 모종린 교수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도시 정체성 담은 골목상권이 미래…서울에서 먼 건 장점”

“안성의 특색을 살리는 콘텐츠, 누가 만들 수 있을까요? 최근 트랜드를 보면 소상공인입니다. ‘나다움’ ‘우리 동네다움’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죠. 미래 경제 주축은 크리에이터입니다. 크리에이터의 세 축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라인 셀러 그리고 로컬 크리에이터입니다.

▲ 모종린 교수

로컬 크리에이터가 뭘까요? 동네 단위 로컬 커뮤니티로 먹고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외식, 숙박, 소매 등 리테일 분야의 콘텐츠를 만드는 창조적인 소상공인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 성수동은 공간이 콘텐츠입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의 그 분위기, 경험이 콘텐츠입니다. 이 경험을 로컬 크리에이터가 만듭니다.

정부는 온라인을 강조하는데 중요한 건 ‘오프라인 플랫폼’입니다. 대기업 공장 유치해봤자 고용 많이 안 합니다. 소상공업 종사자는 700만 명이에요. 고용의 25%는 자영업, 소상공인이 하고 있습니다. 고용을 위해서라도 소상공인을 지원해야죠. 상권을 브랜드로 만들어야 해요. 소상공인 수익 절반은 ‘상권 브랜드’에서 나머지 절반은 ‘내 브랜드’에서 나옵니다. 요즘 젊은이들 한 달 살기 어디로 갈까요? 풍광이 아름다운 것으로 부족합니다.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고 독립서점이 있는 곳, 바로 청년들이 원하는 콘텐츠가 있는 곳입니다. 왜 안성에 워케이션을 오지 않을까요? 로컬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유일한 희망은 골목상권입니다! 골목상권이 형성되려면 6가지가 필요합니다. 문화자원, 정체성, 공간디자인, 접근성, 창업생태계, 그리고 싼 임대료입니다. 이 중에 핵심은 문화자원과 정체성이죠. 1세대 골목상권엔 독립서점, 베이커리, 커피전문점,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갔죠. 그러다 복합문화공간, 코리빙스페이스, 라운지 등이 들어가면서 2세대 문화 산업으로 진화합니다. 이어 디자인, 패션, 스타트업 등 3세대 창조산업으로 발전해요. 문제는 골목상권은 정부가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씨앗이 자라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죠. 끼 있는 플레이어들이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다 보면 문화 자원이 쌓이고 이게 정체성이 되고 브랜드가 됩니다. 1단계에선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가 중요합니다. 이 가게들을 중심으로 동네 지도가 만들어지거든요. 거기에 공방, 갤러리, 디자인숍이 들어서면 1단계 만족입니다. 2단계부터 동네가 브랜드가 돼요. 그 말은 ’동네를 팔겠다‘는 가게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간판을 보면 알죠. 연희동, 연남동 이름을 쓴 가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서촌 대림미술관은 이런 슬로건을 걸었어요. ‘서촌이 대림미술관이다. 대림미술관이 서촌이다.’ 연희동은 400개 가게가 만든 문화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겠어요? 대기업은 성수도, 연희동을 못 이겨요.

경기도는 상황이 좋지 않아요. 골목상권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수원 행궁동, 고양 밤리단길 정도입니다. 서울 골목상권을 보면 원구도심지에 형성되거든요. 경기도 모든 도시는 중심지가 없어요. 서울을 서포트하려고 신도시를 만들다 보니 서울과 연결만 중요하게 되죠. 제가 인구 10만 명당 골목상권 수로 ’창조기반역량‘ 순위를 매겨봤어요. 1위는 제주, 2위는 강원, 3위는 서울이고, 경기는 17위로 꼴찌입니다.

안성시에 들어오다 놀랐어요. 고속도로가 아니라 시골길로 안성 시내로 진입하게 되더라고요. 서울이랑 먼 건 좋은 겁니다. 가까우면 자기만의 문화를 살리기 어려워요. 안성은 서울이랑 연계하기보다 안성읍 중심으로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주거지역의 중요성은 더 커졌어요. 직주락 센터(work life, play)를 만드는 게 안성의 목표가 돼야 합니다. 골목길 자원이 살아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빌라나 아파트가 아니라 한옥, 단독주택이 있는 곳이 유리합니다. 주요 문화시설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그사이 보행로를 개선하고 연결해야 합니다. 15개 읍면 동네 잡지를 지원해주면 청년들이 동네를 공부해요. 동네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살 수 있을지 연구할 수 있습니다.”

