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도 집 할부금을 안고 있다. 이 길고 긴 할부금을 갚아나가는 것은 아마 평생에 걸쳐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한 평생이라는 시간의 폭을 생각하면, 20대부터 해온 저금을 계약금으로 해서 30대에 할부로 집을 구입하고, 60세 퇴직할 때 쯤 다 갚게 된다.
게다가 대출금을 다 갚을 때 쯤에는 집을 여기저기 크게 손봐야 할 때가 된다. 인생 대부분을 집을 위해 돈을 쓰며 보내는 셈이다. 자기 자신은 돈을 주체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돈에 휘둘리는 한 평생이 되고 있다.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의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신용창조’의 아이러니
은행의 시초는 돈을 맡긴 사람이 한꺼번에 돈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눈속임으로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현재 국제결제은행(BIS)의 규정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대출을 할 때 자기자본 8%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가지고 있는 돈의 12.5배를 빌려줘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것을 ‘신용창조’라고 하는데, 정말로 ‘신용’이 ‘창조’된 것일까?
지금은 유로화가 큰 신뢰를 받고 있지만, 이전까지 기축통화는 달러 뿐이었다. 1971년 닉슨 쇼크 이후에 국제통화는 변동환율제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각 통화간의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 시세가 결정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인 점을 이용해 그 이전과 비교해 20배에 달하는 달러를 발행했다. 발행된 달러는 각국에서 자원을 수입하는 데 사용된다. 결국 미국은 1971년에 비해 20배나 되는 자원을 전 세계에서 그냥 취한 것이다. 이것도 ‘신용창조’인 것일까?
[##_1C|1192303688.jpg|width=”400″ height=”26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연합뉴스)_##]선진국 이외의 개발도상국은 아직 고정환율제 그대로이다. 이들 나라는 달러와의 관계로 시세를 정하는 달러 패그제(자국의 화폐 시세를 미국 달러와 연동시키는 것으로, 다른 나라 통화를 자국 통화의 가치와 연동시키는 패그제를 채택하는 나라 중 다수가 달러와 연동시키기 때문에 이 말이 생겼다. 단점으로는 미국 금리정책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 옮긴이)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더불어 자국의 통화가 침몰하게 된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그냥 취하기 때문에 좋겠지만, 다른 개발도상국은 그냥 세계에서 ‘자국의 몫’이 줄어드는 것이다.
‘신용창조’란 이른바 ‘좀도둑이 강도로 돌변한 꼴’이다. 근거 없는 자금을 빌려주거나 마음대로 종이에 인쇄만 해 전 세계에서 자원을 그냥 취하면서 “덕분에 세계경제가 발전했다”고 말한다. 마치 좀도둑이 들키자 강도로 돌변한 것처럼 여겨진다.
돈을 위해 상품을 만든다
지금 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한꺼번에 돈으로 물건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그 돈은 지구 몇 개 분의 가치와 맞먹게 된다. 결국 돈이 실물의 양을 초과하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돈은 무엇인가와 교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돈을 위해 무언가를 상품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지금까지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이 상품이 되고, 무료였던 서비스가 유료가 된다. 지역에서 이웃끼리 서로 나누었던 작은 협력은 전문 서비스가 되고, 돈만 내면 사람의 생각도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도가 없는 통화발행과 신용창조 효과를 통해 돈이 상품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개발도상국의 국내총생산이 늘어났으므로 경제가 발전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도상국의 국내총생산은 그때까지 서로 선의로 해왔던 물물교환을 상품화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지역의 시장에 자기의 생산물을 가져가 판 다음 그 돈으로 생활필수품을 구입하면, 돈을 사용한다고 해도 사실상 물물교환과 마찬가지다. 물건을 가지고 가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국내총생산 수치는 증가하게 된다.
무역을 별로 하지 않던 개발도상국의 무역의존도가 어느 순간 100% 가까이 되는 것도 아침시장과 같은 비화폐경제를 기반으로 생활하다 수출입 물품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나라의 국내총생산을 높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토지에서 몰아내고, 플렌테이션 농장 등에서 임금노동을 시켜 편의점에서만 필수품을 구입하도록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면 돈을 벌고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국내총생산 수치를 늘릴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에서 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라도 상품으로 만들어 거기에 부가가치를 만들면 만들수록 숫자상 ‘풍요롭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다. 아무것도 풍요로워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미래의 빚 미리 갚기
금 세공업자가 시작한 ‘신용창조’ 효과는 돈을 팽창시켰다. 그리고 금과 관계가 없어진 돈은 더욱 팽창했다. 이제 돈은 물건과 관계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낳고, 인터넷 금융의 시대를 맞아 통화라는 형태도 없이 기호화된다. 컴퓨터의 엔터키를 누를 때,누구도 그것이 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역통화’를 한 번 운용해보고 느낀 점은 누군가가 돈을 빌리지 않으면, 통화가 유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이라는 것은 누군가 빚을 짐으로써 유통되는 것이다. 빚이란 미래를 앞당겨 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가 시작한 NPO은행은 돈을 팽창시키지 않는다. 맡긴 금액 이상의 융자는 하지 않는다. 금리가 금리를 낳는 복리 구조를 채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NPO은행을 이용하지 않아도 방법은 있다. 돈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지역에 만들어내면 된다. 우리가 꼭 사야 하는 물품의 거래를 위해 지역에서 교환의 장을 마련해보자. ‘시장’을 여는 것도 좋다. 화폐를 단지 척도 대신으로만 사용해 상호 필수품을 교환해보자. 돈이 오가는 비화폐경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돈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급해보자. 에너지 절약은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단열을 잘함으로써 열 이용을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과 줄이는 것은 실제로는 동일한 효과를 낸다. 이른바 ‘에너지 절약 발전소’이다. 특히 자연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면 결국 어느 시점에는 진정한 자급에 가까이 갈 수도 있다.
