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저탄소 녹색성장’, 선언만으로 안 된다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지금 우리는 문명의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세계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쳐 환경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나무와 석탄과 석유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에너지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이같은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입니다. 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선언했다. 문명의 변화를 얘기하고 ‘환경혁명’이란 신조어까지 동원했다. 광복절 63주년, 정부수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행한 연설이다.
대통령의 수사(修辭)는 점점 장밋빛으로 변한다. 새만금을 비롯해 국토 곳곳이 태양과 바람, 꽃과 바다 에너지가 만개하는 신천지가 될 것임을 묘사하는가 하면, 녹색성장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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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기술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일자리 없는 성장’의 문제를 치유할 것이며, 정보화시대에는 부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녹색성장시대에는 그 격차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대통령 메시지 전달 실패


문맥으로 보면 여간 생각하고 한 연설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에너지·환경 문제를 이렇게 중점적으로 거론한 사람은 없었다. 녹색성장을 추구하고, 과도한 석유의존도에서 탈피하겠다는 정부 선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이 연설은 느닷없어 보인다. 미국 같았으면 나라가 왁자지껄했을 텐데 이튿날 조간신문에 상투적인 해설기사만 나돌다 사라졌다.
왜 그럴까. 광복절 기념과 맞지 않은 내용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올림픽경기에 정신이 팔려서일까.

촛불집회의 후유증으로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추락해서일까. 너무나 꿈같은 비전을 제시해서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인가. 아무리 보아도 대통령이 환경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진 개발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녹색성장’을 들고 나와서 믿어지질 않아서인가.

하여간 대통령은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 듯싶다. 대통령과 정부가 기후변화와 에너지문제가 동시적으로 몰려오는 중첩된 위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의지표명의 선언시기와 방법에서 보다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대통령은 어떤 상황아래서도 희망의 씨앗을 놓아버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험이 무엇인지는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위험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어서 누누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치부하더라도, 어떤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모든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국민의 관심을 새롭게 집중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바로 대통령의 인식과 국민의 인식이 맞닿아 있어야 할 이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아무 일 없이 넘어가면 면피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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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은 그럴듯한 말이지만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종전의 경제성장과는 다른 개념이다. 자연을 무한한 자원으로 생각해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녹색으로 가지 않으면 우리와 우리 자손의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발전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성장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절제를 요구하는 과정이다.

대통령은 신재생 에너지 사용비율을 현재의 2%에서 2030년에는 11% 이상, 2050년에는 20% 이상으로 높이도록 총력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생산한 재생에너지가 지하철 몇개 노선을 움직일 수 있는지 생각하면 갈 길은 멀다. 재생에너지 투자는 국민 부담을 말한다. 전기세를 올려 태양열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보조해줘야 한다. 대통령이 언급한 것을 보면 기후변화 후속대책과 더불어 더 구체적인 에너지 환경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환경’ 심각성 알려야


정부는 좀 더 솔직하고 쉽게 국민에게 에너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필요성과 더불어 그게 어렵다는 점도 얘기해야 한다. 녹색성장과 더불어 에너지효율화와 에너지 절약을 진지하게 호소해야 한다. 전기를 덜 쓰고 수돗물을 아껴 쓸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고 큰 차를 덜 타게 유도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사회 지도층이나 상류층부터 솔선수범하도록 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현명한 군주는 현재의 문제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문제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하며 그 문제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나라에 다가온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며 다시 새겨 볼만한 격언이다.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 함께 실렸습니다.


[##_1L|1335538792.jpg|width=”135″ height=”100″ alt=”?”|_##]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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