“도시 브랜드 홍보만으론 안 돼…정책이 함께 가야”

중요한 건 알겠는데 뜬구름 같은 브랜드,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박상희 경희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도시 브랜드’ 강의가 이어집니다. 박상희 교수는 인천 도시 브랜드를 총괄했습니다. 원도심과 송도 신도시가 결합한 인천을 알리는 ‘상반된 매력, 공존의 도시’ 영상 3부작 등으로 IBA(International Business Awards) 금상을 탔습니다. 다음은 박상희 교수 강의입니다. 안성시 공무원 300명은 아직 깨어있습니다!

▲ 박상희 교수

“브랜드는 단순히 시각적 상징체계가 아니라 분위기 전반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새롭고, 달라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하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것은 타당성입니다. 내 몸에 맞는 옷인가가 중요하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인프라가 파괴됐어요. 독일 제품들이 잘 팔리지 않았고요. 당시 독일은 ‘German Engineering’을 슬로건으로 삼습니다. 독일은 견고하고 튼튼하게 잘 만든다는 것이죠. 브랜드 활동은 홍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제품이 (슬로건 대로) 견고해야죠. 품질 관리를 해야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German Engineering’은 무뚝뚝하고 친절하지 못하다는 이미지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Land of Idea’로(아래 그림) 국가 브랜드를 바꿉니다. 브랜드에 맞춰 정책, 교육, 경제, 행정이 같이 움직여야겠지요.

(그림 1)

브랜드는 처음 나오면 거의 다 욕 먹어요. 익숙한 걸 이길 수 없으니까요. 도시의 본질을 지키고 소통하기 위해 브랜드를 만들고 오랜 기간 써야 해요. 브랜드는 외부 관광객 유치뿐만 아니라 내부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화합을 다지는 목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환락의 도시란 이미지가 강하고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I amsterdam’ 캠페인을 벌였어요(그림 2). 모두가 암스테르담 사람이라는 연대감을 높이는 기획이었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해요. 투자 유치인가? 관광객 유치인가? 시민들 만족도 고양인가?

(그림 2)

도시 브랜드는 정책과 콘텐츠를 기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브랜드를 처음 띄울 때는 어색함을 상쇄하기 위해서 시각적, 체험적, 소통적 소통이 함께 가는데요. ‘아이러브 뉴욕’ 같은 시각적 소통은 인지도를 향상하죠. 체험적 소통은 선호도를 높여요. 친숙하게 다가오죠. 일본 구마모토의 구마몬 캐릭터는 부장이란 직함을 갖고 구마모토 홍보대사 역할을 했어요. 참여적 소통은 연대감을 높입니다. 독일 베를린은 ‘Be Berlin’ 캠페인을 하면서 시민들이 베를린에 대한 생각을 써넣을 수 있는 말풍선을 만들었습니다.(아래 그림 3).

(그림 3)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why’, 우리가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거기서 ‘어떻게’와 결과물이 나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내가 나다움을 정의’하는 것이고, 브랜드 이미지는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 둘의 격차를 줄여가는 게 브랜딩입니다. 한마디로 브랜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수용자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과정이죠. 일처럼 해선 안 돼요.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진실한 결과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어요.

도시 브랜드는 차별적 경쟁력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안성시에는 대학이 다섯 개 있습니다. 창업프로그램 등으로 청년들을 안성시에 머무르게 하면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공주시가 잘하고 있어요. 공주시 원도심인 제민천 주변으로 여러 커뮤니티 활동이 일어납니다.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소통을 수월하게 해 주는 수단입니다. 정책 뒷받침이 중요합니다. 1970년대 ‘아이 러브 뉴욕’ 캠페인이 시작됐을 때 뉴욕은 위험한 도시였습니다. 이후 교육, 치안, 경제가 개선되었기에 ‘아이 러브 뉴욕’이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강의의 재미 때문인지(카페인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안성시 공무원 300명은 졸음을 이겼습니다. 앞으로 축제관광(13일)과 귀농귀촌(18일)을 주제로 강의 두 번이 더 이어집니다. 그리고 정책디자인 워크숍이 열립니다. 안성시 공무원들은 어떤 매력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찾아낼까요?

* 정리: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