[##_1C|1302009330.jpg|width=”400″ height=”26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2009년 4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텃밭파종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연합뉴스)_##]자연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지출한 돈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자연에너지 이용에 돈을 들이면, 그 이후에는 돈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자연에너지를 사용하는 만큼 전기요금을 내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된다. 따라서 돈은 과거의 청산만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 에너지에 투자한 돈은 저축과 마찬가지로 이후의 생활을 지탱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농가와 계약을 맺어 10년간 작물을 선불로 구입해보자. 특히 주택이라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생태주택으로 지어보자. 그때 들어가는 돈은 미래의 빚을 미리 갚는 것이다. 미래로 청구서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빚을 우리가 미리 갚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삶이 조금씩 돈에 얽매이지 않고도 이뤄지게 된다. 물론 돈이 필요한 때는 있으며, 무리하게 전부를 없앨 필요는 없다. 어쨌든 마음이 뿌듯하지 않은가? 우리의 노력이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선물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글_ 다나카 유
번역_김해창 (hckim@makehope.org)
【우리는 지금 | 김해창】개발을 거부한 도심 속 ‘오래된 미래’
부산시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물만골공동체는 ‘오래된 미래’를 지향하는 마을이다. 부산 연제구 연산2동 산 176번지에 자리 잡은 ‘물만골공동체’는 도시 때가 묻지 않은 마을이다. 물만골이란 ‘물이 마르지 않는 골’이란 뜻으로, 이 지역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430여 세대, 약 1천4백 명의 주민이 산다. 이들 가운데 35%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이고, 15%는 주로 노점상인 자영업자이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20%도 채 안 된다. 이곳은 비록 가난하지만 굶주림도, 비행 청소년도, 소외받는 노인도, 환경문제도 없는 마을로 유명하다. 2002년에는 환경부가 우수 생태마을로 선정하기도 했다.
물만골공동체는 1950년대부터 이곳에 무허가로 정착한 사람들이 지난 1992년 철거반대 투쟁을 하면서 아파트 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지금은 황령산의 청소를 도맡아 하고 대규모 개발에 반기를 드는 ‘황령산 지킴이 마을’이기도 하다.
철거반과 맞서 삶터를 지켜온 주민들은 1999년부터 가구별로 월 10만원씩 모아 땅을 사들이기 시작해 그해 12월 처음 3천5백 평을, 2000년 6월에는 5천8백여 평을 매입했으며, 10년 안에 주민들의 거주 지역 11만 평을 모두 사들여 환경 생태마을로 꾸민다는 야심찬 꿈을 키워가고 있다.
물만골공동체는 생태마을을 지향한다. 2000년부터 음식쓰레기 제로화에 도전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만골공동체의 음식찌꺼기 리사이클 체제는 이렇다. 우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생기는 음식찌꺼기를 날마다 마을회관 근처 집하장에 모은다. 여기에 유효미생물군(EM)을 넣어 발효시킨 뒤, 이를 마을 공동으로 키우는 토끼 70여 마리와 닭 50여 마리의 사료로 쓰고, 남는 것은 야채밭에 퇴비로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키운 닭이 낳는 하루 20여 개의 유정란을 마을회관 노인 급식 재료로 쓰고 있다.
물만골공동체는 또 2000년 3월부터 자활사업단으로 ‘자원재활용공동체’를 만들었다. 만 65세 이상의 주민 10여 명이 날마다 1톤 트럭으로 문전수거를 한다. 재활용공동체 외에도 의류생산공동체, 건설공동체, 의료복지상담소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의류생산공동체에서는 부녀회원 10여 명이 바지를 생산하며, 건설공동체는 주민 10여 명이 참여해 굴착기와 트럭 등을 보유하고 건축사업을 하고 있다. 의료복지상담소는 동네 의사가 사실상 주민들의 가정주치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물론 중환자가 생기면 공동체에서 치료비를 지원한다.
문화행사도 자주 열린다. 2주에 한 번 마을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마을신문도 나온다. 이곳 주민들은 사교육비 걱정도 없다. 미취학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방과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에서는 무료로 방과후 교실이 운영된다. 가까운 장래에는 마을에 태양광발전소를 비롯한 대안 에너지를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만골공동체는 도심 속의 이상향 만들기에 도전해 현재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 연재순서
1. 당신의 돈이 전쟁을 돕는다
2. 저금이 환경을 파괴한다? ? 다시 생각해봐야 할 국책ㆍ공공사업
3. 토빈세, 야만과 싸우는 세금
4. 단리와 복리, 어느 쪽이 친환경적일까?
5. 인플레이션도 피해가는 화폐 ? 한국의 대표적 지역화폐 공동체 ‘한밭레츠’
6. 은행이여, 내 예금의 사용처를 공개하라
7. 저축계좌를 바꾸면 세계가 바뀐다
8. 지구를 살리는 ‘굿 감세ㆍ배드 과세’
9. 그들이 ‘수익 0’ 토지에 투자하는 이유 ?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10. 지금, 돈의 주인으로 사는 법 ? 개발을 거부한 도심 속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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