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의 땅 위에 도서관을 세운 아이들

6기 소셜디자이너스쿨 현장 중계 

6기 소셜디자이너스쿨 여덟번째 시간에는 ‘풀뿌리모금으로 마을만들기’ 라는 주제로 철암어린이도서관 원기준 대표의 강의가 열렸습니다. 모든 성공이 그렇듯, 그의 이야기는 수많은 실패로 얼룩져있었습니다. 의욕과 열정이 앞서던 한 운동가가 철암이라는 탄광촌에 도서관을 만들기까지, 온갖 시행착오를 통해 그려온 변화의 궤적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_1C|1101157627.jpg|width=”400″ height=”27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철암어린이도서관 원기준 대표 _##]그가 탄광촌에 내려가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의 광산촌 활동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탄광 노동자들을 의식화시켜 세상을 바꿔보겠노라는 풍운의 꿈을 안고, 지역 내 복지사업을 담당하는 교회의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책 <페다고지>에서 ‘문자해독’이 민중의 의식화를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되는데요, 그 역시 탄광촌에서 한글교육을 하면서 노동자 교육 등의 지역사업에 가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원 대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됩니다. 이후 교회에서 나와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시작했고, 태백지역 최초의 재야운동단체인 ‘태백지역 인권선교운동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87년의 대대적인 민주화 운동과 또 한번의 구속 이후로는 탄광촌도 문을 닫고, 다들 지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 대표는 91년 ‘광산지역사회연구소’를 만들어 탄광지역의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지역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건, 사고, 사연이 많은 동네

탄광촌은 1920년대만 해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이었는데, 1930년대 일제가 자원수탈을 위해 탄광을 개발하면서 형성되었고, 산업화와 함께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습니다. 탄광이 붐을 이루면서 많은 돈이 몰렸으나, 술집과 다방을 중심으로 마을이 구성되고, 빚을 지고 도망친 사람이나 범죄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사건도, 사고도, 사연도 많은 동네가 탄광촌입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을 지나 89년부터 정부의 ‘석탄합리화사업’이 추진되면서, 돈이 안 되는 탄광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탄광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이 작은 도시의 주민들은 자연히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게 되었죠.

광산지역사회연구소는 지역 개발을 위해서 ‘폐광지역 특별법’을 만들자는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넘게 특별법 제정연구를 위한 대규모 삭발시위를 벌였고, 95년 3월 3일 결국 정부는 공원관광휴양 도시를 만드는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강원랜드’ 사업입니다. 법안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정부에서 카지노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 위험성과 그것이 가지고 올 대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 채 지역사회는 그와 같은 제안을 덥석 물었습니다.

원기준 대표는 돌이켜보면 무대포 정신으로 특별법 제정을 성공시켰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역사회가 떠안아야 할 사회적 비용을 엄청 높여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기획하는 소셜 디자인 사업이 실패할 경우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하기에, 기획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책임감 없는 선의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카지노 사업도 결과적으로는 지역에 고용창출효과를 가져왔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디자인하든 간에, 본래 계획과의 반대의 그림도 고려해 그것이 가져올 역기능이나 부작용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말자는 게 아니라, 구더기가 장맛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도록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카지노, 카지노, 카지노

탄광촌이 전당포 거리로 대체됐을 뿐, 변한 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카지노 얘기 뿐이었습니다. 도박중독센터 설립과 같은 노력도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본질적인 해결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역 주민은 한 달에 한 번 ‘주민의 날’에만 카지노에 들어갈 수 있게 함으로써 카지노 중독을 막으려 했지만, ‘강원랜드 중독’까지는 막지 못했습니다. 또, IMF 사태로 인해 다른 80여개의 지역개발 계획은 취소된 채 카지노만 남겨지게 되었고, 주민들은 계속해서 카지노 사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카지노 이외의 것을 만들고자 해서 조성된 것이 탄광마을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탄광촌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마을을 통째로 박물관으로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실제 예산이 할당되었음에도 태백시 공무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고, 수해를 당한 뒤 복구 사업을 하며 철거되었습니다. 이 때, 수재민 모금운동을 통해 한달 사이 전국에서 5천만 원이 모였는데, 안타깝게도 주민들은 수해의 아픔을 뒤로 한 채, 구호품을 받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민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라면을 지급받는 상황이 발생했고, 결국 싸움이 났습니다. 주민들이 구호품에 중독된 것입니다.  5천만 원 어치의 구호품을 그대로 전달하는 대신 실직자를 모아 집수리를 지원하고 임금을 주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더 이상 외부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지역 사회를 바꿔야 할 필요가 생겨난 것입니다.

