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환 인턴연구원이 발견한 ‘지역살이’의 가능성
서울 강동에서 학교가 있는 구로까지 두 시간 남짓 거리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욱여넣는다. 노량진역에서 환승할 때는 자퇴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겨울방학이라고 지옥철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홍대입구역에 도착해 7016번 버스를 타고 희망제작소 앞에 다다르면 이미 집에 가고 싶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10대 때는 대학 입시 경쟁에 몰두하고, 2·30대 때는 취업 경쟁에 매달린다. 일자리를 구해도 문제다. 여가 시간을 갖기 어렵다. 지난해 한국 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1915시간, OECD 회원국 중 5위다.
빚까지 내가며 ‘노오력’하면 안정적인 삶은 보장되는가? 한국장학재단 학자금대출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전체 소득 분위 중 3분위 이하 저소득층의 대출 규모는 2조8802억 원이다(데이터셋, 2021). 한국경제연구원의 ‘2009~2019년 OECD 청년 대졸자 실업률 증감 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청년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지만, 대졸자 고용률은 76.4%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2022.12.15). 불확실성 시대에 청년들은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안정적인 삶의 조건들을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조건에 필요한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청년들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포기’다. 연애, 결혼, 출산 3포 세대에서 나아가 지금은 N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청년들은 사회가 자신의 삶을 보호할 거라고 느끼지 못한다. 스무 살의 나이에 인턴십을 하는 지금, 나는 대학에 오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믿음은 허구임을 깨닫는 중이다.
희망제작소에서 도시 밖으로 시선을 돌린 ‘로컬다이버 인터뷰 시리즈’를 보았다. 소멸위기 지역 경상북도에서 폐가였던 고택 화수현을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로 만든 ‘문경 리플레이스’, 금산 시골에서 문화예술로 청년 공동체를 구성한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 로컬다이버 청년들이 들려준 지역살이가 흥미로웠다. 무중생유(無中生有).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사자성어다. 로컬다이버 청년들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를 창조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곳에는 빈집과 시골 마을 공동체가 있었다. 그들은 남들과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며 창의적으로 조합했다. [지역에 ‘풍덩’ 빠져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 | 희망제작소 (makehope.org)] 로컬다이버 청년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나다움과 지역 콘텐츠가 융합해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역의 자원을 청년들의 감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돕는 일이 필요하다.
공유숙소·체험기회···더 많이 주어지길
사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게 지역의 진짜 매력 아닐까? 아버지의 고향인 무안군 청계면 강정1리에는 영화관, 카페, 서점, 그리고 학교도 없다. 하지만 오래된 폐가와 인심 좋은 사람들, 서해안이 작아 보이는 드넓은 갯벌은 있다. 지역의 자원을 잘 융합한다면 무한경쟁 궤도에서 벗어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MZ세대이자 서울 토박이가 바라보는 지역에서의 삶은 ‘전환’이다. 불확실성 시대에 지역은 오히려 안정적인 삶의 재생산이 가능하다.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이다. 서울에서의 삶이, 끊임없이 ‘노오력’하는 삶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 같은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요즘 소멸위험에 처한 지역들은 관계인구 확장에 주목하고 한다. 관계인구란 “특정 지역에 거주하진 않지만, 여가ㆍ업무ㆍ사회적 기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구”를 뜻합니다. 관계인구의 유입을 넘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도록 만들려면 그곳에서 충분히 살아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소멸위험에 처한 몇몇 지역들은 아파트 선분양과 다를 바 없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청년 이주는 탐색-이주-정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22년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창업농 선발 및 영농정착 지원사업, 행정안전부의 지역 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을 비롯해 중앙과 지자체 차원에서 여러 청년 이주 및 정착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 사업 대부분은 창업 관련 교육 기회를 제공하거나, 취업을 알선하거나, 생활비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융자하는 등 단편적인 지원에만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 단기적, 금전적 지원이다. 청년을 고용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농촌 지역은 지원 사업 종료 후 고용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신소희, 2019). 청년의 지역 이주와 정착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 지역에 대한 이해,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청년들을 단순 유인하는 정책은 지역과 청년, 모두에게 독이 된다. 아파트 선분양제와 같은 청년 이주정책은 실효성이 없으며 정착의 지속성을 달성할 수 없다. 살기 좋은 지역에는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탐색 과정을 위한 공유 숙소가 필요하다. 이주할 동기를 찾거나, 관련 정보 수집 등을 돕고 지역살이를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주를 결심한 청년들은 대개 처음부터 지역에서 잘 뿌리내려보겠다는 의지보다는 지역에서 일과 생활을 한번 체험해보고 결정하겠다는 마음이 크다(신소희, 2019). 지역에 있는 빈집을 공유 숙소로 탈바꿈해 숙소의 운영을 청년에게 맡긴다면 금상첨화다.
서울에서 삶은 피곤하다. 끊임없이 남들과 경쟁해야 한다.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아버지 고향 무안에는 공동체적 가치가 퍼져 있다.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서해안이 작아 보이는 넓은 갯벌이 있고 하늘이 걸쳐 보이는 양파밭 구릉지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건강한 삶, 협동과 여유로운 일상 이것이 무안에서 느낀 삶이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무안에 삼만 원을 기부했다. 아버지 고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릉지 양파밭 끝에 하늘이 걸쳐 보이는 무안의 매력을 잘 알고 있어서다(무안은 양파의 본고장이다). 어쩌면 경제적 성공이나 안정적인 정착이 목적이 아니라 전환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의 이면일지 모르겠다.
*글/정주환 인턴연구원
참고문헌
– 신소희, 2019, “청년의 지방 이주와 정착을 돕는 정책과 지역사회의 역할”, 농정연구 2019;70(0):142-172.
-데이터셋(공공데이터포털), 2021, “한국장학재단_학자금대출 통계 정보(통계연보)_20211231”, 한국장학재단_학자금대출 통계 정보(통계연보)_20211231 | 공공데이터포털 (data.go.kr), 2023년 1월 13일 접속.
-조한혜정·엄기호·강정석·나일등·이충한, 2016, 노오력의 배신, 파주: 창작과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