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내가 서있는 이 곳은 그저 지금 내가 사는 곳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여기’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우연히 서해안 너머 일출을 바라보며 내가 사는 이 곳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을 만났다. 관광도시로 유명한 군산에서 지역과 여성을 말하는 우만컴퍼니(홈페이지)의 김나은 대표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어떻게 나아가고, 나아질 지 기록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역이라서?’가 아닌 ‘지역이라서!’ 지역과 여성을 콘텐츠에 담는 우만컴퍼니의 김 대표를 군산의 한 촬영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최근 독립출판물 북마켓 ‘퍼블리셔스테이블’에 참가하셨습니다. 어떠셨나요. 몇 년 새 독립출판물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김나은: 과거에 다른 북페어를 가본 적은 없었고,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흥미로운 팀들을 발견했어요. 이런 장이 커뮤니티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출판사의 출판물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저도 출판사로서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 군산, 마음 붙이지 못한 곳에서 발을 딛고 선 곳으로
– 나은님은 어떻게 군산에 오게 되었나요.
김나은: 원래 고향은 군산이 아니에요. 대학 가고 난 뒤 어머니께서 군산으로 터를 옮기시며 정착을 하셨고, 그러다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학업을 마친 뒤 군산에 왔죠. 당시만 해도 친구들이 있는 대전이나 서울로 눈을 돌렸지, 군산에 제대로 정착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어떤 날, 대전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고 뒤풀이를 하고 새벽에 군산으로 돌아오는데, 일출이 너무 강렬한 거예요. 그 햇빛을 보면서 ‘아, 내가 살고있는 이 지역에 정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역에 시선을 두지 않고 밖으로 돌린다는 걸 깨달았달까. 그날 이후로 동네서점인 ‘마리서사’ 등 동네의 여러 매장을 둘러보면서 차츰 군산을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 자연스럽게 군산에 정착하면서 우만컴퍼니를 시작했나요.
김나은: 맞아요. 군산에서 살면서 모임에 대한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첫 시작이 ‘우만컴퍼니’였던 건 아니고요. 2019년 처음 페미니즘 독서모임 ‘보다’를 시작했어요. 6명이 모였는데, 1년 가량 만나니까 좀 더 모임을 확장하고 싶었어요. 당시 영화 <이태원>을 보고 싶었는데 군산에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상영관이 확보되지도 않았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도 서비스되지 않아서 ‘내가 배급사로부터 직접 상영권을 사서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왕 영화보는 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서 감독을 섭외했고, ‘감독을 섭외할 때 증빙 받을 수 있도록 사업자를 내볼까?’라는 식으로 시작한 게 우만컴퍼니죠. 그러면서 처음 공동체 상영을 하니, 비교적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첫 영화는 당시 제가 영화제에서 흥미롭게 봤던 단편 영화인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배꽃나래 감독)을 상영했어요.
📌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하다보니 탄생한 ‘우만컴퍼니’
– ‘하고 싶은데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계속 확장한 게 인상적이네요. 이러한 과정 속 우만컴퍼니는 어떤 정체성을 표방하나요.
김나은: ‘지역’과 ‘여성’이요. 도서 『우만플러그, 군산』을 기획하고 편집할 때 ‘지역성이 느껴지는지’, ‘지역과 여성을 엮는 부분에서 인위적인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여성을 이야기할 때 어떤 스탠스로 이야기할 것인지’를 계속 되물으면서 작업했어요.
– 『우만플러그, 군산』을 읽다보면 그 자체로서의 정체성, 혹은 다양성을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김나은: 책을 제작하면서 ‘지역’과 ‘여성’이라는 키워드 아래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대신 양날의 칼이기도 해요. 다양하게 이야기함과 동시에 독자에게는 메시지가 뾰족하지 않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해석조차 독자에게 달렸죠.
– 책을 만들면서 본인이 발견한 즐거움이 궁금해요.
김나은: ‘만남’이 가장 좋았어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일 자체가 정말 즐거웠거든요. ‘우만’은 ‘우리가 만났을 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사람을 직접 만날 때 그 사람의 관점을 배우면서 제 생각이나 관점도 더 열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만남은 유의미해요. 하다못해 유쾌하지 않았던 만남도 그 만남대로 얻게 되는 교훈이 있죠. 전형적인 E(외향성)이라 그런가봐요(웃음).