거기, 주민은 없었다

결국 남은 예산으로 원래 노래방이 있던 자리를 분양 받아 도서관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책을 모아 아이들을 위해서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개관식 날, 시장, 국회의원, 지역의 유지들은 모두 참석했지만, 정작 철암 주민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줄곧 지역 주민들에게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함께 이야기하거나 소통하지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아무리 원 대표가 좋은 뜻을 갖고 추진했다하더라도, 그는 주민들에게 외지인으로 인식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원 대표 스스로도 도서관을 지은 14명의 일꾼에게조차 아무 것도 상의하지도 않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책 기부를 제안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새 프로젝트의 주체는 마을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의 실패를 발판 삼아 도서관의 운영은 조금 더 세심하게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의 비전은 ‘아이 한 명이 자라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입니다. 마을 전체가 운영하는 도서관으로 특별한 프로그램보다는 생활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함께 하는 도서관을 지향합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통해서,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화려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인성을 살찌우는 데 모든 프로그램의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산타가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주고 싶은 것을 생각해 마을 주민들에게 직접 선물하는가하면, 송편을 만들어 경찰서에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은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예산 계획까지 세워, 직접 자기 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고, 꿈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게 함으로써, 마을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근본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도 상영하고, 음악회도 열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주민들 사이에서 정착해 갔고, 처음에는 발길이 뜸하던 아이들도 즐겨찾기 시작했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대학생들이 결합해 주었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원 대표는 작은 도서관 하나가 마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물론 도서관 자체는 단지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었습니다, 도서관은 동네 할머니와 팥죽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했고, 마을 주민 모두가 선생이 되고, 부모가 되어 운영되었습니다.

어깨띠를 두른 아이들  

그러던 어느 날, 보상비 문제로 도서관이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원 대표는 도서관을 지원해주겠다는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스스로 일어나기를 택했습니다. 진정한 사회 복지는 ‘얻어 먹이고 거두어 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으니까요.

모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모금 운동을 설계하고, 스스로 돈을 내기도 했습니다. 준비위원회가 조직되고, 주민들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어깨띠를 두르고 신을 내며 모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포스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적지 않은 돈이 모였습니다. 드디어 도서관 기공식을 갖게 되었고, 이 행사의 주관과 사회, 경과보고, 그리고 행사 홍보까지도 아이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_1C|1352529984.jpg|width=”450″ height=”33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모금활동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 (사진제공:원기준)_##]원 대표는 모금에서 ‘주체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진행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주체로 설정하게 되면 처음의 방향성을 잃고 휘청거리기 쉽습니다. 철암어린이도서관의 모금운동은 풀뿌리 중의 풀뿌리인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실행된 프로젝트였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또, 모금운동의 성과는 모금한 만큼 거두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만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와 성과에 집착하게 되면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철암의 사례에서도 중요한 건 도서관이라는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모금의 주체인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본질이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씨앗의 내부에서 스스로 무언가가 나오게 만들어야 하며, 혼자가 아닌 여럿이 과정을 공유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성과의 측면에서도  최선을 다하되, 안 되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모금 주체가 스스로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한 거죠. 또, 성과를 거두면서 모금에 한 번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들뜨기 쉽습니다. 성과 달성 여부에 관계없이 원칙과 순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역시 어렵지만 중요한 모금의 정도입니다.

원 대표가 들려준 모금의 10가지 교훈을 소개하며, 이 날의 강연 정리를 마치고자 합니다.

1. 모금의 사회적 공감대, 정당성을 세워라.
2.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감동을 전하라.
3. 자기희생을 통해 진정성을 전달하라.
4. 모금의 주체를 뚜렷하게 세우라.
5.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라.
6. 뚜렷한 목적의식을 공유하라.
7. 즐겁고 재미있게 모금하라.
8. 투명하게 모든 과정을 공개하라.
9. 작은 모금이 큰 모금을 부른다. 작은 것을 귀하게 여겨라.
10.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섬세하게 감사하라.

글_이응준 인턴연구원
사진_정재석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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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교육일정: 7월 10일 ~  8월 23일 (개강, 중간, 종강 워크숍을 제외하고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반)
ㆍ참가신청: 6월 18일 ~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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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기 SDS 강의 목록

1강
안철수가 젊음에게 권하는 말
2강
사회혁신 탐구생활
3강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하는 샤워법
4강
고경태 기자의 ‘진부한’ 기획 이야기
5강 그런 공공디자인, 가당치 않다
6강 소셜미디어는 잊어야 하는 이유
7강 사회적기업, 비장하면 다친다
8강 카지노의 땅 위에 도서관을 세운 아이들

Comments

“카지노의 땅 위에 도서관을 세운 아이들”에 대한 2개의 응답

  1. 안녕 아바타
    안녕

    지금까지 이응준 인턴님의 글, 재미있게 또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합니다. 🙂

  2. 민기원 아바타
    민기원

    사진에 나온 장소는 고한읍같네요..

    이쪽지역에 관심이 상당히 많습니다^ ^

    작년에 Art in village에도 진행자로 참여했었고..

    희망도서관이 생긴다니.. 꼭 고향에 생기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고..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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