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시대와 충돌하라


우리가 몸을 담고 살고 있는 사회를 디자인하는 사람, 소셜디자이너란 멋진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의지를 가진 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귀를 세우고 앉아 있는 강의실.

일찍 도착하리라 다짐을 했건만, 결국 40분여 늦게 도착한 어두운 강의실 영사막에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참전용사 추모 조형물이 비쳐지고 있었다.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기면서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쓰신 국민대 윤호섭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_1C|1288912797.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죽어간 미국 병사들을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에 담긴 자신의 철학을 통해 그 곳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이 땅에 대해서, 그 위에서 삶을 엮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20대의 젊은 디자이너.  (편집자주: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김선주(한겨레 전 논설주간)님이 잘 정리해놓으셨네요. 클릭)

서로 관련 없는 단어들의 조합을 통해 전 세계 인류가 당면하고 있고, 해결해야만 하는 환경 보존 이슈를 시각화 한 포스터들. 디자인이라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과 동물과 숲과 물과 공기가 모두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자는 메시지를 가슴에 담고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디자이너 다운’ 모든 활동들, 그 과정과 노력과 결실의 장면들이 어두운 방 밝게 비치는 영사막 위에 흘렀다.

7기 소셜디자이너스쿨의 1강을 왜 그래픽 디자이너가 맡게 되었을까? 우리가 습관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그 디자인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해답을 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에 요구되는 ‘상상력과 창의적 활동’. 바로 그 창의적 활동은 모든 이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앞에 놓고 ‘낯설게 바라보기’, ‘왜 라고 질문하기’,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기’를 통해 시작된 아이디어의 싹을 틔우고, 물과 거름을 줘서 키우고, 모든 이들과 함께 그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이들이 그 활동에 기꺼이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_1C|1277574680.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가 나와 타인, 인간과 자연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많은 이들은 그 충돌의 지점에서 나의 안락과 내 가정의 풍요와 당장의 편안함을 선택한다. 그 선택 때문에 나와 다른 처지의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고귀한 동물과 식물이 서식처를 심지어 생명마저 잃고, 맑은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그렇게 우리가 살고 이 우주의 파란구슬 지구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도 또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광고, 출판사를 통해 나오는 수많은 책들이 주장하는 ‘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의 기준은 대부분 공존과 상생을 위해 필요로 하는 배려와 양보 보다는 쟁취의 능력을 강조하고, 사람들은 그 기준이 설파하는 성공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앞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쫓아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이 함께 부른 ‘Time to Say Goodbye’가 돌고래의 노랫소리와 하나가 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절절하게 우리 환경이 겪고 있는 고통이 느껴진다. 나무를 자르는 것은 결국 우리 어린아이의 다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있는 숲의 눈물을 충격적으로 펼쳐보인다.

[##_1C|1106734055.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당장의 욕망을 채우라고 충동질하던 바로 그 영상기술, 그래픽 디자인, 광고, 책, 이 모든 것은 바로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함께 행동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바로 그 수단이 된 것이다.  열쇠는 바로 철학이요, 세계관이다.  철로 무기를 만들면 사람을 죽이게 되지만, 농기구를 만들면 사람을 살린다.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을 해치는 도구이지만 외과의사가 잡은 칼은 귀한 목숨을 구한다.

돈도 명예도 지식도 그렇게 양날의 칼이니, 바로 그 칼의 쓰임을 정하는 것이 나의 철학이요 세계관이요 인간관이 아니겠는가? 유치원 아이들과도 소통하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도롱뇽을 걱정하는 디자이너, 노자와 장자, 그리고 월든에 심취한 디자이너. 가능한 가장 적게 지구를 훼손하면서 유족들의 온기가 전사자들에게 직접 전달 될 수 있도록 고심하는 디자이너. 그들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도구의 쓰임을 결정하게 된 것이 바로 철학이요, 세계관이다. 

디자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저 깊고 깊은 마음 속 심연에서 화산이 분출되듯,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경배가 솟아나 움직이지 않던 손과 발이 움직이게 하는 것, 디자인은 그런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단지 기발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 우리의 인생, 우리 아버지의 인생, 우리 아이의 인생, 도요새의 삶, 아마존 숲의 삶, 한강의 삶을 끌어 안고, 관통하는 철학을 담고 그 철학이 온천처럼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덥힐 수 있도록 하는 것, ‘착한 디자인’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렇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해 옮기는 것, 바로 우리가 이 곳 희망제작소의 강의실에 모여서 꿈꾸는 디자인의 결과일 것이다. 

[##_1C|1397113979.jpg|width=”300″ height=”4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소셜디자이너. 그 역할에 필요한 철학 그리고 상상력.  그 상상력을 발휘하는 방법.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화 되는 과정. 7월 12일 월요일 저녁, 평창동의 맑은 강의실에 모여 앉은 모든 사람들이 하얀 면 티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 쓴 희끗희끗한 머리의 멋진 디자이너의 형형한 눈빛에 매료되었던 이유이다.

윤호섭 교수의 ‘소셜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상상력’ 강연 후기는 1조 수강생  권오성ㆍ김보겸ㆍ김주은ㆍ이수정ㆍ이의헌ㆍ한수경 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7기 SDS 강의 후기

1. “회사에선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여기오니…”
2.  디자인, 시대와 충돌하라

Comments

“디자인, 시대와 충돌하라” 에 하나의 답글

  1. netmool 37 아바타
    netmool 37

    교수님 티셔츠에 그리실떄 참석해 보고 싶네요 , 언제 또 모임 있는지 궁금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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