– 콘텐츠(예술)분야를 밥벌이로 유지하기란 어떤 분야보다 장벽이 높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김나은: 본업이 별도로 있는데요. 영원히 그만두지 않으려 합니다(웃음).고정수입원이 따로 있고 우만컴퍼니를 별개 프로젝트로 진행하기 때문에 활동 자체가 좀 더 생동감있고, 하고 싶은 걸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생업으로 셈법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본업 없이 프로젝트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긴 해요. 아마도 지금이랑 방향성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 본업을 겸해 활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결과물을 낸다는 것은 더욱 어렵잖아요. 스스로를 ‘K-개미’ 칭하는데, 나은님 활동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나은: 무언가를 하다보니까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죽을텐데 열심히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런데도 어느새 일을 벌리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이 지점에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고 살아있음을 느껴요. 우만컴퍼니를 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그 과정이 엄청난 성취감으로 다가와요. 이건 본업인 직장에서 성취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가치를 발견해요. 회사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가치를 나누거나 삶의 방식을 공유하지 않잖아요. 대신 우만컴퍼니 활동을 하다보면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니까 의미 있죠.
📌 본업과 우만컴퍼니 활동 사이를 오가며 생기는 활력
– ‘로컬다이버’ 인터뷰를 하다보니 지역에서 유입인구를 늘리기 위해 청년 이주민을 위한 정책 쏠림이 있다는 의견이 자주 언급됐는데요. 군산의 청년정책은 어떤가요.
김나은: 어렴풋하게 느끼는 지점이지만, 확실히 이주민에게 정착 지원금같은 혜택이 많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정착지원금은 ‘정착’을 위한 것이다보니 원래 군산에 살아온 청년을 위한 건 아니잖아요. 지자체에서도 원주민보다는 이주민과 협업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군산에 로컬라이즈(도시재생 프로젝트; SK E&S 주최, 언더독스 시행)팀이 있는데 그 팀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어요. 확실히 로컬라이즈 팀들이 해내는 것들이 눈에 띄는 편이에요. 지자체 차원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기존 군산 청년을 더 발굴하고 이주 청년들과의 협업을 더 장려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 청년 이주민 정책 쏠림 현상은 지역소멸이라는 현실이 눈앞에 놓여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나 막상 지역에서 살다보면 유입인구를 늘리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얘기도 종종 나왔어요.
김나은: 군산은 아직 인구소멸위험지역은 아닌데요. 인구소멸위험지역과 관련해 늘 생각한 지점은 있어요. 인구소멸위험지역을 산정하는 계산법이 20-39세 여성인구수 대비 69세 이상 고령인구로 산정하잖아요. 예전에 논란이 되었던 ‘가임기 여성지도’와 비슷한 맥락으로 결국 출생률과 연관을 지은 것인데, 산출된 결과값과 그 값을 산출한 식 사이가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구소멸위험지역은 20-39세 여성이 적거나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인 것이고, 바꿔말하면 여성이 살기 참으로 팍팍한 지역이라는 거잖아요? 여성이 그 곳에서 살고싶은 삶의 방향대로 꾸릴 수 있었다면 거기서 살았겠죠. 사실 지역에서는 수도권에 비해서는 출산휴가 자체를 내기 힘들어요. 육아로 인한 유연근무제 정책도 쉽지 않죠.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이 살기 좋은 환경을 정책적으로 만들거나, 삶의 터전에서 페미니즘을 논해도 불편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해요. 그래서 군산에서 좀 더 페미니즘을 논했으면 좋겠어요. 군산에서 사건사고(성매매 여성 화재참사 등)가 있었는데도 소극적인 모습이 아쉬웠거든요.
– 우만컴퍼니를 보면 공동체, 연대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정착한 청년 이주민으로서 지역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는 것 같아요.
김나은: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하죠. 2022년에는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최근 신흥동에서 수 십 년을 살고, 통장만 15년을 하신 여성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예전의 군산의 모습이나 삶의 방식을 말씀해주시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군산에는 그 통장님처럼 오래 정착해 살아온 여성들이 많아요. 우만컴퍼니에서 그 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할 계획입니다. 그 기록을 스튜디오에 전시하고 출판까지 연결하는 지점을 모색하고 있어요.
– 나은님은 군산의 지역소멸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김나은: 군산은 점점 경제적 발전이 더뎌지고, 인구 유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군산은 소멸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제가 ‘지금, 여기’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내가 살고있는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그렇기에 앞으로 군산이 어떻게 나아가는지 보고싶어요.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일상 속 문화가 확장되면서 우리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요. 우만컴퍼니 활동을 하면서 군산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 더 나아지는 모습을 아카이빙하고 싶고요.
– 나은님이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요.
김나은: 여성으로 향하겠죠. 그리고 옆으로도 확장하고 싶어요. 여태껏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만 생각했다면 수평적으로 넓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싶어요. 군산은 역사로 유명한 관광지니까 공간의 역사와 그 안의 여성들을 재조명해보고 싶어요. 한 공간에 어떤 이야기를 재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보를 나누고 소소한 활동을 통해 우리의 삶이 기록되고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미디어팀 방연주 연구원 yj@makehope.org, 정보라 연구원 bbottang@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